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노트북
그랜드캐년에서 추락한 아들의 병원비가 10억이 넘게 나와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부모의 청원을 두고 말이 많다. 인터넷의 수많은 댓글들은 ‘안됐지만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일은 아니다’라는 의견이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이 생길때마다 항상 나오는 이야기들이 나의 신경을 거슬렀다. ‘한국에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먼저 돕지 왜 이런 사람을 돕냐’는 이야기들이었다. 아, 참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프리카를 위한 이런저런 것들을 하면서도 이런 이야기 참 많이 들었다. 한국에도 어려운 사람 많은데 왜 아프리카 사람들을 도우세요? 여기 어려운 사람들 먼저 돕는게 맞지 않나요? 하는 이야기들이다. 최근 불거진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말한다. 한국 상황이 어려운데, 한국에 상황이 좋아지면 그때 도와주자는 이야기들. 우리 먼저 챙겨야되는데 난민 챙기고 있을 틈이 어딨냐는 이야기들 말이다. 설마하니 모르시는 것 같아서 글자로 써내려가고 싶다. 남을 돕기에 완벽한 시기나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세계 내노라 하는 나라중에도 실업률이 제로인 곳이 없고 노숙자가 없는 곳이 없다. 아무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잘나가도 어려운 사람이 있고 힘든 사람이 있다. 결국 우리가 여유가 있을때 돕자는 이야기는 그냥 돕지 말자는 이야기 밖에는 안된다. 그 완벽한 시기는 절대로 오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지금이야 말로는 내가 몇억씩 있는 자산가가 되면 여유 있어서 불우한 사람들에게 돈 쓸 것 같겠지만, 여유가 없다고 지금 돕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여유가 생겨도 여전히 여유가 없을 것이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내가 가진게 남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가진게 없어도 돕고자 하는 마음이다.
아프리카 아이들 도울 돈 있으면 한국에 불우이웃 먼저 도와라..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의 불우이웃도 돕지 않는다. 한국에도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정작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도움으로서 한국에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는게 아니다. 난민들 도와줄 돈으로 한국의 불우이웃 도우라고 목청 높이는 사람중에 정작 누구라도 후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돕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쉬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균등하게 세상의 힘든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기다가 굳이 우리 민족 먼저, 타민족은 나중에 라는 것은 형태만 다른 국수주의에 불과하다. 세계가 갈수록 하나로 하나로 좁아지고 있는 오늘날 낡고 시대에 뒤쳐진 생각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불행을 수치화해서 자로 재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라. 너는 그거밖에 안불행하면서 무슨 도움을 요청하냐는 식으로 남의 불행에 아는 척 하지 말아라. 불행은 경쟁이어서도 안되며 어려운 사람이 자기가 남들보다 어렵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사회는 어딘가 많이 고장나 있는 사회다. 우리는 모두 도울 수 없으며 모두가 도울 수 있는 여력이 되지도 못한다. 하지만 돕고자 하는 마음은 늘 열려있어야 한다. 세상을 숫자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고하노니. 마음이 세상을 움직인다. 지갑보다 마음을 먼저 열어라. 내가 얼마 있으니까 얼마를 돕자 돕지말자는 것은 남을 돕는 것이 아니다. 돕지 않는것까진 괜찮지만 거기에 있어보이는 핑계만 늘어놓으며 궁시렁 대는 짓은 이제 좀 그만하시라.
2019년 1월23일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