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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Jun 18. 2023

생산직 관리자가 뭐 교육까지 받아야 하나?

내 자리에서 보람이 느껴질 때


   

“직장 생활하시면서 지금의 위치에서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였어요?”

얼마 전 후배가 나한테 물었다.   

  

 그래서 천천히 돌아보게 되었다. 식품회사 생산직이 직장생활에 보람을 느낄 만한 일이 뭐가 있었을까? 처음 식품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불안함 그 자체였다. 드세다는 선입견이 있던 현장 사람들과의 관계에 적응할 수는 있을까? 내 육체는 이 일을 견딜 수 있을까? 그런데 현장에 적응을 하고 난 후의 고민은 달라졌다. 보람과 긍지가 없는 생산 공장에서의 육체노동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게 맞는가? 에누리 없이 기초시급을 받으면서 일을 보면 미쳐버린 사람처럼 땀 흘려 일하는 내가 이런 생산 공장에 맞는가? 커리어가 쌓이지 않는 이런 시간을 보내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는가? 식품회사 생산직은 아무리 일을 잘했어도 퇴사하면 다시 기초시급으로 시작한다. 경력인정이 없다. 그래서 언제 떠나도 회사에 미련을 갖지 않게 했다. 생산물량이 적어지면 예외 없이 인원 감축을 하는 불안한 현장, 생산물량이 많아지면 예고 없이 원하지 않아도 강행되는 연장. 장기적인 시간을 투자하는 인생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어쨌든 생산 공장을 다니고 있으니 불안에도 적응해야 했고, 강행군에도 적응을 해야 했다. 줄어든 월급에도 적응하고, 시간과 몸을 바친 연장급여에도 적응을 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보람은 있었다. 매장에 진열되어있는 내가 만든 제품을 보면 뿌듯했다. 나도 모르게 우리 회사 제품을 앞으로 꺼내 놓는다.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만드는 거야.”자랑을 한다. 제품을 설명할 때는 원재료가 어떤 것인지 왜 그 재료가 필요했는지 개발자처럼 진지하고 장황했다. 급여를 받을 때도 당당했다. “엄마도 돈 벌어. 용돈 줄게!!”

      

스윗밸런스 샐러드


 관리자가 되고는 보람의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마음이 불편한 사람 없이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했다. 내가 조금 희생하고 내가 조금 더 일을 하더라도 사람들의 관계가 좋기를 바랐다. 어느 곳이든 이 바닥의 노동 강도는 비슷비슷하다. 급여 수준도 오래 다녀야 근속수당 정도 생기고 오래 다녀야 그곳에서 인정받는 숙련공 정도 대접받는다. 그래서 이직률도 높다. 직장을 떠나는 사람의 대부분이 생산 공장에서 특별한 혜택을 누린 적이 없어서 미련도 없다. 거기에 마음이 불편하면 재고의 여지가 없이 떠나게 된다는 것을 몇 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직장에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직장은 다닐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 무조건 멘토를 붙여줬다. 신입 동료가 적응하는 동안에  밥 먹으러 갈 때 챙기고 화장실 같이 다니면서 사람에게 정들게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신입동료가 어느 정도 시간을 견디고 현장에 적응하는 것을 보면서 느껴지는 뿌듯함은 관리자가 되기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금은 후배 관리자를 교육 중이다. ‘기쁨을 자랑하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자랑하면 나의 약점이 된다’라는 말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후배가 일의 성과를 자랑하면 진심으로 기쁘고, 잘 안된다고 의기소침하면 어떻게든 해결해 주고 싶어 진다.  얼마 전에도 후배의 고민하는 모습과 결론에 깔끔하게 도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는 이게 내 마음 깊은 곳의 찐한 진심인지 의심하면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나는 진정 후배가 나보다 훨씬 좋은 성과로 앞질러 가기를 바라는가? 진정 그래도 괜찮은가? 질투나 부러움은 없는가? 뒤처질 거라 고민은 안 하는가? 모든 자료는 아낌없이 대가 없이 막 퍼부어 주고 싶은가? 그런데 절대 일말의 고민이 없다. 진정 기쁘다. 진정 다 퍼부어 주고 싶다. 그래서 더 나아가게 해주고 싶다.    

  

이 나이를 먹으니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항상 무엇을 더 해 줄 수 있는지를 공부하고 생각한다. 오늘도 지식이 조금 부족하다 싶은 분야의 책을 보고 있다. 밑줄을 긋는다. 이런 내용은 후배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지난번 후배가 물었을 때는 대충 얼버무린 보람을 느낄 때를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배야 다시 한번 질문해 다오. 내가 보람을 느낄 때는 “그대들이 능력을 인정받을 때 ”인 것 같아. 그럴 때 진정 가슴이 벅차거든. 그런데 후배야, 생산직 관리자는 뭐 딱히 배울게 없어, 몸으로 하다보면 다 알게 되는 것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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