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짓옷

소설 습작( 멋대로 글쓰기 제출용)

by 승환

가로등도 몇 개 없는 골목에는 보름달이 뜨기 전 어스름한 하늘이 파란빛과 검정물감이 섞이어 가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집에 들어갈 생각도 잊은 채 여기저기 와글거리고 몰려다니며 골목의 으슥함을 애쩌 지워주고 있었다.

서울이라고 다 반뜻한 건물들이 휘영찬란 하지는 않았다. 고만고만한 작은 집들이 태반인 변두리 동네에는 강변의 낮으막한 곳으로 산중턱의 빼곡한 집들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한강에는 다리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강남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다지만 그래도 먼 아랫지방에서 올라오는 이들은 넘쳐났고 서울의 외곽이지만 아직도 종로며 광화문에 가까이 있다는 것에 서울내기라는 자부심으로 버티고 살아가고 있었다.


민철엄마는 500원짜리 동전 한 잎을 쥐어주고 민철이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아버지 오시나 보고 있다 오시면 얼른 뛰어와라 엄마는 선희네 잠깐 가있을게"

저녁때가 곧 다 되어 가는데 민철이는 엄마의 신신당부가 짜증이 났다. 그나마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가 위안이 되어 꼼짝 말고 집에서 아버지가 오시나 망보는 일이 싫지만 않다.


민철은 부쩍 잦아진 어머니의 짧은 외출이 싫지도 좋지도 않은 나이가 되어 버렸지만 집안에 어머니가 없으셔서 아버지가 화를 내시는 게 싫었다.

밥을 차려먹을 줄 알기는 나나 누나나 아버지나 하다 못해 동생 민수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꼭 왜 엄마만 밥을 차려야 하냐는 말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가 도 여자가 살림을 하는 게 당연한 건데 왜 엄마는 그것을 못마땅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자가 하여야 하는 일을 남자에게 시키는 것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 아닌가, 다른 집은 어머니가 이런저런 요리도 하고 자식들에게 희생을 하는데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민철 엄마는 선희네 아빠가 오실 기간이 되었다고 하여 마지못해 자리를 일어난다.

아직도 선감이 되기 위해서는 10여 명은 더 포교를 하여야 하는데 이제 더 동네에서는 이야길 꺼낼 이도 없었다.

나와 같은 마음이려니 하여 말을 슬쩍 꺼내보아도 듣기 싫어하는 모습이 역력해 답답하고 안쓰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인생의 고달픔이란 게 종교를 통해 빛을 찾고 영혼의 해방을 찾는 일인데 내가 부족한 탓인가 자책이 들기 시작했다.

대진순리회를 만나기 전의 자신의 살아왔던 기억들을 생각해 보았다.


점심 나절이 지나자 가게에 손님들이 썰물 빠지든 나가고 10평 남짓한 가게 안이 금세 조용해졌다

이제야 한숨을 돌리는지 미닫이 문을 열고 안채에 들어가 본다.

큰애는 계집애라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한쪽에 상을 피고 연신 크레용을 쥔 손을 꼼지락 거린다.

둘째 놈이 성가시게 누이를 따라 한다고 여기저기 개칠을 해서 방바닥이고 온통 난장판이다.

"막둥이 좀 보라니깐 방바닥을 저 모양으로 해 놓았니 못 살아 정말..."

"막내는 잠들었어 엄마, 민철이가 자꾸 옆에서 다 망쳐놓았어 바닥에다 그리지 말라 했는데 말 안 들어"

" 같이 좀 동생 데리고 놀아주지. 누나랑 놀고 싶어서 그런 건데..."

" 색칠할 줄도 몰라 이거다 망친다 말이야"

" 민철아 누나 하는 거 하지 말고 너는 니 장난감 있지 않니 그거 가지고 놀아"

민철이는 뚱한 표정으로 툴툴거린다.

" 나 혼자 하니까 재미가 없어, 엄마랑 같이 하면 안 돼?"

" 이따가 일 끝나고 놀아줄게 엄마가 지금 일해야 하자나"

"이따가 민수 깨면 못 놀잖아."

"그래도 지금은 안돼 점심 먹어야지 엄마가 밥 차려줄게"

방 한쪽에 붙은 채 두어 평도 되지 않은 주방으로 들어가 여주댁은 아침에 끓여 놓은 시래깃국과 김치를 꺼내 차린다. 달걀이라도 하나씩 부쳐주면 좋으련만 정신없이 바쁜 통에 장을 미쳐 보지 못한 것을 생각하곤 저녁 전에 찬거리라도 사야 되는데 마음이 바쁘다.


옥수동에서 신접을 차리고 얼마 안돼 낳은 아이가 있었더라면 큰 오빠라 아이들을 좀 봐주고 손이 덜 갔을까 아니면 더 복작이는 고생이 더할지 유산된 큰애 생각이 들었다가 몸서리치고 지워버리려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셋이 있었지만 없는 아이는 아이대로 아픈 손가락이고 가급적 생각을 안 하려 잊고자 하고 살았다.


둘째인 첫딸을 낳고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고향인 이곳 마포로 이사를 가자했다.

원체가 직장생활을 잘할 양반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정말 몇 년을 못 가고 장사를 하겠다고 할 때 덜컥 걱정이 났다. 장사를 하는 것은 둘째치고 마포로 가겠다고 하니 줄줄이 위에 있는 윗동서들과 아랫집 윗집으로 붙어살 것이 두려웠다.

9남매의 막내인 남편은 덩치만큼이나 어디 가서 꿀리는 것 없이 자기 마음대로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지만 부모뻘 되는 동서들이 이래저래 시집살이를 시킬게 뻔히 보였다.

돌아가시기 전 시모를 잠깐 뵈었지만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셨지만 나이가 고령이시고 막무가내 막둥이인지라 남편의 고집을 꺾지는 못하셨다.

서울사람은 깍쟁이라는 말이 있듯이 겉으론 점잖은 척 겸손을 떨고 예의를 따지는 듯싶지만 서울내기가 아닌 데다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못마땅하여 자기네끼리 이러쿵저러쿵 말을 안 했을 리가 없었다.


남편은 대학물을 먹고 배운 사람인데 어디 점잖은 구석은 하나 보이지 않고 주먹을 쓰는 건달같이 어깨에 힘만 잔뜩 주고 다니며 이 친구 저 친구들을 만나 술 먹는 날이 다반사였다.

원래 운동을 했던 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은행을 다닌다 하여 젠틀한 와이트칼라 사모님이 될지 알았지 아이 셋을 둘러메고 안고 끼고 장사를 하며 살아가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이사를 온후 어설프게나마 집을 짓고 점방을 만들어 세를 주고 쌀집을 열었다.

적어도 쌀집을 하니 밥 굶을 일은 없겠구나 안심을 하였지만 남편이 처음에는 제법 큰 자전거도 끌고 열심히 장사를 하더니 금세 싫증이 난 건지 일해줄 어린 총각을 하나 종업원으로 들이더니 놀러 다니기만 바쁘다.

결국 집안일부터 장사일이까지 다 내 차지가 되었다.

40kg 나가던 몸은 힘에 부친 장사에 아이들 건사에 자꾸 살이 찌고 찌부러져 갔다.

몸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그저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둘째가 또다시 셋째가 태어나니 아이들 앞에선 차마 보이지 못했지만 힘이 들어 눈물이 나고 돌아가신 친정엄마만 생각나고 보고 싶어졌다. 나는 여자라서 엄마처럼 또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일가? 날 아들로 낳아주시지...

나보다 더 험한 시절을 살다가신 엄마의 말한데라도, 차라리 썩을 년이라고 욕이라도 해주셨으면 그냥 친정 엄마의 치맛자락에 매달린 아이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남편이란 작자가 원체가 무뚜둑 하기도 했지만 아이 셋을 낳을 동안 남편은 곰살맞게 따듯한 말 한마디 없이 남의 집 불구경 보듯 시큰둥했다.

아이 키우는 게 보통일이 아닌 거야 모르지 않을 텐데 두 살 터울로 셋을 키우는 게 올곧이 다 내 몫이려니 하고 참아오다가 순간순간 부아가 치밀었다.

이쁘다 한번 안아주고 혼자 좋은 아버지 좋은 부모 역할은 다하면서 애들 버릇이 잘못 들거나 말썽을 피우면 그저 딴짓을 하고 내보고만 잘 가르치라 역성을 하곤 한다.


오늘도 유난히 힘든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아이들은 왜 오늘따라 유난스럽기만 하고 남편은 어제 분명 돈이 들어왔을 텐데 수금한 돈은 내놓질 않고 아침 댓바람에 나가서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렇게 10여 년을 살아왔다.


내가 좋아서 한 결혼이고 내 아이였기에 무슨 공치사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건만 스스로 깎여져 가는 자존감과 절망이 쌓여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본 세월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몸을, 마음에 쌓인 상처들이 기어 나와 손을 뻗어 자꾸 매만지고 할퀴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 것인 게 뭐 하나 있을까? 아이들마저도 어느 정도 키우고 나니 그저 아버지말에만 꿈벅하고 어미가 배우지 못해서 못나서인지 무시를 하는 듯했다. 그것이 더욱 나를 절망하게 했다.


민철엄마는 다시 마음을 굳게 다졌다.

음덕을 쌓고 선하게 살아도 그 공과 과실을 취하려면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만 못하다는 것을 여기서 중단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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