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이 지나도 아직 멀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건 새삼 그 누군가에 입을 통하여 확인을 하게 되면 많이 꽤 많이 당혹스럽다.
젊은 시절에는 사는 것에 어떠한 의미나 가치를 부여할 만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은 한 시절 먹고 살아가는 것, 향유하는 것을 준비하고 쟁취하고 어찌 보면 다람쥐같이 겨울 같은 노년을 위한 부지런함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종교와 어떤 신념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그렇게 아등바등 견뎌내는 인생살이에 가장 큰 이유를 묻는 다면 난감할 것이다.
자식이고 가정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가장 당위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게 혼자는 살 수가 있겠지만 많이 재미없는 목숨의 연장일 것이다.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행복이란 것 만족이란 것은 없을 것이다. 관계 속에서 서로 자극을 받고 성장(? 변화)을 하고 충만감과 안정을 느끼게 된다.
좋은 관계일수록 서로에 대한 시너지는 더 커지고 행복감과 일체감을 얻을 수 있기에 이기적이든 하다 못해 사이코나 소시어패스라도 관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연기라도 하게 된다.
좋은 관계와 인연의 소중함을 알기에 나의 모습을 좀 더 신경 쓰고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말들과 행동을 하고 내가 한 것만큼의 최소한의 기대감을 상대에게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가족이라는 것 일방적인 한 편의 희생을 우리는 숭고하게 생각하고 감사해 마지않는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키워준 부모에게서 늙고 병든 자신을 케어하는 자식에게서 평등한 등가원칙이 깨어져버린 상황에 대하여 감수하여 준 이들에게 감사와 신뢰를 가지게 된다.
사람의 측은지심이나 사랑을 주는 이타행위에 대하여 포유류의 선험적인 기질 내지 유전의 힘인지 전승되어 온 지혜이며 학습된 일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적어도 사랑한다는 마음의 기작은, 에로스가 아닌 보편적 사랑이라는 것은 실체 하는 진실이기에 믿어야 할 수밖에 없다.
길가의 고양이들이나 작은 강아지나 불쌍한 떠돌이 개들에게까지 우리는 사랑이라는 기작을 일으킨다. 그것들이 있던 없던 하등 문제의 소지가 없는 그런 존재들이지만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자비심과 동정심 또는 애착을 만들어 낸다.
하물며 같은 종의 사람에게서 자신과 인연이 된 존재에게서는 오죽하랴...
세상사의 모든 일들이 성문법으로 관습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 불이익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사람들은 더 이상 가지지 않으려 한다.
단지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적정하고 상호 만족할 만한 타협과 둘 만의 룰이 대신하게 된다.
부부라는 것의 제도의 문제는 늘 여기서 삐걱거리게 된다.
외롭게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의 상처보다 듣는 이의 상처도 그 보다 작지 않음을 모르지 않을 것 같은데 결국은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다.
같은 꿈을 꾸고 이루고 살아가야 하는데 너 혼자 개인플레이를 하기에 우리의 팀플레이가 깨지고 있어!!!
경고 같은 말들이 나를 움츠려 들게 한다.
역할과 권한과 의무가 정해진 인생에서는 더 이상 고민할 거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종교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너무 많다.
우리는 어떤 율법에도 구속되어있지 않다.
어디까지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고 무엇을 참아야 하고 화가 나고 불만족스러운 상황의 책임을 누군가에 전가해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에 대해서도 모른다. 아니 정하여 놓지 않았다.
어느 정도 밥벌이의 부담이 없어질 즘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 갈 즘 내가 해보자 하는 인생을 이야기하고 나는 그 계획대로 살고자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생산적인 일이 지난하다는 것이 문제일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성공이 보장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인지, 무엇이 그녀를 화나게 했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혹시 알아 하다 보면 언제 즘 상도 타고 상금도 받고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며 우스갯소리를 하였지만 스스로 자조적인 농담이란 것을 나도 그녀도 알고 있다.
부부란게 헤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만다.
어쨌든 계약을 했고 지켜야 할 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럼에도 버거우면 그 그 짐을 벗어던지는 게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난 그 가해자가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피한다.
최근에는 또 다른 우리 부부문제의 핵심을 알아 버리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혼자만의 고치에 들어가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참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난감하다...
나는 돈을 벌려 낮에는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퇴근 후에 무엇이든 집안일을 거들고 설거지와 청소를 빨래들을 담당하고 그리고 남는 시간이라 봤자 하루 한 시간 두 시간 정도 그것도 책도 읽어야 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고 있었는데 그녀는 집에 있는 온시간과 마음을 자기에게 집중하길 바란다.
저녁에 한 두시간 잠깐 다녀오는 스터디나 줌으로 일주일 한번 하는 모임이나 모두 꼴 보기 싫어한다.
이렇게 살 거면 혼자 살지 결혼을 뭐 하려 했냐고 항변하다.
살짝 미안하다. 아니 많이 미안하다.
내가 감추려 한건 아니지만 이렇게 되어갈지 나도 몰랐으리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든다.
고등학교 시절 생각이 났다. 문과를 갔음 했으나 이과를 가야 앞으로 인생살이가 편할 것 같다해서 내 주장을 못한 것, 공부도 썩 잘하지 못해 후기에 아무 대학이나 간 것을, 재수를 하겠다고 이야기하지 못한 것, 세상일이 다 만만하게 보여 글을 쓰는 작가는 그냥 틈틈이 해도 되겠지 하고 오만했던 것, 그러다 아주 잊어리고 30년을 그냥 살아온 것, 내 인생에 있어서 관계의 중요성을 나는 너무 맹신했었다.
상대가 싫어하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내가 참으면 되리라 나는 상관없어 나는 특별하고 강하다고 믿었다.
아버지와 싸우기 싫었고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게 싫어서 300원짜리 목만 돌아가는 프라모델 로봇을 골라 만족했고, 동생이 5천 원짜리 장난감을 사달라고 때를 쓰고 울어도 그렇게 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도 나는 착한 아들이 더 중요했다.
또다시 반복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아내가 아버지의 역할을 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아내의 어려움이 나를 주저하게 한다.
세상에 재미난 것이 너무 많지만 내가 가질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한 것들이 너무 많다.
왜 그래야 하지?
내가 하고픈 것 즐거운 것에 죄의식과 부담감을 가지며 살아야 하는 것의 문제는 결국 나는 매여있지 않아야 한다는 와이프 말이 맞는 것일까?
어떻게든 비비며 버텨야 할까?
그냥 나도 이것도 저것도 다 해볼 거야 다 가질 거야 때를 써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