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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채 Mar 01. 2020

제 시간에만 가면 된다

찢어진 노트북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98년에 입학을 했는데 당시의 나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뜬구름 같은 장래 희망에 빠져서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잠이 많고 게으른 성격이다보니 대학 1학년부터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당시 수업들은 3번 결석을 하면 낙제를 하는 방식이었다. 지각도 두번이면 한번의 결석이었다. 학교에 가기 싫다보니까 자꾸 외면하고 싶어서 잠만 자고, 그러다보니 지각도 잦고 결석도 했다. 시험에 대비를 못해 두려워 결석을 한다던지, 한번 결석하고 났더니 다음주 과제가 뭔지 준비가 안되어 그런 것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또 가지 않거나 하는 식으로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2년 동안의 성적은 그래서 좋지 않았고, 결국 나는 모종의 계기를 통해 학교를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오게 된다. 당시에는 사실 학교에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굳이 대학을 졸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년의 세월이 지나 나는 제 발로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시 학교를 다니기로 결심했을때 나는 단 한가지만을 가슴에 세기고 지키기 위한 목표로 삼았다. A학점을 받자 뭐 그런게 아니었다. 내가 맹세한 것은 지각을 하지 않을 것. 결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숙제를 못했어도, 시험 공부가 안됐더라도. 그냥 일단 무조건 가자. 가서 앉아있으면 뭐라도 된다. 그런 생각이었다. 옛날엔 맨날 최소 5분을 버릇처럼 지각하곤 했는데 수업 시간 전에 도착해서 모두를 기다리며 앉아있게 되었다. 그날 수업이, 과제가, 시험이 걸리더라도 그냥 일단 갔다. 대부분 막상 가보면 별일이 아니었다. 가기 전에는 오히려 머릿속에서 공포가 커져가 점점 더 외면하려고 하지만, 그냥 제 시간에 가서 앉아 있었더니 어떻게든 다 되었다. 제 시간에 학교에 도착해서 수업을 다 듣는 것만으로도 성적이 잘 나올 수 있었다. 대학에서의 첫 2년은 낙제에 가까운 성적만 받으면서 보냈는데 5년 후에 돌아와 마지막 2년은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다.


대학에서의 첫 2년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봐야 아냐고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 겪어봐야 알았다. 바닥을 쳐야 나는 그제서야 배웠다. 시간을 지키지 않음으로서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지금도 나는 게을러지려면 끝이 없는 사람이다. 이때의 경험으로 그래서 항상 긴장하며, 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냥 단지 ‘시간을 지킨다’ 이것 하나만 중요하게 지키려고 할뿐이다. 단지 수업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 모든 측면에서 그러하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일들. 필요한 것은 제 시에 내 자신이 그곳에 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상대는 늦을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을수도 있다. 하지만 가자. 제 시간에. 그곳에 서 있자. 그러면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아무 일도 없는 것 보다 나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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