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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msoo Kim Jan 19. 2020

[취향을 찾아서 6화] 예술영화에 빠져보고 싶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관람하고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마블을 위시한 상업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작년에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 상업영화를 좋아하던 사람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것, 연말에 가서야 겨우 봤다는 것은 어쩌면 상업영화에 지쳤던 것이 아니었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콘텐츠에 지쳤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최근 들어 한국영화는 <기생충> 이후에 연출이 퇴보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 효과음과 BGM으로 중무장한 사운드, 마지막으로 특정 계층의 이해관계가 너무 깊이 들어간 [나랏말싸미]와 같이 미디어로서의 가치도 없는 콘텐츠 등등은 영화광인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젊은 층들이 취업이 안 되어 SNS로 몰려가서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콘텐츠들을 많이 만들어서 그런가, 요즘 내 영상콘텐츠 소비 시간은 상업영화를 합쳐 하루 4시간에서 20분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콘텐츠에 질리고 피로도를 느낄 때쯤, 우연한 계기로 예술영화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게 됐다.







그 우연한 계기는 트렌토리라는, 내가 세상을 알고 취향을 알기 위해 참여하는 모임 내에 있는 영화토리모임 때문이었다. "요즘 콘텐츠들에 질려 있는데, 저 영화 봐 볼까?"란 생각이 들어 신청했고 영화도 관람했다. 관람했을 때 이 영화가 퀴어 영화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응?


하지만 그 충격은 아주 사소하게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영화를 분석하며 봤는데, 세상에. 이렇게 감각적인 연출을 오랜만에 영상미디어에서 만나다니. 영화는 배경음악이 거의 없다시피했다. 축제라고 하기에 매우 검소(?)한 규모지만, 축제 때 음악이 나왔다.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갈 때쯤과 엔딩 부분에 나오는 비발디의 사계 여름 3악장이 전부.


요즘은 유튜브 시대이기 때문에, 영상에 배경음이 없으면 재미없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왜냐면 유튜브 콘텐츠는 모든 영상에 배경음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경음이라는 것도 지나치면 안 넣느니만 못하다. 말, 대사, 분위기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배경음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배우들의 열연과 음악이 없어도 집중하게 만드는 각본이 차지했다.


그림을 그릴 때 사각사각 거리는 연필 소리, 대자연에서 느껴지는 파도와 풀소리, 불이 타면서 내는 자자작 소리들이 공백을 메꿨다. 그 느낌이 좋았다. 나는 예전에 이 느낌을 닌텐도 게임 중 하나인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통해 느꼈었다. 그 게임은 배경음이 거의 없다. 대부분 자연 속에서 나는 소리들이 배경음을 대신하고 있다. 그 덕분에 게임을 하면서 야생 속에서 느껴지는 바람, 풀, 비, 번개, 눈보라 소리 등에 집중할 수 있어서 내가 탐험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게임만 하루 20시간을 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몰입됐다.


요즘 내가 빠져 있는 MBC 드라마 클립 [제 5공화국]도 마찬가지. 필요할 때만 배경음이 나오지, 이덕화(전두환 역), 서인석(노태우 역), 김기현(장태완 역) 등 대배우들이 내면 연기를 할 때엔 배경음이 없다. 배경음이 없는 공간은 대배우들이 뿜어내는 연기력과 화면 장악력이 채운다. 그래서 콘텐츠 내용에 더 몰입이 된다.


배경음이 없어도 씬과 부합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소음들,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있으면 사람은 거기에 몰입한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참으로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연인 간의 사랑을 나눈 후의 장면들,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까지 현실에 가까웠고 자극적이지 않았다. 아픈 순간들에서도 신파가 없었다. 억지로 쥐어짜내는 장면들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떨까?"란 나만의 해석도 해볼 수 있었다.





나에게 좋은 추억들을 줬던 게임 콘텐츠에서, 현재 드라마보다 잘 만들어졌던 옛날 드라마에서 느꼈던 연출의 미학을 예술 영화로 다시 느껴보게 될 줄이야. 콘텐츠 제작을 7년 2개월 간 해 오고 있는, 매너리즘과 콘텐츠 불감증에 빠진 나에게 "그래도 콘텐츠 소비는 확실한 행복이야"라는 걸 예술 영화로 다시 확인을 하다니.


영화 관람 후에, 예술 영화를 보는 걸 취향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상업 영화에 더 익숙한 것이 나지만, 예술 영화라는 것을 더 접해보면 감각적인 연출과 편집을 접해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콘텐츠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을 것 같다. 콘텐츠 매너리즘도 빠지지 않겠지. 생각할 거리가 더 많아져 가슴 속 깊은 여운으로 남겠지.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선정성, 폭력성, 이념을 강조하는 상업 영화를 보는 시간에 예술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깊은 나만의 여운에 빠져서 취해보는 짜릿한 경험도 하겠지?


그래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관람한 후에, 꼭 한 번은 예술 영화를 감상하는 걸 취향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텐츠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최유리 마케터님이 고르신 예술 영화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덕분에 나도 이제는 "내 마음속에 여운을 주는 그 무엇"이 담긴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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