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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채 Mar 02. 2017

진실된 순간을 위하여

케이채의 포토 산문집 #4

세계적인 사진가인 스티브 맥커리가 최근 이슈에 휘말렸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널리 이름을 알렸던 그의 많은 작품들이 사실은 대부분 연출된 사진이라는 사실이 폭로된 것입니다. 우연하게 담아낸 순간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알고 보니 모델을 고용한 사진들도 있었고, 포토샵을 통해 있던 사람이나 물건을 지워내는 등의 방식으로 사진을 조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비난속에서 그는 자신은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아닌 비주얼 스토리텔러다 라며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습니다.


이 비판의 경계에 대해 조금 조심스러운 측면은 있습니다. 우선 저는 일부 어떤 사진가들처럼 포토샵을 하면 사진이 아닌 것처럼 길길이 날뛰는 타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주 이야기해왔듯이, 과거 필름 시절에도 사진의 색감을 진하게 혹은 연하게 하거나 색온도를 조정하는 일, 콘트라스트를 더 주거나 어느 부분을 더 밝거나 어둡게 하는 작업들은 모두 존재해왔습니다. 어도비에서 이런 기능들을 발명한 게 아닙니다. 이미 존재했던 작업들을 더 간편하게 컴퓨터로 옮겨왔을 뿐입니다. 저는 자신이 바라본 그 순간을 자신의 생각대로 표현해내기 위한 그런 일련의 후작업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맥커리의 경우는 다릅니다. 있는 것을 없애거나 옮기는 행위는 아예 그 순간 자체를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게다가 연출해서 포즈를 취하게 해놓고 우연히 담은 순간인 것으로 포장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연출 사진의 경우는 사실 그 자체로는 잘못이 아닙니다. 맥커리가 말했듯 그가 '비주얼 스토리텔러'라면 특히 그렇겠죠. 그리고 그가 '여행 사진가'라면 사실 별 문제 되지 않는 행위입니다. 많은 여행사진가들이 그런 식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돈을 주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포즈를 취하게 하기도 하죠. 하지만 맥커리의 커리어는 찰나의 순간을 찾아내고 담아내는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마 맥커리의 사진들이 연출이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사람들이 알았다면 그는 지금처럼의 유명세를 가지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아예 연출로써 만들어진 사진들의 범주에 맥커리의 사진이 들어간다면 그쪽에서는 사실 별거 없는 작품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의 작품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큰 이유는 그 순간을 발견하고 순식간에 담아낸 그의 눈과 움직임에서 온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자신도 이를 알고 있기에 자신의 작업을 거리 사진으로써, 다큐멘터리로써 홍보해온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담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써 신나게 자신을 팔아와 놓고 이제 와서 아닌 척하는 것은 무척이나 비겁한 모습입니다.


사실 맥커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진가들이 그처럼 교묘히 아닌 척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한 사진가는 출사 여행이라고 외국에 사람들 데려가 놓고 자기들 사진 찍으려고 한 스님을 왔다 갔다 움직이게 하고 포즈를 취하게 해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서있을 위치까지 지정해서 사진을 찍어놓고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담아낸 것처럼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작가들 또한 많습니다. 물론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 사진은 그렇게 찍어도 됩니다. 단지 그런 사진들이 연출되었고 만들어진 장면이라는 사실들을 숨기는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를 지켜본 분들이라면 아마 아실지도 모르지만, 제가 유독 저를 '여행 사진가'라고 부를 때 정색하고 싫어하는 것 때문에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 이유는 바로 이런 작업방식의 차이에 있습니다.



미얀마의 유명한 인레 호수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인레 호수에는 그곳만의 전통적인 낚시 방식이 있습니다. 발에 나뭇가지를 매달고 노를 저으며 춤을 추듯 움직입니다. 낚시하기 좋은 시간대인 이른 아침과 해 질 녘 즈음 이들 어부들을 여전히 만날 수 있지만 이제는 소수입니다.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그들의 사진을 담고 싶어 하다 보니 포즈를 취해주고 돈을 받는 이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많은 사진가들이 생각 없이 그들에게 다가가 돈을 내놓고 포즈를 요구합니다. 전 그런 사진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꾸며지지 않은 순간이어야만 저에게는 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공을 들였습니다. 그들이 포기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일 그 순간들을 위해 아침 일찍 또 저녁 늦게 계속해서 보트를 타고 나섰습니다. 이런 방식은 실패할 확률도 많습니다. 원하는 사진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순간을 만들어내서 사진을 건진다는 것은 저의 사진이 아닙니다. 저는 여행 사진가가 아니니까요. 가짜 사진을 찍느니 아무것도 담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게 실패를 각오했지만 운이 좋았는지 마음에 드는 사진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스티브 맥커리 이야기를 하니 또 생각나는 사진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사진이기도 합니다. 스리랑카의 남쪽 바다에도 그곳만의 독특한 낚시법이 있습니다. 긴 시간 이곳 사람들은 해변가에 나뭇가지를 꼽고 그 위에 앉아 낚시를 해왔는데요. 수십 년 전 스티브 맥커리가 이 모습을 촬영했고 또 내셔널 지오그래피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이 장면은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사들과 관광객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인레 호수의 어부들이 그랬듯 스리랑카의 어부들도 금세 깨닫게 되었죠. 실제 낚시를 하는 것보다 낚시하는 척 포즈를 취해주는 게 더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사실을요. 더하여 십수 년 전 이곳을 쓰나미가 덮치게 되며 어부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대부분이 농사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관광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골(Galle)에서부터 이어지는 스리랑카의 남쪽 해안도로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 도로를 쭉 지나가다 보면 해변가에 꼽혀있는 많은 낚싯대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곳을 지날 때면 귀신같이 낚시꾼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나타나 자리에 앉으며 사진을 찍으라고 성화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스리랑카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전통 낚시꾼들은 실제로는 낚시꾼이 아니며 낚시를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관광객들의 카메라를 위해 포즈를 취해줄 뿐입니다.



단순히 여행 사진을 위해서라면 그들의 사진을 찍어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도 많이들 그들의 사진을 찍어 관광화보나 여행 에세이에 사용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관광지에 대한 환상을 부여하는 것이 여행사진의 임무니까요. 그 사진이 '진짜'여야 한다는 룰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늘 진실한 순간을 담아내는 일이 제게는 가장 먼저였습니다. 맥커리의 사진을 통해 저 또한 이 낚시꾼들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사전 조사를 통해 실제 낚시의 모습을 만나기가 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쪽 해변가에서 며칠을 머무르며 관광객을 위해 포즈를 잡는 게 아닌 실제 낚시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을 찾기 위해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변의 툭툭(tuk tuk) 운전기사들은 이해를 못했습니다. 숙소의 주인도 그랬습니다. 바로 코앞에 아름다운 해변 앞에 낚시 포즈를 잡아주는 애들이 있는데 왜 걔들 사진은 안 찍겠다는 거냐고 되물었습니다.


동네방네 수소문하며 이른 새벽부터 툭툭을 타고 사방을 헤맨 끝에 드디어 해가 살짝 떠오르던 새벽에 이 낚시꾼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있는 것도 모르고 낚시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쇼가 아니기에 낚싯대도 모두 제법 깊숙한 곳에 있어서 그들 가까이 다가가느라 옷도 다 젖고 카메라도 좀 젖었습니다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인레 호수에서도 또 스리랑카에서도 진실된 순간을 담아낼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단순히 어떤 사진이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방식이 더 우월하다고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어찌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참으로 미련한 사진이니까요. 하지만 피사체를 대하는, 사진을 찍는 방식에서 우리는 분명하고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행 사진가와 저의 작업 사이에도 말입니다. 저는 늘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진실한 삶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이를 담기 위해선 그 사진까지 도달하는 과정 또한 진실되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사진이 아닌, 과정의 결과로 만나게 되는 사진을 위해서. 그들이 바보 같다 웃어도 흔들림 없이 저만의 사진을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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