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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시한 날

by 승환


내 마음의 작은 칠판은

하루를 다 적기에 너무 작았다.


어떤 날은 사랑, 사랑

두 글자만 백 번쯤 쓰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알 수 없는 공식들이 칠판을 가득 메웠다.

정답은 없었다.

혼란스러웠고,

조금 서러웠다.

내가 가여워 견딜 수 없는.


그런 날엔

조금 이른 저녁, 눈을 감았다.

어쩌면 울었던 것 같다.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이

눈물을 대신 삼켰다.


나는 눈을 꼭 감고 가만있었다.

말라붙은 마음,

깨진 모서리를

잠이 조용히 쓰다듬었다.


나는 잠이 어디서 오는지

왜 거부할 수 없는지를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망설임 없이

하루를 덮어주는 것.


빈 하루가

깊은 잠을 낳았다.

무엇을 생각해도,

누구를 사랑해도

미래도 과거도

그 속에선 멈춰 있었다.


모양도 이름도 없이

흘러가는 마음을

붙잡으려

나는 어디론가 손을 뻗는다.


쉐킷, 쉐킷

밤의 셰이커가 나를 흔든다.

진심들은 섞이고,

감정은 부유하고,

자음과 모음이 뒤엉킨다.


사랑은 후회로,

미움은 고마움으로


사전에 반대말을 찾듯

말과 뜻이 서로의 옷을 갈아입었다.


알 수 없는 외래어처럼

이름 붙이지 못한 꿈들도

내 옆에 서있다 가곤 한다.


내가 아니었지만

결국 나였던 밤,

주인공은 늘 나 하나뿐인

하루치의 영화가

막을 내린다.


당신과 나

모두 잠든 사이

세상은 가장 평화롭고,

낮에 흘렸던 눈물은

별처럼 반짝인다.

셀 수 없이,

꿈처럼.


아침이면

어제의 마음이 방 안에 남아 있고,

과거는 여전히

아리고 짧은 이름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내일을

다시

기대어본다.

잠을 위한 하루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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