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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Oct 23. 2024

싸움후 상상하기

내색은 안 했지만 마음에 가라앉은 앙금들이 한번씩 떠오르다 흐트러진다.

뿌옇게 들여다 보이지 않은 혼탁함이 침전될 때까지 또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언제가 어느새 가라앉기는 할 것이다.

산소에 가기 위하여 토요일에 누이는 아침 일찍 문자가 왔다

매형과 차로 이동하기로 했고 동생네와 우리에게도 줄 음식들을 일부 만들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동생네로 가서 음식만 내려놓고 2대로 가려나 보다 했지만 우리 집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차로 가기로 했다.

옆지기와는 전날 조금 다툼과 냉랭한 분위기여서 나만 준비를 하고 나오려 했었다.

아직 잠에 빠져 있는 이를 굳이 깨우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줄 음식도 건네받고 집안으로 올려다 놓으면서 아내를 깨웠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미리 사전에 연락 없이 오는 누이를 원망한다.

시간이 없는지라 그냥 출발한다.

잠깐 인사라도 했으면 좋았지만 억지로 시키고 큰소리가 나거나 뚱한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안 좋을 듯해서 나왔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산소 주변으로 내 마음처럼 쓸쓸한 풍경이다.

아래 있던 산소 한 곳도 파묘가 되었다.

자손들이 찾지 않는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흉물 아닌 흉물이 되어버린 산소가 흔적을 지웠다.

이런 식으로 한 기 두기 산소가 없어지게 되면 자연녹지를 만들기 위하여 방치 내지 자연복원을 시킨다고 한다.

이제는 산소를 쓰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고 모두 납골당이나 수목장으로 대체하여 간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신 산소는 한쪽 끝에 붙어있다.

큰집 장손인 큰아버지 묘를 사촌형이 없애면서 위에 넓게 자리 잡은 할머님 묘소를 없애고 나머지 아버지 형제들은 각자 따로 묘를 만들던지 화장을 하시던지 들어오시지 않았기에 우리 집만 덜렁 있다.

언젠가는 우리도 정리를 하여야 할 텐데 아직은 조금 이르기도 하고 준비되지 못해 억지로 버티고 있다.

멀리 공릉저수지가 보이던 풍경도 웃자란 나무들과 집들이 키가 올라가면서 보일 듯 말 듯한다.

맘에 들지 않은 부모님의 안식처를 생각하면 늘 무겁다탈상이 아직 이른 탓에 미루기만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모셔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어렵게 사는 동생네와 자식도 없이 맨날 툭탁이는 나를 보며 누이는 오래 있기도 그랬는지 일찍 성묘를 파하고 바로 돌아간다고 한다.

차를 타며 갈 채비를 하는 매형과 누이에게 잠깐 기다려보라 하며 옆지기에게 전화를 하지만 받질 않는다.

되었다고 손사래를 치며 차는 떠난다.

대충 정리를 하고 집 앞에 앉아 옆 병원에 일하는 친구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한다.

자신도 올래 윤년이라 이장을 하려다 어그러져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집안을 들어가니 샤워 중이라 전활 못 받았다는 옆지기는 치장을 하고 외출 준비를 한다.

누이네만 오면 여기저기 쏘다니다 늦을 거 같아 약속을 잡았다고 한다.

싸울 힘도 말할 기분도 아니다전화라도 한번 드리지 하려다 만다.

어차피 지난 일이고 뻔한 관계를 억지로 접붙이기를 하기도 쉽지 않다.

내 체면이나 모양새 좋은 그런 모습들은 내다 버린 지 오래다 그냥 평화로왔으면 좋겠다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다.

집안을 정리하고 술을 혼자 조금 마시고 누워서 생각을 한다.

언젠가 유튜브로 보았던 프로그램을 생각했다.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 용서 용팔이 김용남과 쌍칼 길정운 전직 조폭들의 화해를 다룬 다큐 같은 설정극이겠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아직도 있음 둘을 보냈음 한다.

아니 제수까지 셋을 출현시키고 싶다.

중년 여자 셋이서 동서 올케 시누이의 갈등을 여행을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기 시작하며 결국 마음을 열고 화해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든 남미 끝의 파타고니아든 히말라야 능선을 걷고 오라 하고 싶다.

멀리 보이는 고개 끝으로 보이지 않지만 또다시 시작될 길이 이어질 것이다.

한고비 고비를 넘어가며 우리는 외롭고 혼자이기에 나도 너도 똑같이 힘든 길이기에 서로 다르지 않은 역정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옆지기가 수술한 무릎이 아프다고 중간에 쓰러진다.

누이와 제수가 8척 장신의 와이프를 업고 끌고 고생하며 여정을 완료한다.

어느새 옆지기는 마음의 앙금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더 이상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야겠다며 울먹이며 지난 일들을 바람에 툭 털어버리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젠 싸우지도 피하지도 않고 서로서로 면세점에 들려 같이 쇼핑을 하고 서울에 돌아가면 온 식구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자고 한다.

뭐 이런 스토리...

근데 아마 안될 거다

큰 비용 들여 그들과 왜 가냐고 펄쩍 뛸 것이고 만약 간다면 계산은 정확해야 하는데 1/n이 정확하지 않다고 불만일 것이며 취향이 너무 안 맞는다며 내가 왜 일정을 양보해야 되냐며 이런저런 구실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늦게 들어온 옆지기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볼까?

아니 지금 마음이 내가 많이 불편하기도 화도 안 가라앉아서 포기했다.

옆지기는 5월에 같이 가기로 한 해외여행을 이런저런 불만으로 지인과 틀어버린 이야기가 생각이 났지만 그렇다고 대신 시자 들어가는 사람들과 가볼래하고 감히 말하지 않았다.     

그냥

그래서

누워서 상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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