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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코

(장 보는 남자들의 고단함)

by 승환


걷는 사람의 뒤통수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개미들의 행렬을 따라 조용히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끼어들기는 용납되지 않는다.

왜 이 시간에 때맞추어서 이곳을 오는지 나만큼 절실하고 바쁜 사람이 누가 있다고 몰지각한 쇼핑행렬에 동참한 다른 이들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백화점 식품코너를 유유자작 돌며 쇼핑할 처지가 아니다.

저렴하게 꿀을 빨고 날르기 위해서 참아야 했다.

아내는 끝내 참지 못하고 차문을 열고 걸어가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건물 주차장입구를 진입을 했다

주차 전광판에 상냥한 안내가 뜬다.

만차 만차 만차 빨간색 숫자가 써진 5층과 옥탑주차장을 본다. 내 앞으로 들어간 차량의 숫자를 보고 살짝 조바심이 난다.

주차를 하기 위해 운전자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동공에 힘이 들어가고 매의 눈을 최대한 흉내 내며 두리번 거린다. 나올 건지 말건지 저 치들은 짐을 하루 종일 싣는 것인지 기다려 보려다 뒤차의 빵 하는 경고를 듣고 이내 포기한다.

빙빙 돌아서 꼭대기로 더 위로 위로 차를 움직인다.

신경은 곤두서고 짜증이 밀려온다 터져버릴 것 같은 울분이 쏟아 오른다.

나는 일순 끔찍했던 전생을 떠올린다.

아아슈비츠의 허름한 창고 안에서 숨이 가빠오던 기억이 났다.

거제도의 찬바람을 몸으로 맞으며 고픈 배를 들고 식판을 들었던 순간이 지나가기도 했다.

막 차가 나와 빈자리를 발견하고 발 빠르게 주차를 했다

이런 행운이 오다니 조상덕이 아닌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했다.

주차를 하고 나니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진다.

전화를 하지만 받지 않는다. 아마도 정신없이 아이쇼핑에 팔려있을 아내에게 이제 내려간다는 문자를 보낸다.


엘리베이터는 바로 내려가지 않고 일층에 사람들을 풀어놓는다.

쇼핑카트를 일층에서 보관 중이라 부득이 매장으로 바로 가지 않는다는 상냥한 안내문이 쓰여있다.

카트가 필요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안내문은 써 놓은 말들은 완곡한 경고의 표시다.

"우리는 너네 손님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하니 한 곳으로 줄을 서서 내려가야 돼!"

험난한 여정을 거쳐 기껏 들어왔는데 다시 건물 밖으로 내몬다.

밖에서 다시 줄을 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십여 년 전 처음 코스트코를 갔을 때의 참담함과 불쾌함이 다시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다.

충분히 간격을 띄우고 내려가도 에스컬레이터 입구에서 직원 카트를 한번씩 붙들고 대기를 시킨다.

알 수 없는 굴욕감이 몰려온다.

안전을 위한 배려일까 통제를 하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거만하고 통제를 통해서 쾌감을 느끼지 않을까 의심이 들었다


매장입구에서 들어가는데 제지를 한다.

회원카드를 확인한다고 꺼내라 한다.

일순 당황하고 언제부터 이리된 건지 저번달에 왔었는데요 저 얼굴 기억 안 나세요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는다.

"일행이 먼저 와있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들어가라 한다.

나의 더러운 인상에 골난 표정이 여직원이 흠칫한 모습이다.


들어오고 나니 아내의 전화가 온다.

볼멘소리로 전화를 안 받냐 입구에서 검사를 하는데 당황스러웠다 나는 아내에게 불만스러운 이야길 늘어놓았다

앞으로는 카드 검사를 하고 입장을 하게 된 이유를 알려준다

회원이 아닌 사람이 들어와서 시식코너를 돌며 음식을 먹거나 계산을 안 하고 포장을 뜯고 시식을 하다가 걸렸다고 했다.

일부는 회원권 없이 와서 다른 사람에게 결재를 부탁하여 쇼핑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별 문제가 있을까 싶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해준다고 한다. 물론 인상이 좋고 나이가 지긋한 분들에게 도움을 청했을 듯하다.

어쨌든 무료시식을 한 그 아줌마 한 명 때문에 전 지점에서 다 회원권 검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쇼핑을 왔지만 나는 주도적으로 무엇을 살 권한이 없다.

아내는 어디서 알아 온 건지 세일품목을 따져서 할인을 하는 물건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왔다.

신혼 초에 동생네와 같이 쇼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안색이 안 좋아지며 울부락 붉으락 했었다. 먹는 것에 진심이 우리 형제는 식탐이 많았다. 먹을 양이나 꼭 필요한 것들 보다 마음이 내키거나 가격이 좋아 보이면 카트에 일단 넣는 식이였다

아내에게 경제권이 넘어간 이후에 가끔은 혼자 장을 보러 갈 경우에도 리스트를 건네주었다. 충동구매를 방지하려는 이유였다.

뭐는 몸에 안 좋고 어떤 것은 양이 너무 많고 이건 세일을 하지 않으니 기다려야 하고 대충 이런저런 이유로 아내는 본인이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코스트코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덩치가 좋다 남자든 여자든 노인들 마저도 미국식 식단과 식품을 선호해서 그리된 건지 원래 덩치들이 먹을 걸 좋아해서 모이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덩치들이 카트를 끌고 다니니 더 길이 좁아지고 밀린다. 거디다 사람이 좀 많아야지 쇼핑을 하는 중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난장판이 된다. 시식코너에 뭐 좀 먹을 만한 것이 있으면 카트를 끌다 사람이 모인다 길이 막히고 순간 짜증이 난다.

볼 것이 없으면 나는 빨리 가야 하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며 가다 서다 하는 앞사람을 볼 때마다 화가 쏫는다.

말없이 카트만 미는 나는 슬쩍 아내가 없는 틈을 타 술 한 병을 넣었다 안 그래도 밖에서 보다 싼 가격인데 세일이라니 그런대로 현명한 쇼핑이 아닌가(물론 아내에게 걸리고 용돈으로 내야 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배도 고프고 이제는 집에 갔으면 좋겠다. 정신없이 쇼핑을 끝내고 계산을 하려면 이제 또 줄이다.


계산대 앞의 줄은 줄지가 않는다 사람들마다 카트 가득 짐을 실었으니 일일이 꺼냈다 넣었다 시간을 잡아먹는다. 카드로 하는 사람 현금을 쓰는 사람 혹 가다 캐셔직원의 교대가 있거나 현금뭉치를 정산하려 쏘아 보내면 또 한참 시간이 지체된다.

어쨌든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가려면 또 엘리베이터 앞에 까마득하게 줄이 보인다. 5층이나 탑층은 에스컬레이터로 가려면 너무 멀어서 승강기를 타야 할 것 같다.

아내가 푸드코너에 가서 뭐 좀 먹고 가자고 한다. 자신은 음식을 사러 가니 자리를 잡으라고 한다.

난 여기 푸드코너의 음식을 좋아한다. 단 음식만이다.

스웨덴은 친구가 와도 밥때 되면 집에 가라고 해서인지 어쨌든 이케아에서 파는 핫도그와 여길 비교 하면 대번 느낄 수 있다. 압도적 가성비이다.

여기서 먹고 가는 것은 너무 싫다. 몰리는 사람들과 자리를 앉기 위해 눈치를 보며 기다리는 일 이건 아무리 음식이 싸더라도 유쾌하지 않은 식사다.

남 먹는데 앞에 가서 눈치를 주는 것도 내가 먹는데 눈치를 받는 것도 못할 짓이다.

아내는 음식을 사 오면 아직도 자리를 못 잡았냐고 구박을 하면 정말 짜증이 난다.

포장을 해가자 먹고 가자 이야길 하다 싸우기도 했다.

식사까지 대충 끝내면 두 시간이 훌쩍 넘어서 서너 시간을 마트에 시간을 다 뺏기는 경우도 있다.

다 먹은 후에 주차장으로 가는 줄이 줄었나 싶음 아직 그대로이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또 살짝 기분이 상한다.

들어올 때 검사를 받고 입장을 하고 했건만 영수증을 꺼내 보여주어야 한다

"네가 끄는 카트에 영수증에 없는 물건을 더 가져가려 실은 건 아닌지 우리가 좀 보겠어!"

물론 일일이 대조하고 꼼꼼히 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정서에는 못 마땅스럽다.

기본이 되는 건 손님의 감정이나 존중보다는 회사의 혹시 모를 손해를 절대 감수 못한다는 마인드다.

일단 모르지만 내가 보기 전에 넌 도둑일 수 있다는 생각.


대부분 남자들이 처음 코스트코를 가서 경험하는 짜증과 불쾌감이 비슷하다.

십여 년이 넘어도 썩 유쾌하진 않다.

강도 절도 같은 범죄가 일상화된 미국식 마인드인지 유럽의 쇼핑센터에서 덩치 큰 경호원이 손님을 감시를 하는 것 같이 그네들은 일상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감성은 좀 아니다

게다가 우리의 백화점 쇼핑센터 마트들은 얼마나 친절하고 상냥한지 비교가 된다

온갖 진상고객들에게까지도 비위를 맞춰주는 극강의 서비스 마인드에 익숙해져 버려서 더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처음 코스트코의 직원이 주부들에게는 인기였다고 알고 있다. 최저임금이 낮았을 때도 페이가 높았고 외국계 회사의 장점이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주부직원들의 얼굴에서 만족하는 모습 자부심도 보였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코스트코도 한국패치가 되어서 이제는 장점이 사라졌다고 한다.

노무 관련 산재도 있었고 직원들이 좀 피곤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싫은데 안 가면 그만인데 불평이 많다고 왜 투덜거리냐고 할지 모른다

맞다 안 가면 되는데 그럼 되는데 그래도 계속 가고 있다.


가성비와 공짜를 좋아하는 아재라 그런 것도 있지만 폼생폼사보다 실용성에서 나는 올라오는 짜증과 화를 죽일 수밖에 없다.

반품이 자유로운 것과 품질관리도 물건 구성능력도 높이 산다.


브이아이피 손님 대우받으면서 비싼 돈을 지불할 능력도 안되고 싫다.

그러면 뭐 몸이 수고로워도 가야 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고 불편을 개선하다 보면 좋은 쪽으로 나가게 된다.

나 같은 까탈한 불만분자들이 많아지면 뭐가 좀 그래도 개선이나 발전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심의 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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