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시인 시읽기 모임을 다녀와서
잠실의 책마당에서 박준시인의 신작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 시읽기 북토크를 끝냈다.
저녁시간에 서울의 끝에서 끝으로 질러가는 부담이 없지 않았지만 문단계의 아이돌이라는 박준 시인의 시를 접하는 시간이라 아깝지 않았다.
박준시인 본인이 자신의 시를 읽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최지인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것이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다.
보통 자신의 시집을 가지고 북토크나 행사를 하기 마련인데 최지인시인은 본인의 시로 하는 것보다 최근 나온 박준시인의 책으로 꾸렸다.
일종의 겸양이지만 그런 마음씨나 배려가 돗보인다.
시인이 동 시대의 다른 시인의 시를 이야기 하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박준시인을 선배 시인으로 존경하고 인정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년)는 64쇄를 찍었고 2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는 박준시집을 나는 전에는 읽지 않았다 시란것을 다시 읽기 시작한지가 이제 이 삼년 되니 그 전의 베스트셀러의 시집이 관심이 없었고 티브이를 보지 않아 유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나중에 알았다.
시인은 젊어서도 탁월했지만 세월의 더깨가 쌓이고 난 후 지금의 시에는 뭔가 더 말들이 진솔하고 눅진해진 듯 했다.
시를 습작을 하다보면 시 자체의 서사가 나열을 넘어 시적 세계에서 구조가 견고해야하는 것이 늘 어려웠는데 시를 잘쓰는 시인들은 역시 탁월하다
말을 하나 건네도 그 단어 하나가 톱니바퀴 처럼 서로 맞다아 돌아간다.
단순히 그렇게 말을 가지고 단어를 가지고 능숙히 놀줄 알아도 시는 감동을 주지만 거기에는 보편적인 공감의 결을 찾아내고 끄집어 내어 감동을 주는 힘은 아무래도 경험과 연륜인 것 같았다.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시인은 전국의 곳곳을 여행하고 체험하며 지역의 특산물이나 음식을 맛보는 것을 즐겨한다.
시인이기전에 편집자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글에서 멀어지지는 않는 이유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한 권의 시집이 나오기까지 오년이상의 세월을 깍아내야 한다.
시인이 성공을 해도 시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시인이 된다고 돈을 많이 벌거나 생활이 달라질 수 없다는 점이라고 하니 아이러니 하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계속 쓸 수 밖에 없다고 하니.
몇 몇 시인들의 시를 보며 작중 화자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시인은 자신의 눈으로 관조하는 세상을 그리고 어떤이는 알 듯 말듯한 당신이나 타인을 등장시켜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하게끔 한다.
화자의 상대가 되는 이는 실체가 있는 또는 없는 대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은 이중성격의 분리된 자아를 가지고 쓸 수도 있는데 그런 기질이 있는 이들이 더 글을 잘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이들이란 아마도 수줍고 내향적이지만 안에서는 드러내고픈 또 다른 자아가 자라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면에서 시인은 무당과도 같은 결을 가진다는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번 시집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을 이야기한다. 시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을 겪고 나서 생기던 감정들이 시에 녹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의 나이때는 부모님을 보내드려야할 나이대이기도 하다. 십 수여년 전에 나의 아버지와 내 모습들도 오버랩된다.
블랙리스트
- 박준
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금기형,
박상대, 박상미, 신천식, 샘말 아저씨, 이상봉, 이희창, 양상
근, 전경선, 제니네 엄마, 제니네 아빠, 채정근, 몇은 일가였
고 다른 몇은 내가 얼굴만 알거나 성함만 들어본 분이었다
"네가 언제 아버지 뜻을 다 따르고 살았니?"라는 상미 고모
말에 용기를 얻어 지난봄 있었던 아버지의 장례때 나는 모
두에게 부고를 알렸다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
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
었다
- 마중도 배우도 없이, 창비, 2025
실상 아버지는 밉다고 오지말라는 사람들의 명단을 불러주었지만 사람이 그런것 같다. 미움이란 감정은 너무 가깝고 친밀한 감정이었기에 생판 모르는 남을 미워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명단의 미운이들은 전에는 가깝고 반가운이였을 테고 지금 밉다가도 또 얼마가 지나서 다시 마음이 풀어지고 반가운이들이 될 사람들일 게다.
죽음이란 섯다의 망통같은 없는 족보였다. 모든게 다 리셋되고 게임오버되는 것이었다.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화해하고 용서해야 했다. 미움이나 원망이 망자에게 실려 멀리 날아가는 것을 두려워 했으리라..
일요일 일요일 밤에
-박준
일신병원 장례식장에 정차합니까 하고 물으며 버스애 탄 사람이 자라에 앉았다가 운전석으로 가서는 서울로 나가는 막차는 언제 있습니까 묻는다 자리로 돌아와 한참 창밖을 보다가 다시 운전석으로 가서 내일 첫차는 언제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2
누군가 친구의 구두을 신고 갔습니다 이번에는 면접 잘 보라고 스스로 허술하지 않아야 남들도 나를 알아주는 법이라고 친구의 어머니가 얼마 전 사주셨다는 구두입니다 볼이 조금 헐거워 오래 신던 운동화 밑창까지 깔아두었는데 새것을 탐하는 이가 신고 간 게 분명하다며 친구가 이야기합니다 사람 함부로 의심하면 안되지만 지난밤 내내 혼자 앉았다가 새벽에 비틀하며 떠난 그 사내가 수상하다고도 친구는 말합니다 이 말을 하는 동안 구두를 잃은 친구는 내내 울상이었고 이 말을 듣는 동안 상주(喪主)인 친구는 사흘 만에 처음으로 웃었습니다
아버지의 상을 끝내고 난후 친구나 올만한 분이라고 생각했던 지인 그리고 친척 중에서 조문을 오지 않았던 것을 확인 후에 마음이 한동안 씁쓸했었다.
싸우고 척을 지고 미워하던 친척이나 지인들도 장례에는 가는게 인지상정이었다.
어차피 죽음 앞에는 미움이니 그런 감정들은 하등 의미없는 것들이었다.
지금도 후회되는 것 한가지 아버지 친구분 중 삼일을 집에 가지 않으시고 장례식 내내 자리를 지켜주셨던 아버지 친구분의 연락처를 받아 놓지 못했다.
그 분은 결혼을 하지 않으시고 독신으로 평생을 사셨던 분이었고 지금 90이 가까운 나이에 아직 살아계실지 어쩔지 일년에 한 두번이라도 찾아뵙고 식사라도 대접을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시를 읽고 여럿이 나누고 난 후 집으로 들어와서 한참을 아버지를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신철규 시인의 시중에 슬프게 울던 유족들이 장지에서 내려오며 갈비탕을 먹는 심정을 쓴 싯귀가 떠오르기도 했다. 산사람은 살아지는 인생이란 감정의 가벼움과 망각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