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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Sep 03. 2024

문이 없는 방

(여행글쓰기 숙제, 넘다에 대하여)

문이 없는 방  


   

                                                                   

 입구가 보이지 않는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 한참을 두리번거린다. 창밖에 서서 아내의 그늘진 얼굴을 보고 있다. 그녀는 손을 흔들어도 쳐다보지 않는다. 고함을 쳐도 들리지 않는다. 

 내겐 결혼이라는 것은 문이 없는 방으로 들어가는 일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처음부터 곡절이 많은 커플이었다. 연애 도중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리고 결혼했다. 이별 뒤의 재회도 우연찮은 사연이 있었다. 연애 때 아내 대신 직구로 구매해 준 일리커피머신이 너무 늦게 배송이 왔다. 이미 헤어졌지만 커피 머신은 보내주어야 했다. 파손우려가 있다고 해서 가져다 준 것이 다시 이어지는 재회의 끈이 되었다. 깨지거나 말거나 그냥 택배로 보내도 되었는데 굳이 직접 주려고 한 나나 받은 아내나 인연은 인연이지 않을까 싶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결혼식이라는 것이 우세스럽고 쑥스럽기만 일이었다. 주례를 봐야 할 것 같은 신랑과 혼주석에 앉아 있어야 할 신부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일리 커피머신의 저주인지 장난질인지 우리는 배낭여행으로 이태리를 신행으로 갔다. 패키지로 가면 좋을 것을 에어엔비로 하나하나 방을 계약하고 현지 지역 투어를 찾아서 한국에서 예약을 했다. 나이를 먹은 우리 커플은 하릴없이 걷고 헤매는 일정에 지쳐갔고 다투다 정말 각자 비행기를 타고 올 뻔도 했었다. 별거 아니 정말 작고 사소한 일인데 우리는 서로 흑마법을 부려 크고 거대한 사건으로 만들어 냈다.

 

 그때도 분명 알았을 텐데 그때는 괜찮았고 지금은 견디기 힘든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은 결혼을 했다고 모든 과정이나 마음이 늦춰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도 없이 둘만의 부부생활은 빨리 늙어가기 시작했다. 신세대 부부의 모습을 기대하며 부모 세대의 구태의연한 모습과 권위를 닮아가고 있었다,

 각자가 성격이 어떠하다든지 장단점을 파악하기 시작하면서 좋아 보였던 것이 굴레나 옥죄임이 되었고 단점들이 나름대로 공감이나 인간미로 다가오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싸움의 발단이 된 것은 내 형제들 문제였다. 결혼 전부터 나이가 많은 신부라 못마땅한 티를 낸 누이와 파산을 한 동생네를 도와주는 것에 대한 아내의 불만과 거부였다.

 나로서는 처가에 문제가 있을 시에 어느 정도 배려를 하고 금전적 도움을 주었기에 아내의 그런 태도가 실망스러웠다. 사실 진정한 문제는 다른 데 있었지만 한번 터져버린 막말과 속내가 보이기 시작하자 우린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혼자서 오랜 시간을 살아왔기에 나름 각자의 판단과 결정을 하고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안심이 되었는데 서로에게 자신을 따르고 맞추라고 주장만 하니 불만스럽고 화가 속으로만 쌓여갔다.     

 싸움과 다툼이 생기면서 상대에 대한 원망이 커지고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되었다미움도 사랑일까원망도 사랑일까소유욕은답을 할 수 없는 질문들에 지쳐만 갔다


 서로에 대한 텐션이 떨어질 때 사랑을 묶어서 다시 1센티씩 조여주는  와이어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 1센티가 좁혀지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부부라는 게 어려운 것 같았다원래 한 개가 아닌데 우리의 혼과 백이 하나로 영혼이 하나 되는 순간사랑이 

그래야만 진정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이라 아내는 믿는 것 같았다세포가 융합이 되어도 절반씩 결합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 비율을 사람이 몰라야만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게 몸이 굴러가는 것 보다 마음이 굴러가는 게 힘들다아내는 나를 영혼째 소유하고 탐을 내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일전에 받았던 부부 상담프로그램 진행자로부터 단체 부부 상담 심리검사를 하겠냐고 연락이 왔다. 나는 받아도 그때뿐 하나 마나 한 뻔한 소리를 또 듣는 게 무의미한 것 같아서 무시했다. 그런데, 아내는 한 번 더 프로그램을 받고 싶었는지 신청했으니 내게도 확인 전화가 오면 동의하라고 말한다.

 또 8주를 해야 하는 과정이 부담스럽기만 했다부부란 게 결혼만 하면 끝이 아니라지만 내가 마치 잘못 뽑은 자동차처럼 매번 센터에 끌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어딜 고쳐야 하고 수리비는 얼마일지.   

  

 첫 주부터 네 명의 부부와 자리를 같이했다늘 그렇듯 알지만 실행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길 한다각각의 부부들은 젊고 어린 커플부터 우리 부부 또래까지 한결같이 서로가 답답하고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부가 주의하여야 할 십계명을 나누어 주고  서로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 아니 발전 필요성 있는 문항을 체크하여 각자가 발표를 하기도 하였다각 열 문항 중 세 개를 체크 하는데 가장 젊어 보이는 부부는 서로가 일치했다이런 일은 쉽지 않은 케이스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힘들어하다 이곳을 찾아왔다

 어떤 아내는 자살을 시도했던 이야기를 하며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이야기를 하여 눈물을 떨구는 이가 세 명이 나왔다두 명의 아내가 울었고 듣고 있던 두 명의 아내들도 글썽거린다한 명의 남자가 울었고 자세한 내막을 알 길이 없어 보고 있는 나는 멀뚱이 있을 뿐이다부부들이 할 말이 많았나 보다 시간이 모자라 우리는 다음 주로 미루어졌다.    

 

 다음 회차에선 아내에게 한 주의 관계가어떠했는지 사회자가 묻고 아내가 이야길 했다.   

  주말에 점심만 먹고 집으로 일찍 나갔다 들어오며 한강의 선유도를 가자고 했는데 난 한낮은 더워서 곤란하다 했다아침 일찍이나 저녁 노을을 보러 늦게 가자 했다집에 들어와 선유도에 지금 가자고 했는데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오늘 가자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틀 연속 운전을 하고 좀 피곤하고 힘들다 했다나는 불안불안했는데 아내는 솔직히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고 생각했다 한다내겐 조금 충격이었다그냥 아무 생각없이 귀찮고 힘들어서 못간다는 표현을 했는데 아내의 반응이 내 예상과 달리 편안한 대화로 끝났다나는 늘 상대의 의중을 캐치하려 들었고 본의나 저의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유추하려 하였던 것 같다싫다고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다그것이 관계를 어렵게 하고 아내가 화를 낼 것이라 스스로 답을 달았다그랬기에 항상 에둘러 표현을 하고 오해를 하고 단절을 불러왔던 것이다

 

 이곳에서 어떤 팁이나 스킬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관계들부부간의 관계에서 나를 다시 돌아보고 느끼는 시간이다물론 방법과 효과적인 대응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배울 수도 있다단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상대가 아닌 내가 바뀌어 질 수 있는 여지를 찾아야 한다공감을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찾는 시간이다.

 개는 훌륭하다는 애견교육 프로그램을 언급한다결국 개보다는 주인이 문제였다상대가 문제이고 고통을 준다는 것은 아마도 나의 문제일 확률이 클 것이다.

 심리 상담을 하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불만이나 상대에대한 판단등을 너무 솔직하게 이야길 하면 문제되지는 않을지 걱정이었다. 솔직히 아내의 못마땅한 처신이나 비난을 마구 쏟아내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그러다가 또 수그러들면 모든게 조심스러워졌다. 어떠한 문제이든지 진실만이 정답일까? 치트 키를 써서 하얀 거짓말로 내 옆에 묶어 두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그냥 덤덤하게 냉정히 현실을 직시하고 각자가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두어야 할까?

 두려움이 나를 옥죄는 것인지무엇이 지혜로운지놓치지 않고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며 모양새 좋게 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아마도 그냥 진실만이 답일 것이겠지 스스로 속이지 않는 마음일지 더 모르겠다일단 프로그램은 시작되었고 매주 매주 나아 가 볼 수 밖에,  

        

 6번의 부부 심리프로그램을 참가했다. 무엇인가 크게 달라질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의 무언가 기적 같은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4쌍의 부부가 나와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사적인 내용들을 꺼리게 되어 회피할 듯도 한데 피하거나 숨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누군가가 자신을 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고 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감정적 교감을 자제하는 사람이다. 문제의 해결을 중시하고 그 안에서 상대에게 그다지 자상함도 따듯함도 공감을 전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모습의 내가 되기까지는 아마도 그렇게 살아 왔던 나의 인생들, 체험들이 그리로 몰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6주차의 지리한 시간 속에 답을 얻지 못하여 힘든 표정이었다. 그다지 이 상담프로그램을 신뢰하지 않았다. 매회 갈 수록 실망을 하는 것 같다.

 타인들의 고통과 외로움 어려움들은 수많은 교집합을 그리며 우리 부부의 모습과 중첩되어 이야기된다. 그것으로도 위안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남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과 그들보다 나의 아픔의 크기가 비교되어 작아져 가기도 한다.

 우울증과 자살 시도를 했던 아내도 있었고 남부럽지 않은 선남선녀인데 서로의 부모들에게 좌절하고 상처받고 단절한 남편도 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의 다툼은 너무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사소하게 느낀다 하더라도 아내의 감정은 그들 이상 더 힘들지도 모른다. 감정이라는 것은 정량적이지도 않고 주관적이고 불합리한 물건이다.    

      

 7주 차에 아내는 참석을 못하였다 아니 안 하였다.

 힘든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의 어려움들이 상기되어 서럽고 힘들어서 견디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나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내가 없이 혼자 참석을 하였던 7주 차에서도 부부들의 비슷한 문제들이 언급이 되었고 한 쌍의 부부가 일로 불참하여 더 조촐한 인원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이라기보다는 정확히 서로의 감정과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인다. 좀 더 객관화되고 어려움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위안이 된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다 보면 그 자체로 해소가 되는 것이 큰 것 같았다. 코로나가 끝났지만 참석한 이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개인적인 친분이 생길 여지를 차단하는 목적이 크다. 개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부부관계 가정사를 오픈하였기에 이 회담이 끝나면 다시 원상태로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기 위해 익명을 지키려 한다. 돌안온 일상에서 부담을 지우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7주 차의 회담에서 나는 아내가 없어서일까 편하게 내 속내를 보였다. 사실 나는 심리상담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지만 옆지기를 위해 참석하였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이야기 한 이유는 나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던지 힘들던지 어떤 감정이든지 나는 잘 감내하고 참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나의 심저는 지하의 맨틀만큼 깊었고 넓어서 다 받아들이고 꾹꾹 쌓아두면 되리라 생각했다.

 상담 선생님은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보며 이야기한다.

 "봄 남(부부별칭)이 저는 제일 걱정이에요 봄녀님은 잘 컨트롤하고 있는데 처음 오실 때 봄님이 마음을 여시는 데 오래 걸리실 것 같았어요."

 조금 충격이었다. 나는 대체로 말이 많고 직설적이고 감정표현을 쉽게 하기도 하고 절제하여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고 문제의 핵심을 바로 이해하고 맞춰간다고 믿었는데 내가 제일 걱정스런 캐릭이었다고 하니 황당스러웠다. 강사 선생에게 반론하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꾸물거렸지만 참았다.

 주변의 부부들이 서로에 대한 사담을 하는 시간에 나를 평가하길 무척 완고하고 가부장적이고 매우 권위적인 사람으로 보였다고 한다. 어투가 부드럽지 않고 상대를 핀치로 몰아가는 화법이라고 한다.

 나도 다른 부부들을 보면서 좀 답답하고 안타까워 보였는데 나도 결국 마찬가지였나 보다. 어쩜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나의 안도와 위안은 나만의 생각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바보 같은 프로그램에 내가 속고 있지는 않나 싶어지고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한 적의가 불타오르다가 한편으로는 이런 착각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고 하니 갑자기 인생 전체가 무너져 버리는 것 같았다. 

 7주 차를 끝내고 마지막 주에는 유언장을 각자 쓰는 것으로 끝내기로 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8주 차에는 아내가 안 나올지 몰라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마지막 주는 참석할 거지?”

 그리고 덧붙여서 상담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당신이 아니고 내가 제일 걱정이라고 하더구먼. 그것도 모르고 혼자 잘난 줄 알고 주저리주저리 말만 많이 한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네."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듣고 뻥 터지고 좋아했다. 그렇게 해맑고 싱그런 웃음소리를 오래간만에 들었다. 자신이 문제라서 우리가 힘든가? 고민하다 아내는 스스로 빠진 자기부정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래 바보가 되어도 좋고 머저리라도 좋다. 나는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지루하고 성가신 과정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별달리 도움이 될지 내가 크게 바뀌게 될지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 그건 더 선명하고 정확히 보인다. 완벽한 관계라는 것은 없다. 인생의 정답도 없고 해답도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서로에게 매일매일 다이얼을 돌려 맞추어 가며 살아야 한다.

서로의 마음을 찾아 교신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다른 방송을 틀어 놓고 딴소리를 하고 사는 것이다.

 부부라는 것은 서로 악기처럼 다뤄야 한다는 말이 어쩌면 그런 뜻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우리는 튜닝을 하고 조율하며 같이 연주를 하여야 적어도 불협화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짧은 한 소절이라도 음악 같은 인생을 울릴 것 같다.    

  

 비로소 아내가 있는 결혼이라는 방의 문의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문이 사라진다. 원래 방은 문도 벽도 없는 광장이었던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를 주저하고 의심할 바에야 뚜벅뚜벅 그녀에게로 다가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었다.


 나는 카프카의 소설“법 앞에서”에 나오는 주저하다 죽을 때까지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한 남자와 같았다.     

 율마를 키우는 일르방 효모를 키우는 일결혼인생이란 그런 일과 같은 속성이다

 관계의 영속성이 노력이 없이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구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답을 찾았다나는 더 이상 나를 방치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나를 키우기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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