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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May 10. 2024

옛사람을 만나면

계속 보아오지 않았다면 다시 보아도 서로에게 기대어줄 사람은 없다.

조금씩 밖으로 나돌고 있다.

마음은 채 기어 나오지 못해 작은 방에 머물고 있지만 몸뚱이라도 먼저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활의 루틴이 굳어져버리고 가정 안에서 지기와 모든 것을 같이하여야만 하는 부담감이나 의무감의 굴레를 벋었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실상은 심리적 공간적 단절된 10여 년의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버렸다.

예전만큼 흥미가 가는 일도 없어지고 자주 찾았던 장소도 사람도 없어지고 변해버렸다.

무슨 일이든 혼자서 해야 하는 것이 막막하기도 했고 내가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이 더 답답한 일이다.

굳이 지인들에게 이런저런 일로 우리는 갈라서는 중이고 내가 힘들고 외롭다고 떠벌떠벌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무미건조하게 지나가는 말로 무심한 척 하기는 더 힘든 일이었다.


한 명의 친구에게는 이야기를 했고 무슨 해답이나 묘수를 충고나 조언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이야기를 들어줄이가, 마음을 보여줄 이가 그친구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족했고 혼자 먹지 않아도 될 술자리가 그리웠었다.

어울리는 여러 친구들 중 나름 사리가 분명한 친구이기도 했고 개인적인 것을 굳이 다른 이에게 전하는 일도 없을 거라 믿었다. 

여럿이 어린 시절부터 같이 해온 친구들이라도 다 친하지는 않게 된다.

경제적으로 차이가 나게 되고 살아온 방식이나 물리적인 거리의 비례만큼 달라진 서로의 가치관이나 정치색이나 이런 것들은 마음에 벽을 치게 된다.

그래도 친구이니 여럿이 모이면 감안을 하지만 개별적으로 보게 되는 일들은 점점 멀어진다.

나는 유치하게 가장 멀리 살고 바쁘고 다른 친구들과 시답잖은 사담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 친구에게 기대러 간거일지도 모르겠다.

양수리에 사는 그 친구를 만나고 와서 행복하게 잘 사는 친구부부를 부러웠기도 했지만 어쩌면 괜한 이야기를 하였나 후회도 되었다.

나의 일은 더 이상 누구와 나누고 부축을 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다.


아내는 질투나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다.

이성의 지인을 만나거나 연락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성 간에는 단절과 철벽만이 진전된 관계로 발전을 사전에 예방하는 일이라 생각을 했다.

일예로 클래식과 독립서점을 결합한 플랫폼 앱을 통하여 연남동에 공연 이벤트를 간 적이 있다.

거기 주최자는 또래의 여성이었고 사실 강남에 독립음반제작하는 클래식 마니아 모임에 (물론 나는 그다지 클래식에 조외가 깊거나 즐겨 듣지는 않는다) 알라딘인가 하는 서평이벤트를 통해 안면이 있었다.

그 시기가 간격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공연장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옆에 있는 아내를 의식했는지 그냥 가볍게 지나쳤었다.

아내는 내가 그 여자와 무엇인가 모르는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공연과 이벤트가 끝나는 내내 화난 표정으로 있다가 끝나자마자 화를 냈었다.

자신이 와이프라고 떳떳하면 왜 인사를 시켜주지 않는지 그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떻다는 듯...

길거리에서 그런 말다툼은 오히려 내가 화가 날 지경이었다.

계속 볼사람도 아니고 그 정도로 아는 채 하는 것으로 인사가 족하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매사가 그런 식이 었기에 나는 아는 지인들과 점점 멀어져만 갔었다.

동성인 경우에도 자신이 본 사람들만  이해를 하는 편이었고 때때로는 색안경을 끼고 친구와 지인들을 경계하였다.

물론 결혼 전에 내 모습이 항상 사람들이 많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기에 그중애서 대다수는 음주를 좋아하고 성실이나 준수와 먼 사람들도 많았기에 이해를 했다.


아내와의 별거 기간이 길어지며 나는 혼자 궁상을 떨고 계속 있어선 안될 거 같아 부러라도 외출을 자주 하고 예전 인연들을 몇 번 만나기도 한다.


십여 년이 지난 후의 모습들이 사뭇 궁금하기도 하였다.

결혼을 하고 그럭저럭 안정을 찾아가는 사람,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도 씩씩한 이들,

늙어 버린 모습에 당황해하기도 하고 아마 나를 보고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몰락하여 최악의 상황인 이도 알게 되었고

행복해 보이던 이도 있었고 

암수술을 앞둔 이

그냥저냥 무심하게 잘 살고 있는 이도 있었다.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짧지 않은 시간이라 우리들은 모두 달라져 있었다


꼭 내가 성공한 인생은 아니더라도 실패한 삶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런 나눔과 분별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능력이나 소임만큼 어깨에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타인을 통하여 자신을 보려 하는 생각이 부끄러웠다.

과거는 과거이다 과거에 애틋하고 친밀했다 하여도 기억 속의 이들은 변했고 나는 더 많이 변했다 더 변해갈 거고...

뜬금없는 오랜 기억 속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그냥 씁쓸한 확인만 남는다.

모두 다 다 그냥 살아가는 거지 부러 위로를 받거나 위로를 해줄 필요도 없이 그냥 걸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오늘은 그래도 마음이 헛헛해서 책방을 들려 오은시인의 책과 장강명 소설가의 신간책을 사 왔다.

빵집에 가서 빵을 사면 마음이 여유로와지고 행복감이 들듯이 채 다 읽지 못하더라도 책을 사거나 음반을 사면 마음이 위로가 된다.

안면이 있는 무슨 책방지기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끝남동에서 집까지 밤길을 걸었다.


상수역까지 와서 술집에 들러 아무도 없는 테이블 하나에 앉아 술을 마시고 늦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취한 김에 씻지도 않고 쓰러져 잤다. 


사람이든 무엇이든  지키려 하는 하는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었나보다.

항상 지나간 것에 미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보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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