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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t to Frame Mar 16. 2016

[讀] 우리들의 '붉은' 사랑

송영의 소설 [우리들의 사랑](1929)

 

  연인이었던 그녀가 내게 ‘결혼’에 관하여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나는 항상 ‘결혼’이라는 제도(현실) 앞에 자신이 없었다. 매번 해오던 거짓말들과는 반대로 대뜸 


“너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도로 나는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


라고 선언했다. 남자 친구의 갑작스러운 대답에 충격을 받은 여자 친구는 깊은 상심에 빠졌다. 그리고 울먹이며 내게 말했다. 


“너는 비겁하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좋아한다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 


 

    보통은 ‘연애’, ‘사랑’이라는 말 앞에서 감상적이 된다. 감상에 젖은 채 사랑은 모든 현실을 지배하고 관통할 수 있는 가치로 격상된다. 자신은 그러지 못할지라도,‘사랑’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그녀의 말에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었다. 당시 나는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연히 꾸며 살아가는 꿈을 한 마디 말로 짓밟아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여자 친구에 대한 ‘애정’의 실체가 무엇이든, 그 순간 나는  모두가 믿는 ‘사랑’의 가치를 외면하고 ‘현실’ 앞에 굴복한 비겁한 남자 친구였다.


    송영의 「우리들의 사랑」은 사랑이 갖는 ‘낭만적 가치’와 당대 노동자 계급이 가져야 했던 ‘현실'이 뒤섞여 있는 작품이다. 송영은 일본에서의 노동 경험을 투영하고 창작한 작품으로 문학적 성취를 이루며 이름을 높이던 작가였다. 그는 당시 프로문학의 흐름과 달리 연애와 결혼문제를 다루었다. '연애'라는 주제는 1920년대 문학 담론을 주도했다. 1925년 카프(KAPF) 결성되었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문단의 한 축이 되었다.  강한 목적의식 아래에 있던 프로문학은 다른 시각으로 당대의 주제 '연애'를 바라보려 했다. 송영은 이 지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활동하던 작가였다. 


    「우리들의 사랑」에는 출소 후 일본 본토(동경)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는 조선인 ‘영노’와 그의 첫사랑 용희가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앞날을 개척하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어렵게 재회한 그들에게 목표는 어떤 일이 앞에 닥치더라도 ‘서로 붙어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이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과 앞으로 닥쳐올 더 큰 시련들 앞에 괴로워한다. 영노는 1923년 메이데이를 앞두고 열정적으로 조합 활동에 참여하는 조합원으로 거듭남으로써 극복한다. 용희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자 직공 조합원으로 메이데이에 기수에 참여하겠다는 그녀의 행동은 두 사람의 투쟁의지를 더욱 뜨겁게 한다. 영노와 용희, 그들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그들은 노동자로서 추구하는 ‘계급해방'과  한 개인으로서의 ‘사랑’을 하나의 목표로 융합시키며 이를 돌파한다. 소설은 이러한 양상은 긍정한다. 주인공 영노와 용희는 당시 프로문학 속 익숙한 모습인 사랑이냐 혁명이냐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인물로 표상되지 않는다. 그들은 혁명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혁명하는 새로운 노동자의 길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당대의 비판의 대상이었다.  기본적으로 프로문학은 사랑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프로문학은 사회체제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은 계급 해방의 걸림돌인 자본주의적인 감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대부분의 프로문학에서 연애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랑은 주인공을 각성시키고 계급의식을 성장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프로문학의 관점에서, 송영의 「우리들의 사랑」은 ‘현실’과 ‘사랑(연애)’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사랑에만 기울어졌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非프로문학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우리들의 사랑」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초반에는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중반부에는 계급의식으로 인해 '사랑'은‘탈낭만화’된다. 후반부에 사랑은 '혁명’의 낭만성으로 수렴된다. 이는 ‘프로문학의 급진성’을 잘 보여준다. ‘사랑’(연애)이라는 주제의 낭만적 속성이 부각되고 있기는 하지만 당대의 非KAPF 작가들은 「우리들의 사랑」에서 나타나는  급진적이고 도식화된 사랑의 양상에 공감할 수 없었다.


    ‘영노’와 ‘용희’의 사랑이 계급의식, 더 나아가 혁명(메이데이 참여)으로 수렴되는 과정은‘작위적으로 구성된 기획’이다. 이는 ‘사랑’(연애)과 ‘현실’의 지향점을 일치시키는 발상이 가능했던 1920년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920년대 ‘프로문학’을 주도하던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살아가는 동시에 개혁하고 바꾸어 나가야 할’ ‘현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의 ‘현실’과 맞닿을 수 있다고 믿었고 이를 시도했다. 


     그녀와 결혼 이야기를 했을 때‘나’는 달랐다.‘현실’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나’는 그런 기획을 시도할 수 없었다. 눈앞에 그녀와 ‘연애’라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앞에 있는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의 발목을 잡을 어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주저했다. 그녀는 지금 내 연인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날의 질문에 솔직한 답을 낼 수 없다. ‘비겁한 놈’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무겁게 짓누른다. ‘사랑’(연애)을 붉은빛으로 물들여 자신들의 당위성을 확보한 90여 년 전의 그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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