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규는 기분이 좋아 가족들과 같이 완전체가 된 가정이라는 것에 다시금 희열을 느껴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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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거살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큰 의식이 된 듯 병규는 메일 의식을 치르듯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찍은 사진을 집안의 모니터와 아버지의 자동차 내비게이션 창에 바탕화면으로 꾸며 놓으셨다. 그때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사진을 핸드폰 속에 여기저기 모니터에 띄어 놓는 것을 촌스럽게만 생각했는데 병규는 이제 그 마음을 조금 이해를 할 것도 같았다.
내가 세팅해 놓은 가정은 한치도 빈틈이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무엇인가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안으로 들어오면 어떤 갈등도 트러블도 없는 완벽한 가정이 되었다.
아내는 조금의 불만도 없었고 나를 위해 희생하는 100년 전의 아내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들은 언제나 귀여운 모습으로 나에게 재롱과 기쁨을 주었고 아이의 미래와 교육의 부담이 없었다.
너무 완벽한 모습들이 섬찟하게 다가올 때도 있었다 계속 반복되는 꿈을 꾸고 일어나는 것 같은 공포감이 들기도 하였고 이런 반복되는 행복이 지루해 질지도 모른다.
물론 다시 세팅을 하고 게임 같은 일상을 다시 시작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병규는 어쩌면 세상 사람들 모두 집안에 들어가서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하는 연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감독도 주연도 모든 것을 내가 해야만 하는 역할극을 해내고 있다.
출근을 하기 전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나가기 전에 인사를 하려 불렀다
" 아빠 출근 한다 이제."
조르르 아내와 아이들이 병규에게 다가온다.
"잘 다녀오세요 사랑해요"
"힘내세요 아빠"
준석이만 멀뚱이 서있고 무엇인가 중얼거린다.
'왜 그러지 이 녀석이?'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device not connected'
"고객센터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please connect to customer service center"
준석이는 낯선 목소리로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전원을 껐다가 다시 재부팅하여도 말을 듣지 않는다.
꺼져버린 준석이는 아내도 딸내미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였던 것처럼 의식하지 않은 채 행동을 한다.
'젠장 뭔가 잘못되었군'
출근을 미룬 채 병규는 설치 기사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저번주에 안드로이드 구매하면서 구형 아이봇을 업데이트했던 집입니다."
"네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
"아이봇이 동작이 멈쳤습니다.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과 호환이 되지 않고 인식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 기억나네요 그 아이봇은 너무 구형이라 아마 더 이상 수리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냥 폐기 처분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돈이 더 들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봇을 꼭 살리고 싶습니다. 혹시 전혀 방법이 없을까요?"
"사설업체를 알아보시는 것 밖에 방법이 없을 텐데 썩 권장해드리고 싶진 않네요. 워낙 불법이 많고 별 신용이 없는 곳들이 대부분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처음 목적으로 생산된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변경을 하게 되면 벌금뿐 아니라 법적책임이 큽니다. 그냥 포기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도움이 못 되어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만 그럼..."
또 한 번 갈등이 병규의 마음을 심란케 한다.
새로운 안드로이드 가족들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자체 학습프로그램으로 알아서 업데이트되고 홀로그램기능으로 좀 더 구체적인 기록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 시간에 한 번씩 광고멘트를 하고 홀로그램으로 광고 영상을 비춘다 이삼 분이라도 짜증이 나는 일이지만 이런 옵션이 없었더라면 아마 병규는 구매하기도 쉽지 않았고 매월 유지비를 감당할 수도 없었다.
준석은 아들이라고 대하여주었지만 역시 안드로이드다 병규는 준석과 서로의 간단한 대화나 감정을 나누었어도 이야길 하지 않고 그냥 한쪽 벽에 장식품처럼 세워두어도 무방할 거 같기도 했다.
출근을 위해 문을 열고 나오면서 옆집 여자를 만났다.
쇼커트가 어울리는 작은 얼굴이 나이를 감추기는 힘들 만큼 나이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저리 보여도 내 또래나 더 어린 여성일지도 모른다.
우린 조용히 목례만 하고 못 본 척 갈길을 간다.
어느새부터인가 사람들과의 대화보다는 안드로이드와 대화가 편해졌다.
달리 보면 누군가와 이야기하기보다 우리는 스스로 하는 독백과 중얼거림이 더 편안한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준석이가 안드로이드 보다 그냥 단순한 말하는 압력솥이나 청소봇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수리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만들어 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셈이다. 내가 아들이라 가족이라 의미를 부여한 이상 그것을 부정하여야 하는 자기모순의 감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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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 월드입니다"
"아 네 오래된 구형 안드로이드 수리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초창기 모델들도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어떤 모델인가요 지금 옆에 있으시면 원격을 연결해 드릴까요?"
" 아 지금은 제가 밖입니다. 혹시 방문을 해주시기도 하나요?"
"방문은 못합니다. 직접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선불로 드론배송을 하셔도 되고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장소나 업무시간을 좀 알려주시면 연락드리고 제가 방문하겠습니다"
"네 제가 문자로 남겨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사설업자는 싹싹하고 친절해 보였다.
문자가 바로 왔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 어 뭐가 또 왔네"
내 계정으로 전자 머니가 송금되었다. 이름을 보니 어머니가 보내신 듯하다.
병규는 전화를 건다.
"어머니 저예요"
"어 그래 잘 지내지. 네 계좌로 전자머니를 조금 보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해요"
"네가 번돈인데 감사는 무슨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버지 몰래 보낸 거니 아버지에게는 이야기하지 말고"
"이번주 아빠랑 같이 함 집에 가마 그때 보자꾸나"
"아니여 이번주에는 오시지 마세요"
"왜 새 안드로이드들 구경시켜 준다 너니 무슨 일 있니?"
"사실 준석이가 아파요 곧 수리를 해야 돼서 어디로 입고될지도 몰라요"
"오래되기도 했지 새 걸 샀으면 버려야지 무슨 청승이니 진짜 네 아이라도 되는 듯이 에고..."
" 그래도 제 마음이 그렇지 않은 거 아시잖아요"
"너 어릴 때 생각나니 강아지를 하나 키웠지 경이라고 부르던 잡종 기억나니?"
"굥은 왜 갑자기?"
" 욕을 네 동생이라고 애지 중지하다 병들어서 네가 원했기에 정말 큰돈을 드리고 수술시켜주기도 했다. 그 녀석이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너는 한참 슬퍼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니?'
"네 저는 그래서 더 준석이를 살려보고 싶은 거예요"
"사람에게만 작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언제 가는 나도 너의 아빠도 모두 죽을 테고 이별은 피 할 수 없는 일이야"
"이별이 없는 인연이라는 것은 어쩌면 더 섬찟하고 무서운 인생일지도 몰라 나는 네가 그만큼 정을 주고 행복했으면 이젠 놓아버려도 될 듯싶다."
" 어머니 말씀은 잘 알겠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저도 벌써 불혹이 넘었다고구여 고만하세요"
"그럼 어떻게 다다음주에 갈까 네가 올 거니?"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들어가세요"
"그래 연락 줘라"
화면 속의 어머니는 늘 그대로 이시다 더 이상 늙지도 않으시는 것 같고 변함이 없다 나에 대한 마음도 마친가지로 그대로이다 내가 40줄의 아저씨가 되었는데도 아이 대하듯 걱정뿐이다.
메카닉월드는 멀지 않았지만 산속으로 은밀하게 자리 잡은 장소였다
준석을 데리고 차를 주차하자 다부진 중년 남성이 나와 반겨준다
"쉽게 잘 찾아오셨네요 이리로 들어가시죠"
준석을 핸드카에 실어 나르려 하자 중년남자는 한 팔로 가뿐하게 들고 먼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간다
"힘이 엄청 세시네요"
중년 남자는 나를 보며 별거 아니라는 듯 어색한 미소를 띠운다
"왜 놀라셨나요 저도 반은 당신 같은 사람이니까 그 정도는 별거 아니죠"
"아 네 "
멋쩍게 대답을 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갸우뚱했다.
"저는 바이든이라고 합니다 일단 앉으시죠 제가 잠깐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아 네 한국분이 아니셨군요"
"굳이 국적을 따지면 한국사람이겠죠 국적취득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요"
한국인처럼 생겼지만 워낙 혼혈이 많이 된 세상이라 그가 어디 타국에서 귀화한 사람이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바이든은 한참을 여기저기 뜯어보고 연결해 보더니 슬쩍 만족한 미소를 띠며 나에게 왔다
"초창기 모델이지만 굉장히 좋은 안드로이드입니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요 음 "
"그거 보단 본인에 대해서 당신은 모르는 게 않는군요! 흔치 않게 당신은 인간처럼 잘 학습되었네요".
병규는 아까부터 불안 불안한 지금의 상황에 어리둥절하다 살짝 짜증이 몰려왔다
"무슨 말씀인지 쉽게 좀 해주시겠어요 제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 같이 말씀하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