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맡은 향기였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냄새였고, 동시에 어딘가 익숙한 듯한 기시감도 함께 떠올랐다. 어쩌면 전생의 기억이 의도치 않게 따라온 것일지도 몰랐다. 그 향기는 지금 그의 코끝을 스치고 있었다.
무심결에 고개를 든 그는 앞을 지나가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찰랑이며 어깨 위에서 흔들렸고, 단정하고 균형 잡힌 옷차림은 그녀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직관적으로 안겨주었다.
여인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는 단 한 번 뒷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요동쳤다. 눈을 뜬 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졌고, 마음이 급해졌다. 살아가다 보면 불현듯 찾아오는 행운이 있고, 운명이 있다고 믿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는 그때를 사랑이라 불렀고, 종교처럼 맹목적으로 그 길을 따르기 시작했다.
여인은 조용한 골목을 지나고, 넓은 광장을 가로지르며 점차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몇 번 넘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넜으며, 쉬지 않고 산을 올랐다. 높고 험한 산의 능선을 따라 끊임없이 걸어갔다.
그 여인을 따라가는 길마다 꽃이 피고 새가 날아올랐다. 상서로운 조짐처럼, 그녀가 지나가는 곳은 모두 아름답고 빛났다. 주위의 사람들은 웃으며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고, 서로가 소중한 듯 눈 위로 꿀처럼 달콤한 기운이 흘렀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 또한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 듯했으며, 확신과 믿음에 찬 표정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정신을 다잡고 여인을 놓치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고 걸음을 재촉했다. 여인은 때때로 가까워졌다가 이내 멀어졌고,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때로는 그녀의 바로 뒤까지 따라붙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저 그 거리만이 유일한 위안이자 기쁨이 되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수년이 지나도 그는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그 사이 그는 지치고 흔들렸으며, 마음은 여러 번 색을 바꾸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점점 길어져 그녀처럼 바람에 흩날렸다.
이제는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요동치고 뜨거웠던 시절은 지나갔고, 세상의 것들은 모두 시들어 보였다. 세상은 온통 어둡고 침침한 겨울처럼 보였으며, 거리도, 짐승도, 사람도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마음을 비우고 묵묵히 걸었다. 마음이 식어가도 관성처럼 붙은 발걸음은 점점 가속이 붙었고, 그렇게 걷던 어느 날, 그는 여인과 나란히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발걸음을 재촉해 그녀를 지나쳤다. 그리고 그녀 앞을 막아서듯 서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긴 머리를 쓸어올리는 여인의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 있었고, 그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요? 왜 저를 따라오고 또 이렇게 놀라시는 겁니까?"
그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당신은... 여인이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여인이었다가 남자가 된 겁니까?"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남자였소."
그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소. 당신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고 싶었소. 내 인생의 유일한 이유는 당신을 만나는 것이었소."
남자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안타깝지만, 부럽기도 하군요."
"부럽다고요?"
"당신은 늘 꿈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잖소. 지금까지의 삶이 즐겁고 행복했을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나는 그 끝의 환희, 결말을 보고 싶었소."
"당신은 형체도 실체도 없는 것을 탐했소. 세상의 모든 것은 사실 각자의 마음속에 있을 뿐이오. 그것은 나무처럼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벌레처럼 변하고 떠다니는 것이오."
그는 그 말이 알 듯 말 듯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하오. 당신의 말은 뜬구름 같지만, 위로가 되었소. 당신은 혹시 세상을 떠도는 기인이오?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남자는 미소를 머금다가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시간이 늦었군요. 나는 또 떠나야 합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산속으로 이어진 오솔길에 나무들이 생선처럼 잎새를 떨었고, 길게 드리운 그늘이 그의 뒷모습을 감쌌다.
남자는 숲 안으로 몇 발짝 걸어가다 멈춰 섰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친구, 나의 이름을 알려주지요. 내 이름은 행복이오. 이제, 당신의 길을 가시오."
해가 지는 서편 하늘엔 붉은 노을이 퍼졌고, 세상은 오묘하고 고요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는 남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숲 속 길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고 보니 멀리서 머리를 휘날리는 사람들이 앞서서 뒷따르며 바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이내 알았다는 듯이 남자가 사라진 방향과는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