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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Mar 04. 2022

미쳐야 미친다.

책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


미쳐야 미친다. 지난주 읽었던 책의 제목이다. 정민 선생님이 쓰신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라는 책이다. 정약용, 허균의 이야기 모두 감탄스러웠지만 독서광 김득신의 이야기는 읽는 순간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실상 그는 둔재였다고 한다. 그는 미친 성실과 노력으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이전`을 1억 1만 3천 번을 읽었으며 36권의 책들이 모두 만 번을 넘게 읽었다고 한다. 만 번을 넘기지 않은 책은 읽었다고도 말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미쳐 본 일이 있는가. 무엇을 그토록 노력하면서 살아본 일이 있는가.     

몇 날 며칠을 그 생각에 골몰했다.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젊은 시간을 되돌아봤다. 딸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줘야 할 시기에 동화책에 빠져서 열심히 읽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다가 잠깐만, 하고는 조용히 침묵 속에 빠져서 읽었다. 소리 내면 생각이 날아갈까 조심스러워 눈으로만 읽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은 소리 내서 읽어 달라고 아우성이고 나는 속으로 책을 느끼며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 짓고 행복해하곤 했다. 아이들이 어린 그 시기에는 동화책 읽기에 빠져 지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큰아이 책가방 뒤지기에 빠졌나 부다. 아이가 매일매일 일기를 썼는데 선생님은 일기 밑에 꼭 한 줄씩 댓글을 달아 주셨다. 나는 그 댓글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날 무심히

 “오늘은 선생님이 안 써 주셨네.” 실망하면서 말했다. 둘째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엄마가 일기에 댓글 안 써 있다고 실망하셨어요." 했단다. 선생님께서 당황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단전부터 차오른다.      


아이들이 사춘기 때는 아이들이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에 같이 열광하고 샤이니 화보 모으기에 동참했다. 내 삶의 피폐하고 절망스럽던 궁핍이 아이들의 즐거움에 같이 녹아들었다. 죽어라 육체를 혹사하고 정신을 혹사하면서 삶의 현장에 있다가도 아이들과 만나지는 시간이 되면 힘들었던 게 눈 녹듯 사라졌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일에 같이 열광하고 아이들이 안타까워하는 일에 나도 안타까워했다.      



엄마라는 자리는 어른이어서 어른의 가르침을 아이들에게 주었어야 했는데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둘째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래”하면서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아이들과 같이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세 딸이 모두 성인이 되고 나도 성인이 되어야 했는데 나는 청춘처럼 고민이 많다.  나를 돌아볼 시간이 많이 생겼다. 요즘 내가 미칠 만큼 집중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빼어나게 영리하지도 않아서 나도 김득신 선생처럼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요즘은 사람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누구든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직장에서 누군가 어떤 불합리한 요구를 해도 그분의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합리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사람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는 듯하다.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하면 내가 싫다. 하다못해 우리 반려견 상구의 마음도 편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든 최선을 다 해서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자 노력을 하는 것이 요즘 내가 미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한 번만이라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일에 미쳐보고 싶다. 무엇인가 이루었다고 하는 일에 미쳐보고 싶다. 그런데 나의 정신은 무엇인가에 폭 빠져지지 않는다. 여름날 불타는 사루비아처럼 미친 사랑도 못해봤고, 나의 무엇인가를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정진을 해 본 적도 없다. 종교에 빠져 본 적도 없고 영혼을 강탈당할 만큼 덕질을 해 본 적도 없다. 항상 한 발 물러나 있다. 일단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다. 매력 없다. 미쳐야 미친다. 내가 미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 생각이 나를 미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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