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 독서의 끝이다 <5>
2017년 새해를 맞이하던 날, 제주도에서 샀던 책. 내년이면 이제 불혹을 맞이하는 사람으로써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무척 매력적인 일러스트까지. 여러모로 3박자가 잘 갖추어진 책이었달까.
알고보니 사카이 준코는 일본에서는 제법 유명한 작가로, 30대 이상의 애가 없고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을 마케이누, 즉 싸움에 진 개로 묘사하여 책을 써 여성들에게 이미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써내려간 이 책은 말 그대로 중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 조금 더 들어가자면 중년의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확히 말하면 저자가 책 속에서 여러번 언급하는대로, '중년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아줌마라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온 몸으로 이제 나의 시절은 갔다는 것을, 이제 내리막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발버둥치지만 그래도 또 역시나 어쩔 수 없이 중년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덤덤하면서도 또 조금은 귀엽게 펼쳐가는 그녀의 글귀에 공감하면서도, 어랏 나도 이미 중년의 길을 가고 있는가.. 싶을 정도로 이미 나의 삶과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누구나 나이값을 못하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하겠지만 또 막상 자기가 늙어보면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것이다. 사카이 준코는 그렇게 어찌보면 당연한, '너도 늙어보면 안다'라는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과 삶을 통해 늘어놓는다. 하지만 변명같지도, 가르치려는 투도 아니라 좋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늙는다는건 그런거니까. 그냥 늙는거다. 누구나, 어떤 사람이던. 무엇을 하던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
사카이 준코는 중년이라는 나이의 어중간함을 이야기한다. 분명 더이상 젊음이라긴 뭐한 나이이지만 그렇다고 또 노년은 아니다. 사이에 끼어 자신의 역할을 잘 모르겠는 그런 나이. 그것이 또 중년이다. 늘 부모에게 끌려다니던 자신이 어느순간 부모를 이끌게 되버린 그 모습을 처음 만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카이 준코는 중년 자식으로써 부모와 여행을 떠나면 꼭 싸우게 되는 이야기를 하며 이것을 서로 바뀐 역할이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자식은 이제 보호자의 입장이 된 자신이 어색하고, 부모는 늘 보호자였던 자신이 보살핌받는 위치에 서야 한다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아 감정이 모나진다는 것이다.
폐경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나이가 들며 찾아드는 질병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성에게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는 그런 솔직한 감정들에 대해서도 써내려간다. 외모에 끌리는 사람에 마음에 대해서 아주 단호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뭔가 마음의 수양이라던지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조금 슬퍼질지도 모르지만 중년이란 또한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일본 작가여서 그런지 자신의 위치, 역할에 지나치게 충실하려고 하는 부분이 조금 느껴질때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여성 독자들이 조금 더 공감하고 이해할 책이 되겠지만, 나같은 남자에게도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책속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바로 중년끼리의 여행에 관해서였다. 젊은 시절 중년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서 어디 여행다니는걸 보면 시끄럽고 별로라고 생각해서 자기는 절대 중년끼리 여행가지 말아야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벚꽃 구경인가를 하기위해 결국 친한 친구들과 여행을 갔고, 그녀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중년 아줌마들의 여행을 그대로 했지만 즐거웠고 좋았다고.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조마간 또 가볼까 하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였다.
꼰대같은 중년이 되지 않는 것은 무척 중요하겠지만 중년으로써 중년의 삶 자체를 즐기는 것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년은 더이상 멋을 위해 편안함을 버릴 나이는 나이다. 속된 말로 '멋부리다 얼어죽을' 패션을 시도할 나이도 아니다. 하지만 중년에는 분명 또 중년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굉장하고 비장한 것은 아니겠지만. 너무 움추러들 필요도 없다고 그녀가 가르쳐주었다. 누구에게나 중년은 처음일테니까. 그러니까 우리 그냥, 있는 그대로 늙어갑시다.
17. 02 완독.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
-사카이 준코 / 조찬희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