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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Apr 25. 2022

세상 엄마 마음, 다같은 마음

엄마 마음은   모두  같은가 보다.

   

식품회사의 출입은 복장 검사부터 시작이다. 철저하게 일반복과 위생복의 분리는 물론 작업장 출입 시에는 머리카락 한올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삼중모를 뒤집어쓴다. 거기에 마스크까지 장착하고 나면 정말 보이는 것이라고는 눈밖에 없다. 손톱도  짧게 잘라야 하고, 일체의 장신구도 허용되지 않으며 위생복의 실밥이 뜯어져 있는 것도 용납이 안된다. 짙은 화장이나 붙이는 눈썹도 당연히 허용이 안된다. 그래서 여자들이 많은 직장인데도 화장품 냄새보다는 소독약 냄새가 훨씬 짙게 나는 곳이 식품회사다. 모두 같은 복장이라서 개개인을 구별하기도 어렵다.  그런 엄격한 규제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이 민낯의 얼굴이다. 꾸미기가 귀찮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보이지 않으니 민낯이어도 부끄러울 것은 없다는게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그런데 그중에 60이 넘으신 언니 한 분께서는 항상 피부가 고우시다. 매일 보일 듯 말 듯 엷은 핑크빛 눈 화장을 하고 계신다. 단 하루도 민낯인 경우가 없다. 그렇다고 지적을 받을 만큼 과하지 않으니 뭐라 할 말도 없다. 현장 출입을 하려고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가 한 분이 물으신다.

“언니! 언니는 어쩌면 그렇게 매일 매일 예쁘세요?” 그 물음에 거침없이 답을 하신다.

“음~나는 정말 조금은 꾸며요”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민낯으로 다니지 마라고.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듣고 자라다 보니 나이 60이 넘어서는 더더욱 민낯으로 다니기가 싫어지네요.”


     

뒤에서 둘의 대화를 듣다가 나는 친정 엄마가 생각이 나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시골이 고향인 나는 가끔 친정엘 간다. 그때마다 고된 시집살이라도 하고 온 며느리처럼 괜스레 늘어져 잠을 자기도 하고 진흙 묻혀가며 부모님 농사일을 돕기도 한다. 어머니 꽃무늬 몸빼바지에 역시 꽃무늬 티셔츠를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논 밭으로 나선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야야 큰 아야, 거 얼굴에 뭐라도 좀 발라라.”한다.

“엄마 일하러 가는데 뭘 발라요?”

내 대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얼른 들어가서 뭐라도 바르고 나오라고 조용히 손짓을 다. 


어떤날은

“큰 아야 조금 있다가 동네 어른 오신단다. 얼른 일어나서 얼굴에 뭐 좀 바르거라.” 하거나

“야야, 그거 말고 이 옷으로 입어라” 하면서 똑같아 보이는 꽃무늬 티셔츠를 다른 것으로 꺼내 주곤 한다. 지난 주말에도 고추 모종을 도와주러 갔는데 동이 트자마자 일어나서 나를 깨우

“큰 아야, 어서 일어나서 씻고 얼굴에 뭐라도 바르거라.”한다.  "고추 모종  심을 건데  뭐하러" 칭얼거리면서 일어나 보니  어머니는 벌써 씻고 단장을 하고 있다.   

자식이 예쁜 거야 말해 무엇할까 싶은데 친정어머니 마음에는 남들 눈에도 내 자식이  예쁘게 보였으면 싶은 거였나 보다. 그렇다고 60이 다된 딸이 예뻐 보이게  하려 하시다니,참 어이없다 싶다.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된 건 내 딸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이다.  요즘은 가끔 나도 내 친정어머니와 같은 말을 할 때가 있다. 서른이 다 된 딸들이 강아지 산책을 시키겠다고 밖으로 나갈 때다. 딸들은 반려견인 상구에게는 산책을 갈때마다  옷을 입히고 치장을 해준다. 마치  최고 멋쟁이 강아지 대회라도 나가는 것처럼 꾸며서 데리고 나간다. 반려견인 상구는 입히고 꾸미면서 정작 딸들의 복장은 헐렁한 운동복에 모자다. 그때마다 나는

“그 허름한 운동복 말고 저거 입고 나가면 안 되냐?” 핀잔을 하게 된다.

“에고 엄마 상구 산책 나가는데 아무려면 어때요?” 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한다.  그때마다 느낀다. 친정어머니께 했던 내 대답은 당연했고 나에게 하는 딸들의 대답은 참으로 서운하다.   


 나이 되어서 내 자식들을 통해 엄마 마음을 알게 되니 친정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이 더해진다.  그 옛날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시골을 갈 때는 그나마 남의눈을 의식하여 그래도 조금 차려입고 다녔었다.  지금은 자동차를 이용하니 이동하기 편한 차림으로 다니게 된다. 더구나 마음 편한 친정엘 가게되니 외모와 복장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 만큼 자유로워 진 것일까, 아니면 뻔뻔해 진 것일까. 나이를 먹어도 멋있고 곱게 늙고 싶던 나의 바람중에 외모는 없었나 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라고 말하면서 내 행동이 제약을 받는 것이 이 나이에도 분명히 몇가지는 있다. 어른 계시는 집에 빈 손으로 가지마라, 남의 집 들어갈때 절대 문턱을 밟지마라, 아침 일찍 남의집에 전화하지 마라 괜히 서둘게 되니~등등. 그 중에 내가 모르던 한가지 예쁘게 보이는것도 있었나보다.  내 어머니 마음 편하게 해 드리고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인데 못할 것이 무엇이랴. 어머니 앞에서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라는것도 아니고 입술에 고운 색깔 립스틱하나 바르는 정도인데 얼마나 간단한 효도인가.  에라,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거울 한 번 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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