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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시한 날

오월

by 승환

오월



오월은 마음이 바쁘다.

삼사월, 봄이 왔다고?

언제 왔을까.

꽃은 피기도 전에

지고

나는 진짜 봄을 만난 적이 없다.


유리창엔 먼지가 쌓이고

내 어깨 위엔 지난 계절이 앉아 있다.

햇살은 잎새를 더듬고

나는 덧없는 생각을 더듬는다.


꽃들은 먼저 피거나

먼저 진다.

우리는 늘

조금 늦게 피고 지기도 하고


세금처럼 기한이 있다.

모든 감정엔,

(환급은 커녕)


사람들은 다정하게 바쁘다.

감사하고, 사랑하고, 기념하고

마음을 묶어두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말들을 쏟아낸다.


어떤 아픈 날엔

꺼지지 않은 깊은 슬픔이

떠돌고 있다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


날 좋은 오후엔

아무 데나 눕고 싶다.

피워놓은 꽃 위로

풀벌레 집들 위로

내게 없던 사랑 위로.


오월은 지나간다.

입맞춤처럼 조용히,

어떤 날은 식탁 위로

흐트러진 웃음을 밟고

어떤 날은 빈지갑으로

쓸쓸히 그냥

흐릿하게


그렇게 멀리까지

따라간 기억이 있다.


말없이 등을 보여준

계절의 여왕,

오월의 끝에서.

치마자락만 곱게

햇살에 일렁인다.


나는 그 뒷모습만 품고

꽤 멀리 왔다.

이제는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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