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결혼한 부부의 첫 싸움 기록 그러고도 또 싸웠고 또 또 싸웠지만
부부싸움 1
명절 후유증과 부부싸움등 설 지나서 늘 화자 되기에 명절과 상관없이 늘 싸우고 또 화해하는 우리 집 이야기를 해봅니다
십 년을 넘게 싸우다 보니 우리 부부는 상대방에게 돌려가며 치명상을 살짝 피해서 타격하는 부부싸움의 고급스킬도 자유자재 사용하는 고수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시난고난 어려움을 다 이기고 백년해로하였더라
이런 이야기는 본편도 안 한 드라마를 끝내는 마무리이다
사랑은 결실이 아니고 종착역도 아니라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이 수긍한다
이 명제의 증명은 지식이나 배움의 산물이 아니고 현장에서 구르고 깨지며 배우는 경험이자 통찰과 강려크한 몸빵 마음빵의 산물이다
결혼과 동시에 시작되는 갈등은 서로에 대한 것들 보다 주변인들에게서 오는 것으로 한 두 번 이상 부부싸움과 트러블로 힘들게 된다.
상견례부터 시작되는 가족들과의 만남에서부터 여성들은 생채기 생기기 시작할 수도 있고 살면서 예상치 못했던 일들 특히 시댁 가족들과 만남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그 내적인 한과 틀어진 감정은 대부분 자존심이다. 또 자존감을 건드리는 것들, 비교된다는 점, 주연배우 콤플렉스라던지 등등 하나하나 갑자기 열거하기 힘들지만 쉽게 존중이 문제다. 인정과 존중, 사랑...
남자들은 무시당하고 또는 비하의 대상자가 되더라도 속이야 열불이 나겠지만 대부분 삭히다 보면 하룻밤 잠을 자고 나서 맛난 식사 후에 이래저래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어버리거나 풀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해도 허허하고 속으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자존감이 높아서 일가 아님 자존감이 높도록 교육을 받고 커왔는 영향일 수도 있다. 또 하나 간과하지 않고 언급하자면 남자들은 보통 남의 말을 잘 귀담아듣거나 동조하지 않는 것도 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인지 사회적 학습에 이유인지 남자들은 대부분 그렇다
거울의 비교를 많이 하고 한다.
똑 같이 거울 앞에서 자신을 보는 남성은 이만하면 준수하군 내지는 뭐 배가 좀 나왔군 머리가 없군 하지만 걱정하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근자감으로 아무 자리에서나 나서고 이성이 좋아할지 안 안 할지 눈치도 안 보고 패션테러리스트도 되고 무례한이 되곤 한다.
반면에 일반적으로 평균이상의 외모와 용모를 가진 여성인데도 여성들은 대부분 작은 결함이나 부족함을 발견하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본인이 봐서 준수한 것보다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의류와 장신구와 기타 등등 내가 남보다 빠지는 것은 아닐까 쓸데는 있지만 아주 큰 걱정이 아닌 걱정에 휩싸인다.
남자는 단순하다는 말은 복잡한 관계나 상황을 대부분 못 견뎌하기 때문이다
이분법적인 회로를 가동시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적 아님 동지가 편안하다
동물들의 세계와 다른 게 없이 상하, 강약의 결과에 쉽게 수긍하고 사회적인 룰에 안착한다
사회는 이중적인 회색지대의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배제시킨다 소위 말하는 줄을 서는 행위는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도 적용되고.
물론 젊은 세대는 기존에 규범이나 사회통념과 질서를 못마땅해하고 반항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하지만 세상의 이치라는 게 독불장군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인식하고 룰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 내지는 안정적인 관계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는 이 서열의식 내지 집단의 공동체에 더 민감한 것 같다
민감하다기보다 특정관계와 좁은 사회,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매우 집중하고 이해관계에서 편협 내지는 좋게 표현해서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 같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에서는 여자의 영향력과 핸들링에 따라 집안이 좌우한다
남자들은 보편적 룰에 따라 인식을 확장하여 간다면 여자들은 집중된 관계에 특수성과 우선시하는 집중을 보인다.
이를테면 법적이나 관습법에 적용을 하는 데 있어서 남성은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타인의 질타나 도덕적 손가락질을 받고 구성원들에게 배척받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 하나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관에서 벗어난 일탈에 대해서 논리적인 당위성을 찾지 못하게 되면 심적으로 혼란한 상태가 된다
반면 전체 여성을 매도할 생각은 없지만 결정과 갈등의 대상에 있어서 논리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는다. 나의 감정을 건드리거나 자존감에 생채기를 준 이들 그 외 질투심이나 등등 이러한 감정선에 닿아 있는 사람에게는 내가 힘이 없을 때는 모르지만 자신이 결정권자일 경우에는 규범이나 상식선 일반적인 관례 이런 것들 지키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남자들도 그런 사람이 없지 않지만 대부분 내가 살면서 봐온 남성과 여성들의 모습이 그랬다. 객관화하거나 누굴 설득하려고 쓴 것은 아니라 개인적인 소견이니 틀릴 경우도 많으니 편견이라고 무시하셔도 좋다.
어쨌든 긴 사설을 끝내고 우리 부부도 위에 언급한 남성과 여성이 가지는 차이로 인한 갈등과 서로에 대하여 몰이해로 시끄러운 일들을 많이 겪었다.
처음 시작은 얼렁뚱땅 형제들과 상견례이다.
제 장황한 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 집안의 특성은 솔직 담백함이고 뇌를 거치는 것보다 말이 먼저 나오고 말이 좀 많다는 것... 정제되지 않은 자연미가 돋보이는 유기농 언변을 구사하는 편이다. 혹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고 독단적이고 독설가이고 감정을 꾸미지 못하는 페이스의 소유자들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대로 사회화되었지만 누이가 이런 면에 강점이 있는...
집안 형제들은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서 굳이 이야기 하는 것을 거북하게 생각하고 소통이 많은 편은 아니다.
부모님이 안계시기 때문에 편하게 자연스럽게 인사하길 바라는 내 순수한 생각에 갑자기 누이와 대면을 하게 되었다. 누굴 사귀는 걸 알리지도 이런저런 이야기 없이 만든 자리이니 지금 와이프는 많이 불편해하다 마지못해 만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 실패고 신중치 못한 내 생각들, 결혼이나 여자를 대충 생각했던 불찰로 갈등의 단초를 만들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살던 집을 신축해서 다세대로 만드는 중이었고 내가 한 층에 방을 꾸며 살기로 했던 중이었다 얼추 준공이 다가오고 인생이 순조롭게 풀리는구나 생각하고 사귀던 이를 이제 대충 형제들에게 뵈어주고 곧 결혼하면 되겠다 싶었다
십여 년을 몸이 안 좋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는 것도 그런 이유로 결혼도 쉽지 않았다고 걱정을 많이 하던 형제들이기에 당연 쉽게 쉽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누이나 동생은 내색은 안 하지만 급작스런 진행과 나의 계획을 당황스러워하는 듯했다
건물 신축일로 지방에서 서울에 온 김에 저녁에 간단히 보자 하고 첫 만남에서 편하게 보면 된다 했는데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누이는 해서 좋을 리 없는 말들을 했고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문제인지도 몰랐다
이를테면 와이프가 뒤에 알려준 이야기들.
첫째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사십 넘어 초면에 보면서 말을 놨다
둘째 삼촌이 조카들을 잘 챙겨주고 해서 조카들이 삼촌을 잘 따른다 여기까지 말해도 조금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그래서 삼촌이 결혼하는 걸 우리 집에서 다 싫어한다.
이 얘기는 집사람 말을 빌리자면 너랑 결혼하는 걸 반대야 하는 건지 아님 그냥 이왕 늦은 거 조카나 챙기고 내가 결혼 안 했음 하는 건지 둘 중에 하나라고 했다
뭐가 되었든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던가 나는 그냥 조카들에게도 잘하는 좋은 면을 어필하다 실수한 거다 시부모도 아니고 어차피 내랑 살지 시누이 모시고 사냐 크게 개의치 마라 이렇게 강변했다
그런데 내게 있어서 가족 형제들에 대한 애착이 좀 남달랐는지 부드럽게 대꾸를 하지 못했다
집안 냬력이랄까 감정컨트롤이 안되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평탄하지 않은 부모님에게서 자란 것이 전장을 같이 싸운 전우애 비슷한 형제애가 형성된 듯도 하고 결론적으로는 내가 성숙지 못 하고 배려심이 부족하다는 게 원인이었다
어쨌든 잠실 집으로 데려다주면서 차가 흔들리게 크게 싸웠고
결국 끝났다
내 마음은 아마 당시 비장했으리라
형제와 가족을 버리면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
결코 여자들에게 휘둘리는 못난 남자가 될 수없어...
부부싸움 2 (K의 기억)
웬 국제택배인가
내가 시킨 건이 맞는데 도통 생각이 나지 않다가 기억이 났다
H의 물건이었다 주문은 k가 본인이 한 게 맞으나 h의 부탁으로 샀던 것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문 앞의 박스를 들고 와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벽면 한쪽에는 테이핑을 뜯은 박스부터 해체도 하지 않고 이단 삼단으로 얹어놓은 박스들이 어수선하다
K는 한동안 직구로 이런저런 물건들을 많이 구매했다
시작은 불과 일 년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언제 쓸지도 모를 물건들이 비좁은 방에 가득하다
본인이 사놓은 물건들 주로 디너세트와 컵들이다 일부 포세린 장식품들과 잡다한 것들...
레녹스와 포트메리온, 빌보 브랜드가 한창 유행이었다
젊거나 나이가 있든 중요치 않았다 여자들 특히 젊은 주부들은 한국도자기나 행남 자기에 질릴 만도 했다 새로운 국산 브랜드나 제품이 나오기는 요원했고 공방의 작품을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그런 시절에 때 맞추어 백화점에 비싸게 팔리던 외국 브랜드들이 직구로 살 수 있다는 게 알려지고 알음알음 직구와 구매대행이 붐을 일으켰다
K는 새로운 박스를 뜯어 물건을 확인하고 한쪽에 있는 레녹스 버터플라이 메도우 세트 박스를 보았다
H가 원했던 것 들이다. 새로운 박스 안에는 일리커피머신이 있었다
조금은 답답하고 쉽게 전화를 걸기 힘들어 테라스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직 지워지지 않은 H의 전화번호가 보인다. 저장이 되어있지 않다고 하여도 쉽게 잊히지 않을 번호지만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를 건다.
일부러 받지 않는지 바쁜 건지 한 참을 지나서야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나야 잘 지내?"
"어, 무슨 일이야?"
" 택배가 왔어 레녹스랑 일리 머신... 내가 보내주려고 낼 모레즘"
" 어, 도착했구나 나도 잊고 있었네... 그냥 택배로 보내는 게 좋겠어."
" 아니 나도 그럴까 하다가 몇 달을 용케 깨지지 않고 한국에 왔는데 택배로 혹시 파손될까 걱정도 되고. 너무 부담 가지 지마 문 앞에 내려놓고 갈게"
" 그래 알았어 오기 전에 연락 줘"
전화를 끊고 후련한 마음이 반 살짝은 기대감도 올라왔다. 오래만의 전화 속 목소리는 여전히 맑았고 나긋나긋했다.반면그런 모습 이면의화난 그녀의 높고 앙칼진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H와 이별은 겨울이 오기 전 늦은 가을이었다.
늦은 나이의 연애라는 것이 그렇듯 사람을 만나는 일도 수월치 않고 마음을 주기도 어려운 반면에 사람에게 쉽게 포기하고 실망한다.
살아온 날들 동안 많은 상처를 입고 아물어 가면서 마음에 옹이는 더욱 단단해져 갔고 또 상처받는다는 것이 두려워 작은 일에도 민감이 반응을 한다. 때로는 내가 다치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고 상처를 준 자책감에 스스로 더 상처가 되는 악순환이었다.
잠실 쪽 하늘을 보았다. 지금 차를 타고 강변을 달려서 늦은 시간 러시아워를 피해서 가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연애 때는 매번 가는 길이 밀리고 고단해도 힘든 줄 몰랐다
해어지고 나니 마포와 잠실의 거리는 그녀와 나 사이의 마음만큼 멀고 먼 거리도 다가왔다. 남쪽 작은 마을 이름 모를 해변가를 찾아가는 것만큼 마음이 버겁기만 했다.
내가 다시 또 H와 같은 미모의 여인을 만나기는 이번 생에 틀린 일일지도 모른다 예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도 사람이라 감정이 있겠지만 직설적이고 강한 성격은 생각보다 내게 큰 반향을 주었다나도뭐 하나 변변한 게 없는 부족한 인간일 거다. 게다가 연애 중에 욱하는 성격을 자제하려 노력했지만 결국은 터지고 말았다. 자상한 척 애쓰는 척 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에 삐죽거리고 비아냥 거리는 내 모습이 원래의 내 모습이었고 스스로 못났다는 느낌에 끝없이 자존감이 추락했다.
H와 헤어진 후 쓸데없는 모임과 쓸데없이 모이는 사람들을 쓸데없이 만나고 다녔고 종종 먹는 술은 늘 먹고 마시고 취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끝난 옛 인연들에게 전화를 하고 혼자 세상 고독과 외로움, 비통을 짊어진 듯 누가 시키지도 않은 비극의 모노드라마주인공으로 살았다.
집안을 가득 채운 박스들은 아마 드라마를 찍는 도중 하나둘씩 사 모은 것 같다. 처음에 h의 부탁으로 레녹스 버터플라이 세트를 직구를 시작했는데 그녀와 헤어진 뒤로도 취중에 때론 맨 정신에 메이시스와 아마존 등등의 쇼핑몰사이트 장바구니에 마구 집어넣고 결재를 하였다.
그녀가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마음이었는지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백화점을 가는 유부녀의 마음으로 하였는지 그 둘 다였는지...
어쨌든 지금 방에 가극 쌓인 저 박스들은 처치하기 곤란한 군식구가 되었다.
누이가 한식을 겸해서 올라 온후 그릇들을 나누어 주었다.
자신 때문에 결혼이 깨진 것 같아 어떻게 하나며 울먹이듯 말했지만 하나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혼수는 여자가 해오는 것인데 설마 이 많은 걸 H가 사달라고 해서 산거냐?부터 총각 혼자 사는 집에 이런 것들이 오해받기 쉬운데 다 치워버리라는 등등 누이가 했던 말들이 다 짜증 나고 성질이 났다.
물론 내가 생각해도 이 수십 개의 박스들을 예뻐서 없는 시리즈별로 다 모으려고 샀다고 하면 안 믿을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이걸 산 게 맞나 믿지 못하고 있으니...
그래도 집을 신축하면서 주머니에 돈이 있게 되어 공금을 유용한 죄도 있으니 누이와 동생에게 나누어 주었다. 누이가 탐내는 것 중 좀 비싼 것들은 일부 남겨두었다 헤어졌어도 H를 생각해서인지 그냥 내가 좋아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이것도 나중에 시난고난한 결혼생활에 암초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적어도 그 당시 내 상식과 소견으로는....
부부싸움 3 (H의 기억)
한 때 달콤했더라도 꿈은 깨어야 하고 다시 일상을 돌아가기 위해 일어나야 만 한다.
시간이라는 것은 젊음이나 희망이라는 것을 앗아가 버리기도 하지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기도 한다.
k에 대한 실망과 상처도 나는 일상에서 매일매일 한 꺼풀씩 벗겨버리고 머지않아 흔적도 남지 않고 그도 망각의 시간으로 숨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냥 더 생각하지 않는 것.
하루하루 일상에 좀 더 침잠하여 내 마음과 몸도 데워지기를 나는 좀 더 뜨겁게 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K에게 전화가 왔다.
마침 집에는 내일 여행을 같이 가기 위해 어머니가 잠실집에 같이 와 계셨다. 엄마에게 보여지는 것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고 그냥 끊어버릴까 망설여져 한참을 전화기를 들지 못했다.
"회사에서 무슨 급한 일이 있나?" 어색한 혼잣말을 엄마가 들으라고 중얼거리며 전화를 받고 오겠다고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K가 왜 전활 한 걸까? 의구심과 일말의 기대도 없지 않았지만 역시나 k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약 5개월 전에 직구로 구입한 일리머신이 왔다는 통보뿐었다
그냥 택배로 받겠다고 했지만 k는 굽히지 않고 파손을 운운하며 굳이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친절한 k 씨...
그는 여기저기 아무 여자에게도 친절한 사람이었다. 형제에게도 친구에게도 막상 가장 중요한 이에게는 뭔가 좀 부족하고 어설픈...
마음이 무겁다.
가라앉았던 감정의 잔해들이 유령처럼 떠올라 순간 내 주위를 둘러싸고 내려다보는 듯했다.
내일 여행 가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순간 몇 달 전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가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헤어질 결심의 발단은 k의 누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다.
k는 집을 형제들과 새로 지었고 그중 4,5층을 일부 사용하여 거주하였다.
K집에 도착하여 보니 K의 누나 혼자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반갑게 인사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어 왔어? 들어와
순간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느낌... 무언가 불안한 미래를 자꾸 암시하여 주는 듯했다. 그래도 얼굴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데면 데면 하고 불편한 만남이 잠시 동안이었지만 자꾸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K의 누나는 이런저런 얘길 하다 조카들에게 K가 잘 챙기고 다정하다 한다.
(아 나는 다행히 다정한 남자를 만난 걸까?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든다)
"우리는 k가 결혼하는 거 다 싫어해."
"조카 애들도 삼촌이 결혼하는 거 다 싫다고 하더라고 호호호."
아 뭐지 뭐지....
이런 말들을 얼굴을 맞대고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에 놀랐다.
좀 전에 내 머리를 때린 망치를 던져 버리고 K의 누나가 자기만 한 해머를 들고 누워있는 내게 마구 달려오는 상상을 했다...
머리가 하얬지만 나는 바보처럼 웃고 있다...
이런 일을 어디에서도 당해보지 못 해 넋이 반쯤 나간 것 같다.
K가 왔다.
살았다. K가 오자 조금 숨이 편해지는 듯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누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여전히 웃으며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나는 여전히 바보처럼 웃으며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밥을 먹고 있다
차도 마셨다
시간이 10시가 넘었다
이제 집에 가야지 누나가 말한다
네~
나에게 가야 할 집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눈물이 나려 한다.
드디어 집에 가는구나 안심이 되었다.
"나가서 택시 잡아주고 와"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이 늦은 시간 결혼할 여자라고 왔는데 택시 태워 보내라고... 정말 택시라도 타고 빨리 가고 싶었다. 모범이 와도 탈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k는 집까지 데려다주고 온다고 한다
바보처럼 밥만 꾸역꾸역 입에 넣던 k가 꼴 보기 싫다가 다시 보이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래 결혼하면 남편만 내편이면 되지 뭐.'
차에 타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오늘 일들을 얘기를 해야 하나?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K가 집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오늘은 녹다운되어서 말할 기운도 없었다.
그냥 빨리 씻고 잠들고 싶다는 생각뿐...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반나절 만에 K의 누나 보다 네댓 살 많은 언니가 앉아있다.
20대 같은 내 외모가 갑자기 40대가 되다니 K의 가족들을 자주 보면 나는 곧 할머니소릴 듣는 것은 아닐까?
하룻밤에 사람은 늙는다더니...
주말에 k를 만나 H는 어렵게 말을 꺼낸다
"저기 저번에 누나 왔을 때 누나가 자기 결혼하는 거 집안사람들이 다 싫어한대...
"웅ᆢ그래?"
이건 뭐지? 이게 끝이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다음 말이 나오길 기다리다 다시 묻는다
"아무렇지 않아 괜찮아?"
그러나 k는 "그럴 수도 있지 뭐"
잉? 그럴 수도 있다고?
어이가 없었다
"자기 조카들까지도 결혼하는 거 싫대!"
"그래서?"
누나를 봤을 때 보다도 더 가슴이 먹먹하다
K의 반응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나랑 누나랑 2살 차이인데 처음부터 반말을 하고 사람 면전에 두고 이런 말을 어떻게 해?"
"우리 엄마도 자기 만났을 때 존대해신 거 기억 안 나?"
나는 그날 참고 참은 게 폭발했다.
K는 변명이라고 마구 지껄였다.
너랑 나랑 살지 누나랑 사냐?
그게 대체 무슨 문제야?
너는 나만 보면 되는 거 아냐?
누이가 조카가 그렇다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데 의절하자 할까
아니면 묶어 놓고 잘못했다 할 때까지 가르칠까 당신에게 무릎 꿀라 해?
처음 발단은 누이였지만 우리 점점 유치해지고 치열해졌다. 사랑이고 뭐고 말로 서로 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파이팅 넘치게 싸웠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만날 때마다 싸웠다
말이 없었고 과묵하고 순둥순둥한 줄 알았는데 K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K, 이 순 사기꾼 같은 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앞날이 훤했다
싸울 수는 있다
의견이 안 맞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걸 푸는 방법이 없다는 거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부부싸움 4
K와 H는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는 굳이 서술하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 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것 들이다.
H는 너무 아프고 후회되는 선택의 순간을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져오고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K는 너무 오랜 전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은 일이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그 매개체가 되었던 일리 커피머신은 아직도 집에 H의 눈에 뜨이지 않는 구석에 숨어서 조용히 살고 있다.
H는 당장 갔다 버리라고 악마의 선물이라고 버리라고 했지만 k는 일리커피머신을 버리는 척 집구석 안 보이는 은신처에 피신시켜 놓았다.
일리 커피가 가고 몇 번의 새로운 머신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지금은 브레빌인지 뭔지 하는 원두 자동머신으로 바뀌었다.
몇 년 후엔 더 비싼 놈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일리커피머신은 피신처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면 끝까지 목숨을 연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과 만남을 시간의 순차적인 서술을 하려던 것이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등장인물이 너무나 많아지고 본의 아니게 그들의 인격이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게 되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몇 명 보지도 않은 본인의 글을 그런 걱정까지 하다니 좀 오버스럽기도 하지만 나의 주도 면밀함에 큰 구멍을 내는 듯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느낀 대로 픽션을 써 나가야 한다면 결국 서술하고 이야기한 다른 이들이 화자가 되어 자신에 대한 변을 내놓아야만 공평할 듯싶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의 기억에 보태 H에게 물어보고 의중을 살피는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
굳이 글로 써서 아픈 상처를 후벼 파게 되어 그제도 우리 부부는 한바탕 했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존재가 나에게는 절대자의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기에 생사를 건 줄타기 같은 글을 계속 쓰다 보니 피로감이 극도로 달해가고 있다.
동강동강 이야기들을 술 한잔 한 후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 밥 먹다 말고 생각나는 대로 글로쓰고 마지막에 총괄해서 묶는 것이 나을 듯하다.
시간이 지나서 싸웠던 기억들이 다 잊힌대도 그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