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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밤
숙제입니다 삼월인데 눈이 주제어 ㅠ
by
승환
Mar 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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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밤
눈이 내린 밤이었다
주인공인 눈을 비추려 가로등은 초저녁부터 껌벅이며 분주하더니 눈이 수북이 쌓여가자 눈보다 혼자 눈부신 밤이 찾아온다.
넓지도 않은 공원의 눈밭 위로 누군가 그려놓은 하트 속 영수와 민희는 이름 두 자로 세기의 사랑인 듯 또렷이 음각되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영수와 민희는 자꾸 희미해진다 사랑이 그리 찰나인지 눈은 사랑을 덮고 영수와 민희는 전설처럼 사라져 가는 밤이었다
저 눈 속에 묻힌 세기의 사랑을 지켜보던 나는 사라지는 것이 그저 두 명의 사람인지 사랑의 운명인지 눈은 사랑을 포근히 덮어 긴 겨울의 잠으로 자장가처럼 재우는지 그저 다 하얗게 덮어 지우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노라 꿋꿋이 서있다.
눈은 끝까지 다 덮고 조용히 물러난다.
이제 묻혀서 전설이 돼버린 그위로 나의 차례인지 흰 캔버스를 받아 든 나는 움 틀 거리는 욕망과 꿈들을 끄집어낸다.
예쁜 집과 늘씬한 차를 그리고 별을 그리고 사랑들을 그린다 엄마와 아이를 친구들을 그리고 남겨진 빈자리엔 한 사람을 그리고
또 지운다
이제는 기억나지 않은 얼굴을 그리다 애써 지우고 이름을 쓴다,
다시 지운다.
얼굴만큼 기억나지 않은 이름은 그저 사랑이라고 부를까?
눈은 온통 하얗게 덮어 내가 잊은 추억들도 부끄럽지 않은 밤.
겨울은 망각과 추억이 버무려져 그냥 하얀 눈으로도 충분한 계절이었다.
캔버스에 그릴 수 없는 게 사랑 뿐이겠는가?
인생이 한편의 시처럼 풀어 써질 수 없는 빛바랜 노트 위로
눈처럼 쌓여가는 것은 그리움이었는지 절망이었는지
누군가 이야기 하여 주지 못하여
나는 절망을 망각하고 또 한번의 절망을 곱씹고 삼키고 있다.
눈은 그저 계속 내리고 나는 눈사람처럼 꿋꿋하게 서 있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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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환
살아가는 것은 살다 말다 못하는데 쓰는건 쓰다 말다 하게되네요 사는동안 사는 것처럼 쓰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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