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추억 1

이웃은 사촌이 맞다 내가 잘되면 그들이 그들이 잘되면 내가 배가 아프다

by 승환

동네를 한 바퀴 돌며 걷다 보면 20년 전 그 자리, 30년 전, 40년 전 그 자리의 기억들이 오버랩되며 같은 공간에 뒤바뀐 기억들이 뭉그러져 있다.

어릴 적 오물과 악취로 기억되던 한강이 번듯한 강변의 공원으로 변모되었다.

그나마 그 한강의 모습을 애써 지우려 아파트들이 성채처럼 둘러쌓고 옥쇄를 한다.

더 이상 쉽게 다가가지도 보이지도 않는 풍경들이다.

저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전에는 납작한 슬레이트 지붕과 고만고만한 작은 집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줄지어 있었다.

그 좁디좁은 골목들이 미세혈관처럼 이어져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사람들은 제각기 고단함과 애잔함 허망함을 한 광주리씩 머리에 이고 나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시답잔은 작은 웃음과 행복감을 주머니에 구겨 놓고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좁은 골목을 따라 집 앞에 엉성한 문을 열기 전에 옆집에 또 뒷집에 이웃들이 한 마디씩 건네는 의례적인 인사말들이 귓가에 꽂힌다.

각자의 문과 창문을 가진 개별적인 집들인 듯하지만 마을 하나가 커다란 집과 같았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별달리 닮은 구석도 없이 형제처럼 가족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내 것 네 것이 구분이 없었고 그냥 비슷하게 고단하고 비슷한 가난, 비슷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서로가 위안이 되곤 하였다.


우리 집은 서울 마포의 한 구석빼기에 유물처럼 남아 있었고 우리 가족들은 그 집에서 마포를 떠나지 못하고 지박령이 되어서 맴돌고 있었다.

큰길을 하나 두고 동네가 둘로 나뉘어 있어서 재건축을 추진한 조합에서도 제외를 당했고 재개발은 법정동이 아니라서 구획에 들지 못했기에 주변이 전부 아파트로 바뀌어 올라가는 동안에도 쓸쓸하게 섬이 되어 방치가 되었다.

사방의 아파트 단지들이 만들어지는 10년 동안 수많은 먼지와 흙덩이들이 더께를 더해서 점점 더 쇄락하고 초라해져 갔다.

새로 지은 아파트 사이로 홀로 폐가처럼 서 있는 모습들이 사람들은 보기 싫어하며 한소리씩 하였지만, 아버지의 지병과 복잡한 문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집이라는 곳에 큰 애착이나 미련을 가지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계시는 동안을 팔아 처분하자는 말도 함부로 꺼내지 못했다.

집이 집으로 더는 효용을 잃어가기 시작하여 주소지는 남겨두고 잠시 외곽의 아파트에 몇 년 사는 동안 아버지는 점점 더 병환이 깊어져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20여 년 전 어머니가 나들이길에 갑자기 돌아가신 후 급하게 일산의 병원에서 장례를 치른 후 장지를 가기 전에 집 앞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모셨다.

아버지도 역시 돌아가신 후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나와 집 앞을 돌고 벽제로 운구차는 떠났다.

두 분의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셨던 오래된 작은집이 그렇게 크게 보이고 소중해 보인적이 없었던 것 같다.


별다른 재산이 없이 남겨주신 것은 오로지 집 한 채였다.

형제들은 팔고 유산을 정리할까 하다 그 집 아니 그 집이 있던 땅을 지키기로 하였고 신축을 하기로 하였다.

땅은 있다 치지만 건축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기에 대출을 받고 건축사이던 친구 J의 도움으로 조그만 5층짜리 다세대 건물을 올렸다.

집터를 허물기 전에 자그맣게 세를 주던 점포의 세입자들이 걸림돌이 되었다.

계약을 하면서 명시를 하였고 만료가 그냥 끝내는 집, 장사를 접으려 하는 집까지 별문제 없이 진행을 하면 되었지만 임차인들이 보게 될 피해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주위에선 모두 반대를 하였지만 새로 건물을 지은 후 평수가 더 작아져도 상관없다면 그대로 들어오시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크기가 작아진 상가로 한동안 고민이 많았다.

그렇게까지 나는 나름 베풀었다고 생각했지만 임차인들이 과연 고마워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나중의 행태를 보면 장편은 안돼도 단편소설 두 어편은 나올 듯 했기 떄문이다.


사람에 대한 실망을 하고 내가 순진했다는 것은 신축을 하게 되면서 더욱더 잘 알게 되었다.

예전의 집들이라 앞집 옆집 할 것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서로 경계가 물리고 어지러웠다.

공사를 하며 내어준 땅을 찾아야 했고 소음과 진동으로 주변이 힘들 것은 자명한 일이라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를 하고 당부를 부탁드렸건만 사람의 이기심이라는 게 40여 년을 옆집에서 살았던 것도 무색하게 돈돈거리는 것을 보면서 정말 조금 남은 정마저 똑 떨어졌다.

앞쪽의 이층 집은 불법으로 옥탑을 꾸미면서 일조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30년 전에 용인해 주었는데 아주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서로 물린 땅을 정리하고 새로 담을 쌓아드린다 하였는데 자기가 침범한 땅은 못주겠고 우리가 침범한 부지는 내놓으라고 우기기 시작하였다.

시동생과 사위가 건축사인데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합의해 주는 조건으로 자기네 옥외 계단참 전체를 렉산으로 덮는 것을 동의해 달라고 하신다. 엄연한 불법이고 일조권을 또 침해받아야 한다.

하, 참 어이없지만 동의해 주는 수 밖에 없었다


또 한집은 담장경계까지 집안에서 뚝딱이며 공사를 하여서 담장까지 자기네 건물 벽으로 쓰고 경계벽에 창문을 내어 놓았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신축을 하려면 아무래도 그 집은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다 불법이지만 무너지면 물어내라 할 것이고 이 것 또한 피곤한 일이었다.


또 옆집 건물사장은 자신이 신축할 때 그렇게 살갑게 굴더니 이제는 이런저런 없는 꼬투리를 잡기 시작한다. 당신의 사위가 검사인게 뭐 어쩌라는 건지 협박 비스름한 엄포에 시유지를 무단으로 쓰고 있는 앞쪽으로 엄한데다 담장을 쳐달라 한다.

몇 달을 집을 짓기 시작도 전에 시달리고 피를 말리는 시간을 허비하였다.


결국 뒷집 한 곳은 돈을 드릴 테니 알아서 담장을 물리고 수리를 하라 합의를 보았고 다른잡들도 해줄 수 있는 만큼의 양보와 배려를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애초에 순진하게 도시가스관을 새로 끌어 오면서 옆집들에게 선의로 쓰시게 편의를 드린다 하였는데 그건 그냥 쓸데없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집은 지어졌고 나는 다시 돌아와서 이곳에 살게 되었고 나의 발목은 점점 더 깊이 땅속으로 들어가서 옴싹달싹하지 못하고 다시 지박령이 된 셈이다.

한 동네에서 다 같이 한 집안처럼 살았던 그 이웃들은 원래 그런 인간들이었는지 아니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 인지 알 길이 없다.


괜히 집을 짓고 다시 기어들어와서 이 악귀 같은 인간들과 악다구니니치고 살아야 되는가 후회가 몰려오기도 했다 더욱이 사람들에 대한 실망도 커서 조용히 혼자 살고 싶었는데 지은집은 다세대로 원룸과 빌라가 섞여있다.

나이 어린 세입자들과 각기 다른 집들이지만 전체가 한집인 집에서 살아가는 것도 두려웠다

예전의 집과 골목의 정감 있고 따스한 이웃을 생각하듯 도시형 신버전의 좋은 이웃 좋은 추억을 쌓으면서 살아갈지 아니면 정말 인간본성의 밑바닥을 박박 긁어가면서 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니 악귀로 보였던 이웃들과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사릴 왕래가 없다 싸울일이 없으니 잘지낸다고 해야할지 모르지만...

요즘의 이웃이란게 생각보다 얼굴 맞대고 볼일도 서로에 대해도 크게 관심이 없다.

물론 별스런일도 제법 있었지만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 세입자들과도 마찬가지이다.

예전 같이 터치하고 관심을 보이는게 조심스러워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니 서로 편하다.

힘든 일이지만 용케도 10년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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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의 마음은 커지고 작아지고 변하기 마련이고 집은 점점 쇄락해 가기 시작한다. 한 번 뒤엎고 새단장을 하는 것은 살면서 다시 하기엔 요원한 일이다.

그래서 일까 10여년전 마음과 달리 나는 또 집이 있지만 아직도 집을 꿈꾼다.


집을 가진다는 것은 보통의 경우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재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요소를 손꼽으면 의식주의 맨 마지막이지만 실상 집이 주는 영향이 가장 크다.

모든 개인의 역사들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일부분을 포기하고 임대를 주는 일은 자못 그럴싸하고 안정적인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있다.

혼자 살라치면 그럭저럭 비비고 살면 되지만 결혼 후에는 일반집과 다른 구조와 좁은 공간이 문제가 되었다.

온전한 내 집이 아닌 형제의 지분이 있는 것도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실제 동생몫의 지분을 정리하면서 매끄럽지 못했다 조금 시끄러웠다.


결혼 후 옆지기와 모델하우스와 외곽의 신축집을 구경을 많이 했다. 잠깐 시기를 놓쳐 지금은 집값 아파트 가격이 터무니없이 올라 포기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나들이 삼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할만한 대체제는 보이지 않는다. 운전을 못하는 옆지기를 생각하면 역세권이나 교통이 편한 곳을 찾아야 하지만 가격이 문제고 크고 좋은 집들은 너무 멀리 외진 곳에 있어 감내하기 힘든 일들이 훤히 보인다.

현실과 이상에서 나는 쉽게 현실을 택하는 편이다 누울 수 있고 그럭저럭 살 수 있다면 별 고민이 없이 지내는데 옆지기의 꿈은 또 다르다.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를 부러워하면서 좋겠다고 이야기하면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집을 매매든 전세금을 빼서 이사 오는 건 너무 쉬운 일인데 모두들 이사와 살라하면 못한다는 것이다.

양손의 떡을 쥐고 또 다른 떡을 탐내는 게 사람인 듯하다.


세상 사가 욕망으로 시작되어 발전이든 상호작용이든 얽혀서 돌아가는 게 이치인 듯 하지만 너무 그것만을 생각하는 삶은 스스로 피폐해지는 것 같다.

집이 재화보다는 꿈이 잠들고 움트는 원래의 기능으로 돌아가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욕망인지 꿈인지 집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인생을 바둑판에 비유를 하곤 하는데 내 집이 있다고 멈추면 게임을 지게 된다. 버리기도 하고 다시 뺏기도 하지만 이길지 질지 모르지만 결국 끝까지 두어야 하는 인생이다.

인생이란 바둑이 끝나고 나면 내가 몇 집을 남겼는지 모자라는지 아무 쓸데없는 일이 된다. 어차피 인생의 바둑은 복기를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 두 번째 판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바둑을 즐기기 위해선 집을 짓고 만들려 애쓰고 그러는 과정안에서 행복을 느꼈다면 족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52년 한곳에 정주해서 지박령으로 살아내는데 지쳐간다.

한 곳애 정주하는 것이 단순한 지루함인지 스스로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과연 무엇을 꿈꾸는 건지 집이 그저 헛된 욕망이 되지 않을지 조금씩 두려워지기도 한다.

딱히 갈 때도 없는데 가고 싶어 어딘가를 헤매려 한다면 그냥 나이들어 봄을 타는 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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