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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Jun 03. 2022

까탈스러운 그녀.

생산직에 입문한 그녀에게

매사를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한다. 언쟁이 생기면 옳고 그르다는 선을 서운할 만큼 확실하게 그어주기도 한다.  정확하고 감정까지 확실하게 정리를 하는 편이다 보니 그중에는 그녀의 까탈을 싫어하는 이도 많다. 쟤는 왜 저 모양이야. 저만 잘하면 됐지 왜 우리에게도 강요하는 것이야. 혹은 뭐냐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 것이냐, 하고 대놓고 핀잔을 주는 이도 있다. 그런데 그녀의 말투에는 악의가 없다. 진정 걱정하고 챙기는 마음이 들어있다. 남들이 뭐라 하든 “그래도 저런 태도는 고치면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잖아요.”라고 말을 한다. 올곧은 성품이다. 말릴 수가 없다.


 현장에서도 그녀의 까탈은 관리자인 나를 힘들게 한다.

 “샐러드 회사인데 왜 야채가 이모양이에요? 저는 일을 못하겠어요. 소비자들한테 미안해요.” 그러면 나는 “그러게 오늘 야채가 왜 이러냐? 입고 일자가 다른 것으로 사용하자.”라고 달랜다.

 “식품은 눈으로 보기에도 좋아야 하는데 플레이팅이 왜 이모양이에요? 이렇게 담으면 안 되는 거예요?” 나는 그때마다 곤란에 빠진다.

 “그래도 개발실에서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것인데 원재료의 배합 상태에 따른 이유가 있을 것이야.” 그리고는 일단 매뉴얼대로 해보자고 달랜다. 생산 공장은 표준공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특별한 능력일지라도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에 따른 결정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는 없다. 좋은 의견이나 제안이라면 건의와 논의를 거치고 품질 팀의 실험과 조율을 거쳐야 생산에 반영될 수 있다. 그녀는 지금 생산직이라는 직업을 처음 접하고 좌충우돌하는 중이다.   



스윗밸런스 샐러드

   

그런데 나는 그녀의 까탈이 싫지 않다. 그녀의 까탈은 실수를 잘 잡아내기 때문이다. 그녀의 까탈은 품질의 궤도를 조금씩 올려놓고 있다. 그녀 스스로에게 꼼꼼한 면면들이 작업을 할 때도  나타난다.  시력이 나쁘다 하면서도 티끌만 한 이물도 잘 찾아낸다. 저울을 맡겨 놓으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계량으로 제품이 완성된다. 검수를 맡기면 포장선의 길이까지 까탈을 부려서 일정한 제품을 만들어 낸다.  그녀의 까탈이 나에게는 실수하지 않으려는 자극이 될 때도 많다. 그녀는 관리자의 실수를 귀신같이 잡아채서 슬며시 지적을 하기도 한다. 덕분에 실수도 적어지고 적당한 긴장이 일을 즐겁게 한다. 직장에 그녀 같은 사람이 많으면 회사는 복 받은 것이리라. 그녀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도 하고 책임감이 남다르기도 하다. 인정도 많아서 옆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있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최고의 사람이다.      


    나는 그녀와는 참 다르다. 까탈이 없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머리카락이 나와도 사람이 만드니까 머리카락이 나오지. 동물이 만들었으면 털이 나왔겠지 그냥 먹어,라고 한다. 물건을 구매할 때도 별로 의심 없이 한 번에 선택을 한다. 섣부른 선택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아 아예 못쓰게 되는 경우를 만나도 어떤 이는 이거 하나 팔아서 행복해했을 수도 있으니 그걸로 됐지. 다음에는 좀 알아보고 사야지, 그렇게 넘어간다. 빠르게 결정해 버리고 생각의 부담을 줄이는 게 삶의 지표인 양, 항상 결정이 빠르다.   

   

 나에게는 나의 그런 대충을 보완해 주는 그녀를 옆에 두고 있어서 다행이다.  “뭐 어때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사는 나에게 그녀는 그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죠.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죠 하면서 방향을 만들어 주는 잔소리를 한다. “나도 알아. 그래도 이 나이 먹으니 실수도 예쁜 걸 어떡하냐.” 라며 나는 웃어준다. 그녀는 나의 젊을 때 모습이다. 나도 한 때는 티끌 만한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항상 공부하고 예습을 해 보고 살았다. 삶에도 연습이 있었으면 오죽 좋았을까,  완벽주의 앞에 삶이 무너져 치명타를 입고 나니 삶을 경계하던 마음의 철창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래도 살아지고 저래도 살아지는구나 라는 철학을 얻기까지 너무 많은 수업료와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모습은  생산직에 처음 입문할 때 내 모습과  닮아 있다.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해결하려 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바른 길이다 생각하면 무조건 전진했다. 이런 게 훨씬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를 하루에도 몇 번씩 건의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동료들을 힘들게 했을  상황들이다. 그녀는 나를 만나는 아침마다 한가지씩 의견을 내기도 하고 의견을 묻기도 한다. 그때마다 까탈스러운 그녀에게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 버텨라. 끝까지 버틴  자가 승리한 자이다. 그 까탈을 나는 사랑한다. 그 까탈을 나는 예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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