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숙제)
꿈.
누군가 꿈을 물어보면 난감하다. 자문을 해봐도 역시 난감한 질문이다.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실현 가능한 것을 이야기 하여야 하는 것인지, 불가능, 내지 확률이 작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이상향을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순간 갈등이 생긴다. 꿈이란 게 사전적으로 풀어보면 그저 잠자는 사이에 꾸는 것, 욕망, 욕구, 예지, 선몽의 발현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의 뜻은 바람이나 희망, 소원, 목표 등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현실이 아닌 미지의 미래에 이루어질 꿈을 이야기한다. 어른이 되어 가면서 미래가 닥치고 나니 실패한 꿈들이 쌓여간다. 점점 더 소박해지고 높은 확률의 성공이 가능한 것을 꿈이라 이야기한다.
어린 아이였을 때는 꿈이 무엇이라고 묻는 말이 넌 커서 무슨 직업을 가질 거니? 하고 물어보는 줄 알았다. 공부를 좀 잘하면 의사나 판사니 과학자가 된다고 하고 체격이 좋고 운동을 잘하면 야구선수, 축구선수, 이런저런 그때마다 유행하는 스포츠의 챔피언이나 금메달리스트가 되겠다고 한다. 물론 마음씨 착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는 대통령이니 마더 테레사나 같은 성직자를 말하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기업인이 되겠다고 한다. 자신의 욕망이나 목표에 한발 더 나아가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럴싸한 부사나 형용사가 붙는다. 그마저 아닌 아이들도 있었다. 별 꿈이 없었는데 자꾸 물어보면 어른이 되고 싶다거나 아빠나 엄마가 되고 싶다고 한다.
어른이 되고 나니 젊은 시절에 꿈은 누군가 물어보면 부담이 되고 여간 신경이 긁히는 질문이 되곤 한다. 나는 안 그래도 흐릿한 미래에 대해스스로를 속여가며 무엇이 된다거나, 무엇을하고 싶다는 속내를 보여주기 싫었다.
그래서 어른들이나 친구들이 너의 꿈은 뭐야?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세계평화와 남북통일“
요즘 내게 다시 물어본다면 소설이나 시를 써서 인세를 받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솔직히 등단이 수상이니 그런 것은 한 십 년 이십 년 하다가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젊고 어려서부터 수년 십여 년을 작가가 되려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다 보니 내게도 염치란 게 생겼다. 공짜를 좋아하지만, 아무한테나 달라면 되겠는가?
진짜 어린 시절의 꿈은 누구나 그랬듯이 수시로 바뀌고 너무 많았다. 티브이에 방영했던 미드 속의 주인공이나 방랑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에어울프라는 미국 드라마를 좋아 했었다. 주인공인 장 마이클 빈센트가 잘생긴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멋진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깊은 산중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사실 헬리콥터나 주인공의 외모보다 그가 사는 집과 생활, 우울하고 사연 있어 보이는 캐릭터가 부러웠다. 숲속의 비밀요새 같은 집에서 혼자 첼로를 켜는 모습이 내겐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중학생이었던 나이에 조숙했는지 나는 나만의 아지트를 가지고 싶고 학교고 집이고 다 떠나서 요즘 인기 있는 중년의 자연인처럼 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한참 읽던 추리소설의 탐정이나 하드 보일드 소설의 주인공처럼 위험하고 위태로운 떠돌이가 되고 싶기도 했다. 농구대잔치를 보면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고, 조용필 형아처럼 소녀팬이 따라다니는 인기가수가 되고 싶기도 했다.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처럼 간질거리는 음악은 다 갖다 버리고 진짜 남자처럼 강력하고 위험한 음악을 하는 멋진 록스타가 되어 세계로 투어를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중학교 때 국어 시간에 숙제로 쓴 시가 교지에 뽑혀서 시인이 되어야지 싶었다가 이문열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고등학교 때는 문예부에도 일 년 있었다. 어차피 잘 공부가 망이었는데 학력고사 잘 봐야 한다고 그만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또 욕심 사납게 이 모든 게 다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밥 딜런 같이 시를 쓰고 소설을 써서 노벨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인 밴드가 되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가 복싱 챔피언이 되고 키가 마구 더 커져서 NBA에 스카우트되기도 하는 꿈이다. 또 일이 없음 아무도 없는 오지의 산속에 은둔하는 신비하고 미스테릭 한 캐릭터가 되고 싶기도 했다. 때때로 바하마의 해변가나 섬으로 들어가 모히또를 홀짝이고 주말드라마에 나오는 비운의 재벌가 남자처럼 가정불화로 괴로워하며 혼자 응접실에 앉아 비싼 위스키를 홀짝이듯 위스키 재어 놓고 먹는 남자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쭉 쓰고 보니 참으로 철이 없었다는 생각에 실소가 나온다. 그럼 나는 이런 꿈들을 위해 노력하고 열심히 살았나 뒤돌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꿈이 없이 살았던 것 같고 솔직히는 잊어버리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오십 중반의 나이가 되어가는 시점에 꿈을 이야기하니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지만 시도조차 안 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다. 세계평화니 남북통일은 고사하고 나 하나 개인의 일생이 밋밋하게 늙어가고 죽는다는 것이 좀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꿈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 일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계 속 사회 속에서 얻어지는 인정과 명망이라는 것이 사실일 듯하다. 이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없고 그 돈으로 다 해결된다고 해도 돈을 버는 일이 더 어려울 거 같다.
꿈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어린 시절 막연한 바람이나 큰 야망이 없어진 지 오래지만 무엇인가 살아가는 동력이나 힘이 되는 것은 작더라도 꿈을 꾸는 일이다.
야망이 없고 발전이 없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는 아내의 말은 게으르기 그지없는 내가 술추렴이나 다니고 망가지는 게 보기 싫어 한 말이었다. 게으르고 술취한 남자와 같이 사는 느낌은 하류 인생으로 평생 살 팔자 같단 말까지 했었다.
난 솔직하게 야망이 별로 없고 소심하고 안전한 게 제일이라는 생각이다. 단 술이나 건강이나 인생을 망칠 요인이 될 잡기들은 줄이고 있다.
저녁이나 주말마다 책을 들여다보고 뭘 쓴다고 하는 내가 처음에는 긴가 민가 하다가 이제는 아내가 제법 인정이나 격려를 해준다. 나는 혹여라도 상을 받거나 인세가 나오면 삥땅 치지 않겠노라는 말도 빼놓지 않고 다짐을 한다. 또 다른 거 한다고 돈 집어쓰는 남편들 사례도 계속 이야기하고 상기 시켜주고 있다.
등단이니 능숙한 작가가 되기 위하여 돈을 내고 배우는 곳은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 없는 살림에 더 벌어도 시원찮은데 나이 먹고 헛돈 쓴다는 아내의 말이 무섭기도 하다. 그보단 다 던지고 매달려서 무엇이 되려고 하다가 낙담하거나 의기소침해질 나 자신이 더 두렵다. 어차피 제대로 글을 쓰는 작가가 안 될지라도 늙어 노인이 될 때까지 할 소일거리와 취미가 생긴 거로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꿈이 고통스럽고 힘들면 악몽이다. 그래도 견디고 참아낼 자신과 희망이 보이면 갈 일이지만 힘들게 도달한 꿈은 그게 결코 끝이 아니다. 어쩌면 꿈은 여정일 거 같다. 꿈으로 가는 과정이 험난하고 위험하더라도 즐겁고 행복한 길이 되어야 한다. 인생 죽으면 다 부질없다 사는 동안 재미지게 맘 편하게 살다 가는 게 장땡 맞는 거 같다.
꿈 깨라는 말과 꿈을 꾸라는 말이 공존하는 헛갈리는 세상에서 줄타기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