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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P의 감정고찰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쓰기 숙제)

by 승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하여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떠올릴 수 없었다. 처음부터 어린 시절 그 시작부터 그랬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는 듯 해서 순간 당황했다. 당연이 내가 인격자고 고매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마음이 평안하단 말인가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는다.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는 듯하나 아물어졌다, 분노의 순간도 그때는 그랬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글을 써 내려갈 때 딱히 화가 나지 않는다. 죽고 싶지도 않고 내가 스스로 너무 싫어서 우울의 굴을 파고 들어가있지도 않다 그냥 머리가 나쁘고 기억을 못해서 멍하니 앉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기억이 없진 않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사건들은 감정이 아니라 생각의 구조로 남아 있다. 어떤 말에 상처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 무시당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조차도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말했을까”, “그 상황의 맥락은 어땠지” 같은 생각을 먼저 했다.


감정은 그 뒤에 따라왔지만, 이미 늦었다. 감정은 분석의 칼날에 눌려, 모양을 잃었다. 나는 감정을 느끼기 전에 해석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또 스스로 해답을 내놓고 스스로 치유했다.

내가 타인을 이해하며 대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그것이 나와는 전혀 다른 메카니즘으로 생각을 하든 말든 난 나였으니까 나대로의 해석을 붙였다.


INTP 성향인 나는 원래 타인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 타입이 아니라고 한다. 100% 믿을 수 없이 사람은 더 더 아주 많이 콤플렉스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을 했다.
무심한 건 아니다. 그저 내 관심의 초점이 사람의 감정보다는 그 감정을 만들어낸 구조에 닿아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거나,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감정의 일어나는 심처에 원인이나 사유를 생각했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그건 그 사람의 환경, 맥락, 기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나 역시 상처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일엔 흔들리지 않는다. 남들은 이것을 무덤덤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게 평온함의 기술이다.

차라리 나는 나의 미래나 닥쳐올 것에 대하여 과민하게 걱정을 하고 부정적인 결과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일종의 강박일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 동원훈련을 받으러 갔던 예비군 시절에도 야밤에 비상작계 훈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나는 미리 군장을 싸고 복장을 갖춘채 잠자리에 들었다. 같이 입소한 동기들은 동원예비군 훈련의 사회적 룰을 깨고 있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하기도 하고 괴짜 같은 놈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비 소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산을 챙겼다 늘 비는 오지 않았다. 새옷을 여러 벌을 사서 바로 입지 않고 비닐째 보관하다 유행이나 철이 지난 몇 년 후에야 꺼내입는다. 육이오 전쟁을 겪은 부잣집 할머니가 다락에다 비누며 생필품을 재어 놓는다는 심리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어떠한 일을 하는 데도 일어날 수 있는 변수나 최악을 상정해서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너와 이야길 하면 되는 일도 없고 매사 부정적이라 사는게 다 우울해진다. 희망이 없는 잿빛 미래가 다가올 것 같다고 불평과 비난을 한다. 나는 이런 식의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한동안 떠 오르던 시절도 있었다.

사람에 대한 부정이나 편견보다는 무관심과 회피를 선택했다. 그것은 타인에게 애정을 표현하거나 줄 수도 없었기에 거꾸로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다.

칭찬이 인색하고 눈물을 감추기 급급했고 기쁨도 잠깐의 미소로만 끝냈다. 사는 동안 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것이 현명함이라 믿었다.


그런 방식은 늘 오해를 불러오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하기도 하였고 관심이 없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 이런 나의 성격은 드러날 수밖에 없어서 아내와의 관계를 어렵게 했다. 결혼생활 내내 크고 작은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감정을 배제한 문제의 해결이 우선이었다. 보이지도 않고 실체를 만질 수 없는 감정이란 것은 배려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형제들에게 무엇을 주거나 베풀었을 때 아내는 섭섭함을 토로한다. 그러면 나는 너에게는 그럼 무엇을 대신 해주겠다. 또는 그래도 마음이 너는 못되어서 그 것을 되물리고 싶은 것이면 형제에게 미안하고 우스운 사람이 되어도 그것을 다시 뺏어 오면 되겠냐고 물었다.

내 생각에는 지나간 일, 어차피 벌어진 일에 대하여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 차선으로 배상 내지 보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아내는 자신의 감정을 어루만지거나 위로 할 생각이 요만큼도 없다고 나를 비난한다. 나에게 사과 내지는 앞으로 하지 않겠다는 말을 요구하면 나는 그대로 사과 내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만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나의 말을 보고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한다. 그럼 나는 말의 어두에 부사와 형용사를 부치고 짐짓 진지하게 다시 사과의 말을 한다. 아내는 자신을 놀리거나 조롱한다고 화를 낸다. 나의 잘못이란 것이 어설픈 연기였던것 일지 상대의 화를 본인이 푸는 것이 아닌 내가 무엇을 주고 감언이설을 하여야 했던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감정이란 것을 믿지 않았다. 문제의 해결을 수치적이나 논리적으로 해결하려 한 난 아마도 그것이 불필요하거나 불합리한 정서의 표출로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아내는 날 냉혈한이나 감정이 없는 무채색의 건조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사과나 타협이 없는 옹졸해 보이기도 했고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의 성격의 형성을 고민도 해 보았지만 답을 얻기 어려운 일이었다. 타고 난 것인지 아니면 어른이 되어가며 상처가 쌓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감정이란 것이 부질없어 보였고 끊임없이 충돌하는 부모의 싸움을 보고 자란 이유인 것 같기도 했다. 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상처 난 마음을 견디어 낼 수 있는 방법은 회피의 기술을 익히고 배웠던 것 같다.


또 다른 어린 나는 아마 욕심은 많은데 그것을 충족할 수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해 어려서 영악하게도 얻을 수 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제외함으로 마음을 지켰던 것 같았다. 포기는 포기로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내가 얻을 수 있는 능력치에서 대체되고 그것으로 만족을 얻었다.

무엇을 얻고 간절히 또 갈구하고 무엇이 되려 하는 것보다는 되지 않아도, 얻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마음이 편하고 그것에 길들여 졌다.

기피해야 할 1순위의 성격 매사의 부정적인 인간인 나의 탄생은 아마도 그렇게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부정적인 것은 타인이 아닌 대부분이 내가 내 스스로에게 대하는 태도였기에 남에게는 관대해 보이고 스스로에겐 소심하고 매말라가게 되었다. 나는 무엇이든 간절하고 절박하게 희구하는 열정이 부족해지고 순간이나 찰나의 단편적인 생각과 선택을 따라가는 인생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부정적인 감정을 쓰라는 이 글을 쓰면서,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고, 감정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솔직한 일이고 속이지 않는 나다운 감정 서술인지도 모른다.

감정을 해체하고 남은 조각들 위에, 조심스레 이 문장을 쓴다.

성격과 성향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만들어지는 것이 더 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성격을 구분하는 일은 관계 속에서 취하는 개개인의 특성을 기반으로 나누는 일이기 떄문이다.

인팁 INTP은 이상하고 별스럽다는 말을 듣지만 어쩌면 미래 사람들의 성향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AI니 로봇들이 보고 사고하는 방법이 조금은 서로 닮아있다.


타인에게서 독립적인 성향은 상처받거나 사람 관계에서 부정적인 감정이란 것을 그다지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서 살면서 늘 오차가 늘어난다. 그것을 분노하지 않는다. 단지 세상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라고 받아들인다. 그것에 대해 나는 개입을 원하지 않고 관조하는 역할로 머물려고 할 뿐이다. 그렇지만 외로워질 수 있고 고독해진다.

이해를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고 이해를 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대화와 소통의 방법은 늘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사람이고 별 수 없다. 인정하고 이해를 한다. 감정은 깊숙이 숨어 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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