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 독서의 끝이다 <6>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어린 시절부터 큰 꿈을 품었습니다. 그 꿈이란 역사적인 인물이 되겠다는 것. 세상에 큰 족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장르는 여러번 바뀌어 왔습니다. 아주 어릴때는 과학자를 꿈꾼 적도 있고, 조금 커서는 소설가가 꿈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아는 분들은 아시는 저의 실패한 음악 여정 또한 있었습니다. 광고 회사도 다녔었지요. 그렇게 좌충우돌 하면서 사진가로써 저의 길을 온연히 정하고 지금까지 해나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딱히 특출 나거나 남에게 인정받거나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과 인정에 목이 마른 듯 합니다. 십대때는 저와 비슷한 나이에 이미 인생의 정점을 누리는 아이돌 가수들을 보며 조급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나도 뭔가 어서 이루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에 허둥지둥 서둘렀다가 사고도 많이 저질렀습니다. 20대에도 방황은 이어졌지만 그런 끝에 조급함을 버리고 조금 천천히 삶을 걸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이미 자신의 정점을 경험한 사람은 불행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후 수십년 넘게 더 살아가야하는데 그 앞으로의 길은 계속 내리막일테니까요. 그 정점 이상으로 다시 올라가는 일은 없을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루는 것이 늦더라도 계속해서 위를 향해 올라가는 그 삶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성공에 크게 얽메이지 않고 제 꿈을 쌓아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깨우침이 부족했었나 봅니다. 한국 나이 어언 39살. 이제 불혹을 향해 다가가다보니 그런 조바심이 다시금 엄습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마흔이 되도록 아직 무엇 하나 이루지 못했다니, 이래도 괜찮은걸까. 사진만 한지도 10년이 되어가는데 겨우 이 정도 자리에 서 있으니 이러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에 한번에 들어오는 눈부신 하나의 별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흔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저는 수많은 별들로 가득한 은하수 한켠에 눈에 띄지 않은 작고 어두운 소행성인 것만 같아 쓸쓸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때 제 앞에 홀연히 나타난 이 남자, 바로 호빵맨이었습니다. 아니, 호빵맨의 창시자인 야나세 다카시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군요. 사실 저는 호빵맨이라는 캐릭터는 알고 있었지만 제 어린 시절 유행했던 캐릭터는 아니라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 캐릭터를 만들어낸 원작자인 야나세 선생에 대해선 전혀 몰랐던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서점에서 꺼내 들었던 이 작은 책자에 끌려 읽어 내리기 시작했더니, 그곳에는 저처럼 조바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야나세 다카시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림 실력으로 이런저런 일러스트 작업등을 의뢰 받으며 삶은 영위했지만, 자신만의 어떤 뚜렷한 족적을 남기진 못했습니다. 제가 그렇듯 그 또한 만화가로서 자신을 대표해줄 하나의 작품, 그것에 대한 갈구가 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은 그의 대표작이 된 호빵맨 캐릭터를 그가 세상에 내놓은 것은 50살이 넘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빵맨이 애니메이션화되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됐을때 그는 이미 69살이었습니다. 대기만성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야나세 선생 본인은 소기만성이라고 부끄러워 했습니다만. 이래서는 웬만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대기만성이라는 단어를 쓰기 부끄러울 지경일 것 같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두고 천재가 아니었다고 여러번 이야기합니다. 천재와 수재로 가득찬 만화계에서 자신이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스타일을 분명하게 가지고, 그것을 오래 꾸준히 해왔을 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작은 일들이라고 소홀히 하면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고 말이죠. 분명한 것은 자신이 믿는 그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책속에서 무척 인상적이었던 구절이 있습니다 : "인생은 의자뺏기 놀이. 올라탄 게 만원버스더라도 포기하지 않은 채 계속 서 있었더니, 어느 순간 눈앞의 자리가 비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일단 무조건 해볼 것을 강조하며 그는 또 이야기 합니다. 자신은 살면서 늘 3가지 일을 해왔는데 하나는 시를 쓰는 것, 다른 하나는 만화를 그리는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바로 창피를 당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창피를 당하더라도 일단 하라고, 일단 하면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다고 야나세 선생님은 전합니다. 저도 살면서 많은 창피를 당하며 살아왔습니다. 말도 안되는 짓들을 참 많이 했고 그래서 손가락질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이 지금 제 모습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야나세 선생님도 그런 저와 같은 마음이었던 듯 합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단지 귀여운 만화 캐릭터인줄 알았는데 호빵맨에는 그가 담고자 한 확고한 철학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시인으로도 유명세를 탔던 그는 시와 만화를 동일선상에서 본다고 말하며 둘 다 최대한 알기 쉽게 표현하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난해한 시는 시가 아니라고 잘라 말합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두루 이해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를 쓰고자 해왔다고 말이죠. 그런 그의 신념은 만화 호빵맨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제 사진의 철학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라 정말 반가웠습니다. 저 또한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그가 말했듯 날아드는 상쾌한 바람 같은 사진을 담고자 합니다. 평론가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진을 해서 저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호빵맨 역시 출간 당시 평론가들에게는 혹평을 받았답니다. 그러나 작품에 스며든 그의 진정성을 누구보다 어린 아이들이 먼저 알아주었습니다.
뒤늦은 호빵맨의 성공 후에도 야나세 선생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연 연출등의 새로운 일에 꾸준히 도전하며 '창피를 당하고', 팔순이 넘어 가요계에 데뷔, 히트곡까지 내며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90살을 훌쩍 넘어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삶은 끊임없이 꿈틀거렸습니다. 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예술계의 선배로써 이렇게 멋지게 해나간 분이 있다는데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제 고작 마흔인데 뭘 그리 오래해왔다고 불평해왔구나 하고 반성도 했습니다. 저의 호빵맨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혹시 너무 늦은건 아닌지 저처럼 조바심이 가득한 여러분들도 호빵맨의 얼굴을 한번 바라 보세요. 호빵맨은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영웅이 아닌, 자신의 얼굴에서 빵을 떼어 나누어주는 영웅입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닌 무언가를 나누기 위해 하늘로 날아오르는 영웅. 우리도 우리들의 호빵을 세상에 나누어 줍시다. 아직, 저 높은 하늘로 날아오를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으니까요.
2017년 완독.
네, 호빵맨입니다.
야나세 다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