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인트리 Mar 09. 2022

해 봐야 소용없는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식품회사 생산 공장은 대부분 기초 시급이다. 경력이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그다지 복지가 좋은 편은 아니어서 경력 대접은 별로 없다. 이직률이 높아서 경력 대접이 없는 것인지 작업이 단순해서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경력자나 신입이나 받는 돈이 같다 보니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몇 가지 있다.   

  

 ‘일을 많이 하면 돈을 더 줘?’.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생산 공장의 일은 정해진 인원에 대비하여 나올 수 있는 생산 수량이 거의 계산이 되어있다. 그런데 즉석식품 회사의 경우 주문이 새벽이나 오전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 출근 인원 대비 생산 수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날이  있다. 회사는 인원 대비 더 많은 일을 요청하게 된다. 그럴 때 불만의 소리가 나온다. 근로시간 주 52시간 제한에 걸려 연장 근무 없이  해결해야 하는 요즘엔 더 더욱 불만이 생긴다.  일을 많이 하면  적절한 대우를 해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어쩌랴 .

   

그때마다 두 종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책임을 다하는  사람과 이런다고 돈을 더 주냐고 짜증을 내는 사람이다.  생산 수량이 늘어나면 시간당 평균 생산량보다 훨씬 많은 수량을 생산해야 한다. 때문에 다들 바빠지고 행동은 빨라져야 한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 와도 적응이 빠르다. ‘어차피 할 거면 빨리 해야지.’그리고는 일을 향해  돌격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대충 시간 보내고 편하게 하려는 사람들은 다르다. 자신들은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시기와 질투를 한다. ‘저렇게 열심히 해서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래?’ ‘저런다고 이 생산 공장에서 누가 알아주기나 해?’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뱉어내면서 작업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순간적으로 분위기는 열심히 하자는 쪽과 왜 해야 하냐는 쪽으로 편이 갈린다. 그럴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한마디 한다. “그분들은 자기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그럽니다. 우리는 이미 모두 어른인데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세상을 살지는 않잖아요.”   결국은 해야 할 일이다. 짜증을 낸다고 안 하는 일도 아니고 싫다고 말해도 지시하면 따라야 할 일이다. 해봐야 소용없는 말이다.




   시급이 같다 보니 유난히 자주 듣는 말 중에 또 하나가 “왜 나만 힘든 일을 시켜요?”다. 식품회사 공정이 단순하다 보니 모든 이들이 순환 근무가 가능하다. 작업 위치나 공정을 종종 바꿔서 배치할 수 있다. 한 가지 작업에 숙련되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 일에만 오래 작업을 하다 보면 직업병이 생긴다. 대부분 자세가 고정된 위치에서 움직인다. 작업 변경을 해줘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때마다 모르는 일을 만나도 “한번 해볼게요”라고 긍정적인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영혼까지 끄집어내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떻게든 편리한 방법을 찾기 위해 같이 고민하고 해결한다.     


반면, 왜 나한테만 힘든 일을 시키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일단 말문이 막힌다. 누구나 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이 하기 싫은 사람들의 태도다. 하기 싫고 힘든 일도 그냥 참고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유난히 하기 싫다는 태도를 밝히는 사람도 있다.  정말 어려운 일이나 고급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에는 수당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이다. 설득을 한다.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에 칭찬을 더해 주면서 자신감을 줘 본다. 그리고 도와가면서 같이 일을  해 나간다. 며칠쯤 지나면 대부분 적응한다. 일이 익숙해지면  힘든 일이라 생각했지만  별거 아니라고까지  말을 한다. 그리고 일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이 몸에 서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 나는 한마디 해준다. “그대라서 잘할 수 있는 거야.”  결국 힘든 일 싫다는 말도 생산공장 작업자라면 해봐야 소용없는 말이다.

           

육체노동의 현장에 백여 명이 모여 있다 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몸이 힘드니까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순간적으로 하게 되고 거친 말도 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난 다음에는 후회를 한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라’. ‘그때는 화가 좀 났었어요’.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혹은 감정 정리가 충분히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무심결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뱉어 버린다.  그렇게 개인의 안 좋은 감정이 협동으로 이끌어 내야 할 작업과 부딪혔을 때는 자신만 힘들다. 그 직장을 계속 다니려면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자신 안의 긍정의 힘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어제도 퇴근길에 “저 사람 얄미워서 같이 일을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 얼마나 힘이드냐고 맞장구를 치고 위로를 했어야 맞다. 그런데 나는 또 무심히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왜 저 사람을 보는 거야, 내 안의 예쁜 나 자신을 봐야지.  옆 사람이 얄미우면 나는 그런 행동을 안 하면 되는 거니까 그 사람한테 한 가지를 배웠다고 생각해봐. 저 사람 내일 또 봐야 하잖아요. 사람은 자꾸 보게 되면 예쁜 면들이 더 많다니까. 잘 좀 들여다봐봐요.”  잔소리가 길어진다. 나는 직장에서 꼰대다. 나이 먹은 티를 안 내려고 하는데도 이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한 마디씩 하게 된다. 내일부터는 마스크를 두 개, 세 개로 겹쳐 써야겠다. 내 소리가 들리지 않게.


작가의 이전글 미쳐야 미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