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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Sep 09. 2023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닌데

어느 자리에 있든 간에

   

예전 직장에 과장님이 한 분 계셨다. 그분은 신입 관리자가 들어오면 중요한 기계를 하루에 한 대씩 해부를 해 놓았다. 그리고 원래 모양의 사진을 보내 주셨다. 분해를 해야 조립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식을 깬 행동이었다. 신입 직원은 어쨌든 그 기계를 조립해서 정상 작동을 시켜 놓아야 했다. 물론 그때는 기계가 여러 대라서 한 대쯤 해부를 해 놓아도 생산에 지장이 전혀 없었다. 신입들 중에는 몇 번의 실수 끝에 기계를 정상 작동 시켜놓는 기계천재 같은 분도 있었다. 혹은 밤을 새워 완성시키는 고집 센 신입도 있었고, 아예 첨부터 이삼일에 걸쳐 과장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저런 `미친놈을 봤나?` 하면서 집어치우고 가버린 신입도 있었다.  

    

과장님은 다음날 생산되는 제품의 유통기한을 변경시켜 놓기도 하고, 작업지시서의 한 곳에 살짝 실수가 생기도록 수식을 바꿔 놓기도 했다. 신입 관리자는 매일 틀린 부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작업 시작 전에 찾아내면 대 성공이요. 못 찾아내면 전전긍긍하다가 과장님이 틀린 그곳을 수정해서 생산이 시작되었다.  어쨌든 신입 관리자는 매일매일 그 실수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몇 번 당했던  나도 속으로는 “저 인간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 아녀? ”하면서 속으로 분노를 삼키기도 했었다.    

 

그런 시간을 6개월쯤 보낸 신입 관리자는 만능  오퍼레이터가 되어있었다. 작업 중에는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예리한 관찰자가 되어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관리자로 성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과장님은 그렇게 견뎌낸 신입 관리자를 무한 신뢰했다. 과장님이 미소를 보일 때는 그런 시간을 견뎌낸 관리자들과 마주하고 있을 때뿐이었다. 심지어 과장님이 키워낸 후배와 손을 잡고 다니기도 해서 “저 손은 과연 따뜻할까?”라고 수군대게 만들었다.     



나이 먹어 생산현장에 취직한 나는 과장님의 일하는 방식이나 후배를 교육시키는 방법이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혹독하게 몸으로 얻은 교육이야말로 절대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 경험 한 나이였다. 그래도 마주치기는 쉽지 않았던 상사였다. 과장님의 예리한 눈빛과 마주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해박한 지식에 감탄도 했지만, 내 지식의 바닥을 들키게 될 것만 같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히 피하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 회사를 퇴직할 무렵 우연한 자리에서 내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과장님은 왜 그렇게 신입들 교육을 무섭게 시켰어요?”

나 보다 훨씬 어렸던 과장님은 말했다.

“저도 공부 많이 하고 이 회사에 공채로 입사했어요.

그런데 생산현장 관리자로 와보니까 몸으로 배워야 하겠더라고요."

과장님은 잠시 말을 끊더니 다시 이어갔다.

"갑자기 기계가 고장 나면 생산이 멈추죠. 생산이 멈추면 회사에서는 왜 생산성 낮아졌냐고 추궁하죠. 기계가 고장 났다고 하면 그때 뭐 했냐고 물어왔어요. 대응했던 내용을 설명하면서 항상 변명을 하는것 같았어요. 그래서 현장에 있는 기계들을 작업이 끝나면 하나하나 해부해서 공부했어요. 못 맞추겠으면 공무팀장님께 배우고, 업체에 문의해서 배웠지요. 몇 달 지나니까 일에 자신이 생겼어요. 회의에 가도 당당했지요. 설비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까 생산성을 맞추지 못한 정확한 설명을 할 수가 있었지요. 후배들에게도 그런 당당한 자존감을 갖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게 자신에게도 발전이 되고 회사도 발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과장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그런데 그렇게 성장한 후배들이 후회가 없다고 해요. 자기 자신이 어느새 훌쩍 성장한 느낌이 든다고 고마워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교육 방식에 확신을 가진 것 같아요. 적어도 생산현장에서는 맞는 교육 방법이라고 점점 더 확신을 가진 것 같아요. 물론 시대가 변하면 생산 현장이 변할 테니까 저도 변해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두고는 있어요.”

그날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일에 대한 내 생각도 바뀌었다. 어쨌든 아는게 힘이다.

    

생산은 살림살이와도 같다. 담당하는 부서의 조율을 거쳐서 생산이 움직이는 게 생산 공장의 조직이다. 그런데 조직이 해결해 주기 전에 돌봐야 할 사람의 마음도 있고, 잦은 기계 고장도 많다. 표시도 안 나는 정리 정돈은 끝이 없고, 수시로 작업내용을 검사하고 때로는 여러가지 테스트도 강행해야 한다. 살림살이처럼 소소한 그 일들이 조직화된 매뉴얼을 지키기엔 시간 낭비가 많다. 무엇보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  생산량은 이미 정해져 있고 출고시간을 맞춰야 하는 과제가 매일매일 미션처럼 주어져 있다. 그래서 생산은 무조건 돌발 상황을 발 빠르게 해결하고 생산에 집중해야 한다. 긴급상황을  노련하게 대응하면서 출고와 품질 미션을 잘 수행하는 관리자가 많을수록 현장은 좋아진다. 나도 그런 능력 있는 관리자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요즘 들어 예전의 과장님이 종종 생각난다. 그만큼 고민이 많아졌나 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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