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게 인간이라면 그 끝은 아마 결혼으로 귀결된다 지금도 안방에는.
K와 H는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는 굳이 서술하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 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것 들이다.
H는 너무 아프고 후회되는 선택의 순간을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져오고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K는 너무 오랜 전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은 일이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그 매개체가 되었던 일리 커피머신은 아직도 집에 H의 눈에 뜨이지 않는 구석에 숨어서 조용히 살고 있다.
H는 당장 갔다 버리라고 악마의 선물이라고 버리라고 했지만 k는 일리커피머신을 버리는 척 집구석 안 보이는 은신처에 피신시켜 놓았다.
일리 커피가 가고 몇 번의 새로운 머신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지금은 브레빌인지 뭔지 하는 원두 자동머신으로 바뀌었다.
몇 년 후엔 더 비싼 놈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리커피머신은 피신처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면 끝까지 목숨을 연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과 만남을 시간의 순차적인 서술을 하려던 것이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등장인물이 너무나 많아지고 본의 아니게 그들의 인격이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게 되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몇 명 보지도 않은 본인의 글을 그런 걱정까지 하다니 좀 오버스럽기도 하지만 나의 주도 면밀함에 큰 구멍을 내는 듯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느낀 대로 픽션을 써 나가야 한다면 결국 서술하고 이야기한 다른 이들이 화자가 되어 자신에 대한 변을 내놓아야만 공평할 듯싶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의 기억에 보태 H에게 물어보고 의중을 살피는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
굳이 글로 써서 아픈 상처를 후벼 파게 되어 그제도 우리 부부는 한바탕 했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존재가 나에게는 절대자의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기에 생사를 건 줄타기 같은 글을 계속 쓰다 보니 피로감이 극도로 달해가고 있다.
동강동강 이야기들을 술 한잔 한 후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 밥 먹다 말고 생각나는 대로 글로 쓰고 마지막에 총괄해서 묶는 것이 나을 듯하다.
시간이 지나서 싸웠던 기억들이 다 잊힌대도 그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