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2

by 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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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국제택배인가

내가 시킨 건이 맞는데 도통 생각이 나지 않다가 기억이 났다

H의 물건이었다 주문은 k가 본인이 한 게 맞으나 h의 부탁으로 샀던 것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문 앞의 박스를 들고 와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벽면 한쪽에는 테이핑을 뜯은 박스부터 해체도 하지 않고 이단 삼단으로 얹어놓은 박스들이 어수선하다

K는 한동안 직구로 이런저런 물건들을 많이 구매했다

시작은 불과 일 년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언제 쓸지도 모를 물건들이 비좁은 방에 가득하다


본인이 사놓은 물건들 주로 디너세트와 컵들이다 일부 포세린 장식품들과 잡다한 것들...

레녹스와 포트메리온, 빌보 브랜드가 한창 유행이었다

젊거나 나이가 있든 중요치 않았다 여자들 특히 젊은 주부들은 한국도자기나 행남 자기에 질릴 만도 했다 새로운 국산 브랜드나 제품이 나오기는 요원했고 공방의 작품을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그런 시절에 때 맞추어 백화점에 비싸게 팔리던 외국 브랜드들이 직구로 살 수 있다는 게 알려지고 알음알음 직구와 구매대행이 붐을 일으켰다


K는 새로운 박스를 뜯어 물건을 확인하고 한쪽에 있는 레녹스 버터플라이 메도우 세트 박스를 보았다

H가 원했던 것 들이다. 새로운 박스 안에는 일리커피머신이 있었다


조금은 답답하고 쉽게 전화를 걸기 힘들어 테라스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직 지워지지 않은 H의 전화번호가 보인다. 저장이 되어있지 않다고 하여도 쉽게 잊히지 않을 번호지만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를 건다.

일부러 받지 않는지 바쁜 건지 한 참을 지나서야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나야 잘 지내?"

"어, 무슨 일이야?"

" 택배가 왔어 레녹스랑 일리 머신... 내가 보내주려고 낼 모레즘"

" 어, 도착했구나 나도 잊고 있었네... 그냥 택배로 보내는 게 좋겠어."

" 아니 나도 그럴까 하다가 몇 달을 용케 깨지지 않고 한국에 왔는데 택배로 혹시 파손될까 걱정도 되고. 너무 부담 가지 지마 문 앞에 내려놓고 갈게"

" 그래 알았어 오기 전에 연락 줘"


전화를 끊고 후련한 마음이 반 살짝은 기대감도 올라왔다. 오래만의 전화 속 목소리는 여전히 맑았고 나긋나긋했다. 반면 그런 모습 이면의 화난 그녀의 높고 앙칼진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H와 이별은 겨울이 오기 전 늦은 가을이었다.

늦은 나이의 연애라는 것이 그렇듯 사람을 만나는 일도 수월치 않고 마음을 주기도 어려운 반면에 사람에게 쉽게 포기하고 실망한다.

살아온 날들 동안 많은 상처를 입고 아물어 가면서 마음에 옹이는 더욱 단단해져 갔고 또 상처받는다는 것이 두려워 작은 일에도 민감이 반응을 한다. 때로는 내가 다치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고 상처를 준 자책감에 스스로 더 상처가 되는 악순환이었다.


잠실 쪽 하늘을 보았다. 지금 차를 타고 강변을 달려서 늦은 시간 러시아워를 피해서 가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연애 때는 매번 가는 길이 밀리고 고단해도 힘든 줄 몰랐다

해어지고 나니 마포와 잠실의 거리는 그녀와 나 사이의 마음만큼 멀고 먼 거리도 다가왔다. 남쪽 작은 마을 이름 모를 해변가를 찾아가는 것만큼 마음이 버겁기만 했다.


내가 다시 또 H와 같은 미모의 여인을 만나기는 이번 생에 틀린 일일지도 모른다 예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도 사람이라 감정이 있겠지만 직설적이고 강한 성격은 생각보다 내게 큰 반향을 주었다나도 뭐 하나 변변한 게 없는 부족한 인간일 거다. 게다가 연애 중에 욱하는 성격을 자제하려 노력했지만 결국은 터지고 말았다. 자상한 척 애쓰는 척 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에 삐죽거리고 비아냥 거리는 내 모습이 원래의 내 모습이었고 스스로 못났다는 느낌에 끝없이 자존감이 추락했다.


H와 헤어진 후 쓸데없는 모임과 쓸데없이 모이는 사람들을 쓸데없이 만나고 다녔고 종종 먹는 술은 늘 먹고 마시고 취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끝난 옛 인연들에게 전화를 하고 혼자 세상 고독과 외로움, 비통을 짊어진 듯 누가 시키지도 않은 비극의 모노드라마 주인공으로 살았다.


집안을 가득 채운 박스들은 아마 드라마를 찍는 도중 하나둘씩 사 모은 것 같다. 처음에 h의 부탁으로 레녹스 버터플라이 세트를 직구를 시작했는데 그녀와 헤어진 뒤로도 취중에 때론 맨 정신에 메이시스와 아마존 등등의 쇼핑몰사이트 장바구니에 마구 집어넣고 결재를 하였다.

그녀가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마음이었는지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백화점을 가는 유부녀의 마음으로 하였는지 그 둘 다였는지...

어쨌든 지금 방에 가극 쌓인 저 박스들은 처치하기 곤란한 군식구가 되었다.


누이가 한식을 겸해서 올라 온후 그릇들을 나누어 주었다.

자신 때문에 결혼이 깨진 것 같아 어떻게 하나며 울먹이듯 말했지만 하나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혼수는 여자가 해오는 것인데 설마 이 많은 걸 H가 사달라고 해서 산거냐?부터 총각 혼자 사는 집에 이런 것들이 오해받기 쉬운데 다 치워버리라는 등등 누이가 했던 말들이 다 짜증 나고 성질이 났다.

물론 내가 생각해도 이 수십 개의 박스들을 예뻐서 없는 시리즈별로 다 모으려고 샀다고 하면 안 믿을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이걸 산 게 맞나 믿지 못하고 있으니...

그래도 집을 신축하면서 주머니에 돈이 있게 되어 공금을 유용한 죄도 있으니 누이와 동생에게 나누어 주었다. 누이가 탐내는 것 중 좀 비싼 것들은 일부 남겨두었다 헤어졌어도 H를 생각해서인지 그냥 내가 좋아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도 나중에 시난고난한 결혼생활에 암초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적어도 그 당시 내 상식과 소견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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