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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혼8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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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채 Mar 08. 2022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은 가족의 결합이 아니라 두 사람의 결합입니다


결혼합니다.


오늘 합니다.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준비가 길었습니다. 저와 그녀는 9년을 함께 해왔으니 자연스럽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평생 함께할거라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은 없지만, 결혼이라는 형태로 매듭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이야기합니다. 결혼의 주인은 자식들이 아니라 부모님이라고. 저희는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허례허식을 원치 않았습니다. 결혼 그 자체가 가진 진정한 의미에 집중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결혼식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양가 가족들만 모시고 작은 성당에서의 간소한 서약이 전부입니다. 명동성당 같은 곳이 아니라 조그만 성당입니다. 평생 한번 뿐이라는 말로 권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오늘 하루도 평생 단 한번입니다. 하루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매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 아닐까요. 제게 결혼이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가족이 된다는 선언일 뿐입니다.


결혼을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한다고 하죠.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저축하면서 살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난하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진가로서 어느 정도 수입이 있기는 했지만 돈이 생길때마다 지구 반대편으로 사진을 찍으러 떠났습니다. 그 결과 지난 12년간 85개국을 여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벌었던 돈을 한국에만 머물며 저축해왔다고해도.. 아마 집을 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전세자금이라도 모았을 수는 있겠죠. 그러지도 못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집을 사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남은 돈도 매번 전시한다 사진집 낸다 다 써버려서 통장 잔고는 늘 텅 비어있지만.. 앞으로도 집을 넓히는 것보다는 마음을 넓히는 일에 지갑을 먼저 열고 싶습니다.


직장이 원주에 있는 그녀를 따라 원주에서, 8평 원룸에서 신혼 살림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주변에서 많이들 놀라시더군요. 하지만 어디에서 사는지, 어떤 집에서 사는지. 그게 뭐 대수일까요. 서울에서, 큰 집에서, 내 집에서 사는 것. 원치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사람만 결혼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이 세상 어디에 있든 우리가 함께 등을 대고 누울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그녀가 그렇게 말해주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원주는 이제 저의 새로운 고향입니다. 8평 짜리 집이지만 저희에겐 우주만큼 무한한 공간입니다. 우주 끝으로 천천히 나아간 보이저호처럼 저희도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뭐 자랑이라고 이렇게 주저리 써 내려갔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결혼식을 하지 않는 커플이 저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지방에서 사는게 천지개벽할 사건인 것도 아닙니다. 저희보다 더 작은 집에서 시작하는 연인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부부들의 이야기는 잘 보여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서 보는 화려하고 여유로운 결혼이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걸까요? 전혀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제가 이렇게 저희의 결혼에 대해 시시콜콜 써내려가기로 한 이유입니다. 영화속 한 장면 같은 결혼이 아니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오히려 아주 멋있고 너무 즐겁고 많이 행복할 수 있다고. 아니, 행복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결혼 문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의 결혼은 남들과 똑같이 합니다. 우리 주변도 바꾸지 못하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보다 공허한 말이 또 있을까요. 제 자신부터 변화의 시작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의 결혼은 아주 작은, 개인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변화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간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데 그들의 행복보다 우선하는 관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하객 없이 하기로 했기 때문에 여러분을 모시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제가 무척 좋아하는 스노우캣님께 저희의 가상 결혼식을 그려달라고 부탁 드렸는데요. 정말 너무나 마음에 드는 작품을 그려주셨답니다. 여러분 모두가 바로 이 그림 안에 계시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론은 그래서 오늘, 결혼합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서. 누가 하라고 해서. 조건이 좋아서. 안하면 안되는거니까. 그런 이유로 하는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사람의 곁에 있고 싶어서 결혼합니다.


축하해주세요.


Be merry, we m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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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결혼하는 날에 썼던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어떤 화려한 결혼식보다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앞으로 저희의 결혼 이야기를 연재하기 위해,

이 글로서 시작해보았습니다.


신혼8평에서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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