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인트리 Mar 21. 2022

우리가 정열이 없냐?

일은 재밌게

닦으면 닦을수록 빛이 난다. 내가 50센티미터를 닦고 다음 사람이 다시 50센티미터를 광이 나도록 닦고 또 이어서 닦고 닦고, 길이 훤히 빛난다. 하수구다. 식품회사 하수구는 중요하다. 오물이 있으면 자칫 해충이 자생할 수도 있으니 단 하루도 허술하게 관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식품회사  청소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숭고한 마무리다.


십여 년 전 처음 식품회사에   발을 들였을 때 때마침 회사는 haccp 인증을 받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팀이 만들어지고 서류 준비가 시작되고 현장 정리가 시작되었다. 일단 생산 현장의 기본인 3정 5s에 맞게 정리 정돈을 하기 시작 헸다. 그다음은 구석구석 청소에 몰입했다. 이미 이십여 년이나 사용했다는 기계들을 닦고 또 닦아 새것처럼 만들어야 했다.


그때는 나도 식품 회사가 처음이라서 어디서부터 청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시키는 대로 선임들을 따라 이리저리 다녔다. 여기저기 청소를 하다가 퇴근하고 내일 보면 말짱 헛짓을 한 것처럼 청소한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일하는 것보다 훨씬 기운 빠지고  힘이 드는 게 청소였는데   열심히 청소를 한 흔적이 보이질 않으니 더더욱 맥이 빠졌다. 그때 생산공장 경력이 30년이라시던 과장님 한 분이 며칠을 지켜보시더니 한 말씀하셨다.


"여기저기 몰려다니지 마시고 한 곳만 집중적으로 하세요. 전체 구역을 나눠서 며칠 동안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합니다. 열 번 닦아서 안되면 백번 문지르고 백번 문질러서 안되면 천 번 문지르면 때는 벗겨집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나는 웃었다. 뭘 그리 무식하게 청소를 하라는 것인지 어이가 없었다. 약품을 활용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알게 된 사실은 문지르는 것 밖에 답이 없는 현실이었다. 식품 회사라서 위해 화학 약품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이물이 들어갈까 봐 철수세미 사용금지였다.  잘 닦이는 쓰리엠 파란 수세미도 사용 금지였다. 화학 약품은 더더구나 사용금지였다. 뜨거운 물과 식기세척에 사용되는 물비누와 부드러운 수세미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일단 계획표대로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저기까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청소했다. 점점 공장이 깨끗해지고 있었다. 여럿이 힘을 합치니 묵은때도 쉽게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게 청소는 미루면 안 되겠구나 였다.


사진 고수진


전 직장에서의 경험을  교훈으로  지금의 현장에서는 청소가 일상이  되었다.  매일 하다 보니 특별히 검열을 위해 준비할 필요도 없다. 팀원들에게도 청소는 미루다 보면 나중에 더 힘든 일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청소도 놀이처럼 재밌게 하자고 제안을 한다. 내기다. 여기서 기까지 구간을 정하고  지는 팀이 내일은 이만큼을 더 한다. 혹은 이기는 팀은 퇴근시간이 빠르다. 물론 청소 검열에 통과해야 한다. 일하는  동료들   평균 나이 50을 넘긴 사람들이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내기에 끼어든다. 뭐라 할 것 없이  청소에 정열을 쏟는다. "저 사람은 왜 빈둥거려요?'. 하면서  남을  쳐다볼 새도 없다. 결국 이기는 팀이 생긴다.  마땅한 보상과 벌칙이 주어진다.


작년에  처음  거래업체의 심사를 받게 되었을 때 새벽까지 젊은 대표님과  감춰진 곳의  묵은 때를 벗겨 낸 적이 있다. 그때 대표님의 심사를 통과하고자 하는 간절한 눈빛만큼 내 마음에는 다른 간절함이 있었다. 이 묵은 때를 오늘 기필코 벗겨 내고야 말리라. 쓸데없는 곳에서 발동하는 오기였다. 목표가  흐트러지는 오기였다. 어쨌든 결과는 두 개 다 성공이었다. 대표님의 간절한 심사도 통과를 했고 내가 가만두지 못했던 묵은 때도 벗겨 냈다.  



그리고 나의 일상도 조금 바뀌었다. 가만히 바라보면 청소할 곳이 눈에 보인다. 지나치려 해도 냄비 그을린 것, 손잡이에 때가 끼기 시작하는 것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창틀을 닦다가도 직장에서 청소하던 정열로 덤벼들어 기어이 광을 내고 만다. 땀을 흠뻑 흘리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모든 것을  닦아 내고야 만다. 아, 이런 정열은 무엇일까 , 또 괜한 고민만 한 개 늘었다.


사진  고수진



작가의 이전글 식품회사 보건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