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를 짝사랑 했단다. 어린것이 믿거나 말거나 이다. 서동요처럼 남편은 어린 시절을 온 동네에 나를 좋아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사춘기 중학교 때, `너 갸가 좋아 한다매?`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죽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갸는 너 때문에 여자 친구도 안 사귄다더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감히 지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고 다녀? 하지만 생각뿐 말할 가치도 없어서 잊어 버렸다.
스물일곱에 선을 보러 시골에 내려갔다. 꽤나 잘 나가는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때 막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우리 친정 아버지가 원하는 사윗감의 모습을 갖춘 사람이었다.그때 당시 친정 아버지는 공무원이 아니면 딸을 시집 보내지 않을 작정을 하신 분이셨다. 그런데 시골집으로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한통, 참고로 그때는 마을에 전화가 이장님 댁에 한 통밖에 없었다. 이장님의 "아! 아! 거~ 고 씨 양반 댁 큰따님 전화 왔구먼.~" 스피커 방송을 듣고 전화를 받으러 뛰어갔다. 전화기 너머로 " 나 내일 부안 갈 거여~" 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가 미쳤나 벼 나 내일 선보러 간다. 잉~ 그리고 너 미쳤냐. 동네방네 이 밤중에 전화를 해서 나 아부지한테 죽었다 이제." 애문 남의 집 전화기를 내 동댕이치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동네 망신스럽게 다 큰 처녀애가 밤중에 뭔 전화가 오냐고 부모님께 쌍권총으로 꾸지람을 들었다.
다음날 나름대로 열심히 치장을 하고 선보러 나간 터미널에 웬 멋진 남자가 서 있었다. 이 촌구석에 어울리지 않는 양복이네 하면서 쳐다보니 서동요의 주인공이었다. 그동안 말도 붙이기 싫었던 남자였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선을 보러 2층 다방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발길이 이미 그 남자랑 같이 걷고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해봤다. 옆 동네라서 형편이야 숟가락 몇 개까지인지 다 알고 있었다. 하루종일 하던 얘기의 결론은 나를 정말 죽을 만큼 사랑하는데 나랑 결혼은 못하겠단다. 홀 몸이 아니라 했다. 아픈 막내 누나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 누나들은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 행복한 가정에 아픈누나를 보낼 수는 없고 혼자인 자신이 모시고 사는 게 맞다 고 했다. 말을 듣는 동안 괘씸함과 가엾음이 겹쳐왔다. 죽기살기로 사랑한다고 말을 하질 말던지 어쨌든 죽어도 나랑 결혼은 안하겠다니 그럼 누구랑 할것인지, 한동안 어이없어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결론은 내야 하니 '그래 너 참 착하다. 그게 맞지. 나를 사랑하지 말고 누나를 사랑해라.대신에 다시는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 입 밖에 내지 마라' 그렇게 말하고 뒤도 안돌아 보고 헤어졌다.
그랬는데 그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온 세상이 터미널에서 본 그 남자의 얼굴이었다. 아픈 누나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어른거렸다. 성별이 다른데 여자인 누나를 어떻게 돌보고 있을까? 밥은 어떻게 해 먹으면서 살고 있을까? 온종일 그 걱정뿐이었다. 내가 조금만 돌봐주면 인생이 행복할 것 같은 그 남자에게 모든 정신이 가 있었다. 어떻게라도 그 남자 옆에서 도움이 되고 싶었다. 아니 그 남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어떤 생각을 해도 마음이 불편했다. 도시로 돌아와서 일상을 살면서도 문득문득 나는 넋이 나가 있었다. 손 한번 안 잡아본 그남자 생각 뿐이었다. 콩깍지가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다. 한 달 쯤 지난 후에 내가 새벽에 전화를 했다.
" 우리 결혼하자.'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그게 되겠어?" 한다. "그래 된다. 하자."
친정 부모님께 결혼 하겠노라 통보를 하고 일사천리로 청첩장을 찍었다. 부모님은 곡기를 끊으셨다. 두 분 모두 이런 결혼은 못 시킨다는 것이었다. 특히 친정아버지의 반대는 맹렬했다. 가장 기대했던 큰딸이었고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야 된다고 믿었던 맏이였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는 정설대로 부모님은 결국 결혼식장에 나란히 앉아서 걱정으로 축하를 해 주셨다. 화살같이 결혼식을 치르고 서울에 시누이와 셋이서 단칸방 살림을 시작했다. 부모님께는 돌이킬수 없는 죄를 지었으면서 그 죄가 안중에 없었다. 내가 시누이를 돌보는 게 좋았고 그 남자를 도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할 일이 많아서 내 몸이 부서지는 것쯤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나는 불교였으면서도 시누이가 좋아하는 교회모임에 모시고 가고 시누이와 장 구경을 했다. 비틀거리는 시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갈 때마다 시누이가 물었었다. "자네는 무엇 때문에 내 동생이랑 결혼을 했어?" 혹은 "나는 도대체 자네가 이해가 안가. 왜 결혼을 했어?"
그때는 대답을 못했는데 이제는 알겠다. "의리 때문인가 봐요. 나를 믿은 저 사람을 배신하면 안 될 거 같은 마음요."
그 놈의 의리가 뭐라고 나는 아직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를 믿은 사람을 배신하지 못한다. 훌쩍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은 관게도 그동안의 정리로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내 몸이 부서져도 같이 일하는 동료가 힘들다 하면 끝까지 힘이 되어주고 싶다. 쓸데없는 오지랖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야 내 맘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