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낮은 능선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한참을 차가 올라가고 있다.
멀리 작은 창고 같은 집이 한채 보이기 시작하며 한낮인데도 깊고 음침한 산기운이 내리깔리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앉은 마이클은 고개를 돌리며 현서를 바라보았다.
"거의 다 왔군요. 어려운 결단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아닙니다. 저도 이게 마지막 희망이라..."
"아시다시피 우리 인류의 많은 유산들이 유실되고 사라졌습니다. 많은 종교와 정신적 인류유산을 회복하는 일은 23세기에 살아남은 인류의 큰 염원입니다. 꼭 성공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유네스코 본부에서 온 일행은 연신 고맙다는 말과 이번 일의 의의와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못 고치는 병이 없는 현세에 아직도 미해결로 남겨둔 병들 중 하나가 현서가 가진 병이었다.
현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고치려 백약을 다 써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이것은 외과적 질환도 아니었고 신경계나 정신과적 질환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비슷한 효능을 기대하고 마약성분의 진통제와 안정제만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전 세계에 200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 중에 저와 같은 케이스가 처음이라고 하니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
"삼십여 년 전에 한명을 끝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발견된 것이 저희로서는 기쁜 일입니다. 북방 몽골로이드계에서만 전승되는 것이니 선택받은 것이라 생각하시는 게 마음이 좀 편하실 겁니다."
차는 계속 덜컹거렸고 멀리 보이던 집이 점점 커지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집 앞 도로변으로 나이가 적지 않아 보이는 여자가 흰색 한복을 입고 마중을 나왔다.
팽팽한 듯했으나 가까이서 보면 자글한 주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눈매가 매섭고 염색한 머리끝이 희끝해서 젊은지 늙은 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고생하셨지요."
마중을 나온 이는 현서가 두 번째 보는 여인이다.
현서의 신어머니가 될 사람이고 현서는 그녀의 신아들이 될 예정이다.
창고처럼 생긴 집안으로는 사람들이 나와서 부산하게 제사음식을 차리느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
요즘은 먹지 않아 보기 힘든 음식들이 제기 위에 차곡히 쌓아져 있었다.
포마드로 단정히 머리를 넘긴 박 선생이 조금 어려 보이는 남성에게 무어라 이야길 하자 통통 안 얼굴의 남자는 연신 땀을 비질거리며 고개를 조아린다.
제사 음식에 쓸 햄버거를 소고기패티대신 치킨을 썼다고 지적을 받은 것 같다.
망고와 두리안의 머리를 치고 제기 위에 삼단으로 탑을 쌓는다.
일정한 법칙이 있는 듯 순서를 고심하며 갸웃거리다 통통한 얼굴의 남자는 연신 박 선생에게 질문을 하면 박 선생은 혀를 차며 일일이 직접 자리를 알려주었다.
갓 나온듯한 거대한 바스크케이크와 알록달록한 탕후루가 들어오고 연이어 허연 국물이 이색적인 똠양꿍을 끝으로 제사상차림이 끝났다.
신어머니는 현서를 박 선생에게 인사를 시켰고 데리고 온 악사들과 일일이 목례를 했다.
박 선생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다 사뭇진지하게 현서에게 말을 건넨다
"최근 몇십 년 동안 내림굿을 받은 사람이 전무하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
"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절대로 명심하게 접신을 하는 그 순간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일세 잘못하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귀물이 되어"
현서는 두려움에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바닥에 앉은 흰색한복을 입은 남자들이 각자 악기를 꺼내 연주를 시작하자 신어머니가 분홍 색동 두루마기를 걸치고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사뿐히 앞으로 두 걸음 좌로 우로 그리고 뒷걸음을 치며 두어 번 반복하더니 껑충거리며 뛰며 춤사위가 시작된다. 천정 위로 머리가 닿을락 말락 뛰더니 우뚝 섰다.
"아이고 가엽구나 네가 그리 심성이 고운 아이가 참으로 애를 썼다 애를 써"
현서를 바라보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현서는 어찌할지 모르다가 신어머니에게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박 선생과 일행들이 한 번씩 나와 내림굿을 하고 나서 현서를 앞으로 불러들인다.
산신령을 그려놓은 벽을 향해 절을 두 번 시키더니 박 선생은 현서를 붙잡고 무어라 이야길 하는 눈빛이 사뭇 매섭고 단호하다
징소리와 장고소리 피리의 요란한 음색이 방안을 들이치며 휘몰아 가시 시작하는데 현서는 엉거주춤 차마 뛰지를 못하고 어그적 거리기만 할 뿐이다.
박 선생이 앞으로 나와 현서 뒤에서 허리춤을 붙잡고 두장정이 갑자기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이제야 다리에 힘이 들었는지 현서는 뛰기 시작하며 피리소리 장고소리 징소리가 신이 나서 점점 커져만 간다.
십여분을 땀을 삐질거리며 뛰는 현서를 보며 박 선생이 추궁하듯 물어본다
"무엇이 보여? 뭐가 보이지?"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허 득달같이 떠오르게 하나도 없어?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다시 뛰어!"
징소리 두둥 울리고 장구가락이 휘젓는 나무채에 걸려 방안을 감싸기 시작했다. 악사의 피리소리와 요령소리가 엇박자를 내다 한 몸처럼 입을 맞추어나간다.
새하얀 버선벌이 바닥에서 한 뼘을 튀어 오른다. 일정한 장단에 맞추어 뛰어오르는 버선코가 바닥에 눌러앉는다 싶더니 멎춰섰다.
눈을 꼭 감은 현서가 고개를 숙이고 서있자 음악이 멈추고 시간이 정지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이 얼굴을 가로질러 턱 끝으로 굴러 떨어졌다.
"다시 뛰어!" 박 선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요령소리가 흔들거리며 현서는 다시 껑충거리기 시작한다.
줄넘기를 하는 듯 스카이콩콩을 타는 듯 규칙적인 점프를 하는 현서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는 현서를 바라보다 박 선생이 다시 묻는다
"보았어? "
"보입니다!"
" 그래 뭐가 보여? 누가 오셨어?"
거북이, 호랑이, 여자들, 아기도 어 어어....
채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갑자기 현서는 고목처럼 푹 쓰러져 일어나질 못한다.
"허허 이것 봐 줄을 서라지 않았나 누가 새치길 한 거야?"
"저놈은 죽어서도 개버릇 못 고치고 또 사골 쳤군!"
"내가 명색이 하나님을 모셨던 큰 교회의 목사인데 그것도 못 봐주나"
"네놈만 잘났나? 나는 큰절의 사무총장까지 한 몸인데 너만 못할까"
"그래 그 잘난 종교인들이 어찌 천국을 가시고 열반을 오르셔야지 어찌 구천을 떠 돌다 여기에 줄을 서시는 게요?"
" 고만들 합시다. 백여 년 전 안억울하고 안원통하게 죽은 이가 누가 있겠어 저 현서라는 친구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 이러다 시간이 다 지나가지 하루에 한 명씩 들어가도 수백만 년은 될 것요"
" 그래 맞다고 원래대로 다시 줄을 섭시다"
"한 번에 100명씩만 자자 줄을 서시오 줄을."
박 선생은 고개를 절로 흔들며 현서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미 모신 분이 있는데 나도 클날뻔했어 자네가 무신 힘이 있다고 신아들을 받는가"
신어머니는 현서를 부둥켜 앉고 흔들어 보았다.
법당 안에 수십만 명의 귀신들이 떠드는 소리에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박 선생이 갑자기 일어나 노래를 부른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그의 어린양..."
바리톤의 저음이 깔리는 법당안이 노래가 생경스럽다가 볼볼이 통통한 남자가 조용히 징을 치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피리를 불던 이는 연신 계송을 읆고 신어머니는 알 수 없는 이국어를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일년이 지난 후부터는 사람들이 신당에 몰려들었다.
절에 다니던 할머니도 교회 권사나 집사님도 알라를 믿는 하마드도 모두 신당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종교비하의도 없음! 중고교 미션스쿨 집안은 불교이고 무슬림 안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