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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msoo Kim Jan 21. 2020

[취향을 찾아서 7화] 커피, 케렌시아, 그리고 글

치열한 일주일 후, 내 취향을 만들고 즐겼던 날

"탁탁탁... 탁탁탁.... 휴, 드디어 광고 모두 끝냈네." 지난 주는 매우 바빴다. 와. 내 삶에, 그것도 방문자 98만 블로거에게 과분하게도 광고가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광고만 올릴 수 없고, 게임사 광고 수주를 위해 자체 제작한 컨텐츠까지... 지난 주는 아마 내가 블로그에 글 23편 정도 썼던 것 같다. 서촌 데이트 코스에 들어가는 브런치 카페 광고를 마친 후, 나는 오늘만큼은 나의 케렌시아로 가서 쉬고 싶었다. 내 취향을 만듦과 동시에, 가지고 있던 취향을 즐겨보고 싶었다.




"탁탁탁... 탁탁탁... 탁탁탁..." 언제 들어도 정겨운 커피머신 소리가 나를 반겨주는 곳이 있다. 내가 오픈한 다음부터 자주 찾아가는 송리단길 스웨덴식 커피와 차 등을 파는 뷰클랜드, 이곳은 나의 케렌시아이기도 하다. 폭풍같이 일을 처리하고, 잠깐의 쉼표를 딱 찍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손님들에게 "편안한 휴식 되세요"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너무 좋다. 내가 속한 블로그 콘텐츠 계는 유튜브계 못지 않게 경쟁이 강하다. 유튜브는 크리에이터의 개성으로 경쟁한다면, 네이버 블로그는 검색유입으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100만 블로거를 넘어, 올해 500만 블로거를 꿈꾸는 나에게 있어 하루에 글 2~3개씩은 써야, 향후 프리랜서로 일하던 회사에 들어가던 둘 다 같이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경쟁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카페에 가서 되도록 빠르게 커피를 마시거나 일한다. 그런 우리에게 이 카페는 "편안한 휴식 되세요"라고 말한다. 문장 중간에 쉼표를 찍듯이, 우리 삶에 잠깐 쉼표를 찍도록 만드는 카페다.






나만의 케렌시아에 가면, 내가 하는 루틴이 있다. 이곳 커피 중, 첫 맛부터 반했던 스웨덴 스윗라떼를 시킨다. 그리고 최근에 추가된 식빵 세트를 시킨다. 자연적인 단맛과 함께, 고소함을 맛볼 수 있는 딸기잼과 버터가 잘 구워진 식빵과 케미를 잘 이루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드러운 스윗함이 무기인 스웨덴 스윗라떼를 먹으면 하루의 고민이 사라진다. 마치 일상의 경쟁에 지친 나를 위해 준비된 소확행 같은 느낌이 든다.


맨 먼저, 스웨덴 스윗라떼를 맛본다. 그리고 국내 프랜차이즈 커피에서 맛볼 수 없는 부드러움과 달달함에 취한다. 입 안에 여운이 남아돈다. 그 여운을 억지로 삼키지 않는다. 최대한 내 입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 이 맛을 잊지 않고 싶다는 나만의 루틴을 한다. 한 모금이 아쉽게 넘어가면, 빵을 먹은 다음에 다시 그 한 모금을 즐긴다. 뭔가 맛있는 커피를 먹을 때, 그 맛을 최대한 천천히, 여운 있게 즐기고 싶은 내 마음 때문이다.


대학생 때, 조별과제로 인해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쓴맛을 접했던 나는, 독서모임을 다니며 투썸 / 스타벅스 / 커피빈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셨었다. 그중에서는 스타벅스가 잘 맞았던 것 같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지겨우면 말차라떼를 먹을 수 있고, 새로 나오는 메뉴를 즐길 수 있으니까. 커피빈은 뭔가 맛이 부족했고, 투썸은 그저 그랬다.


스타벅스가 지겹다고 느껴질 때, 내가 찾았던 곳은 블루보틀이었다. 그곳에서 커피 맛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일 뿐인데, 사이다를 마시는 것과 같은 청량함이 인상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일반 프랜차이즈 아메리카노는 쓴맛이 강한데, 블루보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 커피 맛 잊고 싶지 않다"를 느끼게 해줄 정도로 청량했다. 그날 이후, 나에게 커피 취향 루틴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 취향은 맛있는 카페가 있으면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게 해준 것, 그리고 맛있는 음식은 그 여운이 입 안에 많이 남도록 천천히 즐기는 것. 히히. 스웨덴 스윗라떼도 여기에 속하니, 내가 내 루틴대로 마셨던 것은 당연한 일.





스윗라떼 한 모금, 한 모금의 사이는 빵으로 채운다. 잘 구워진 빵은 따스할 때 손으로 뜯어 먹어야 제맛이다. 부드럽게 찢어지는 빵 위에, 자연산 딸기잼을 발라 먹으면 그야말로 미미(요리왕 비룡에서 나온 맛표현, 최상급 맛)가 따로 없다. 빵이 가지고 있는 포근함이 침이 마를 정도로 굳어버린 내 혀를 감싸준다. 추위에 떤 나그네에게 햇빛을 선사하듯, 따스함을 선물로 준다.


딸기잼이 물릴 때쯤, 버터를 빵에 발라 먹는다. 딸기잼의 스윗함을 즐기지 못하지만, 입 안에 잊을 수 없는 고소함을 선물해준다. 그리고 버터와 빵을 즐긴 다음 먹는 스윗라떼 맛을 더 달달하게 만들어준다. 여러 입을 먹었을까. 휴식이 주 테마인 카페와 다르게, 맛있는 녀석들처럼 전투적으로 빵을 먹는 나를 발견한다. 맛있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경쟁 사회에서 휴식을 외치는 이곳, 나의 케렌시아에서 잠시 내 취향대로 사치를 부려보았다. 요즘 나는 영국 작가들의 글에 빠져 있다. 내가 인생 작품으로 치는 [반지의 제왕]도 영국 글이고, 옛 추억에 젖어 읽는 [해리포터]도 영국 글이다. 영국 글에 나오는 인물들은 일장일단이 있다. 인간적인 갈등도 잘 드러낸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기지를 발휘하고, 서로를 도와주며 성장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그랬듯,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그랬듯, 때때로 무심하지만, 가장 따뜻한 위로를 독자들에게 건넨다.


요새 그 따스함이 정말 그리웠다. 내가 속한 업계를 비롯해서, 요즘은 팀플보다는 각자도생, 경쟁을 더 추구한다. 이것들이 필요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우리가 잠시 희망을 꿈꾸고, 사랑을 나누고, 쉼표를 찍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없게 만드는 과도한 경쟁은 대체 뭔 의미일까. 그렇게 해서 나를 드러내고, 타인을 깎아내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영국 사람들의 작품에서는 그런 걸 찾아보기 힘들어서 좋다. 휴식을 강조하는 나의 케렌시아인 뷰클랜드에서 쉼표를 찍으며, 잠깐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와. 나의 케렌시아에서 취향에 빠지는 호사를 누리다니?






그렇게 오늘은 내가 좋아하고 빠져 있는 것들과 함께, 3시간이라는 짧은 쉼표를 나의 삶에 찍었다. 언제 읽어도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마법 판타지에 중독되도록 만드는 [해리포터]와 함께 말이다. 입 안에 스웨덴 스윗라떼의 여운이 다 가실 무렵, 나의 독서도 끝났다. 창가는 어두워진 밤을 비춰줬다.


어제의 휴식을 즐기며, 요즘 나의 취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생각했다. 과거에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 브랜드 있는 것만을 소비하는 것이 내 취향이었다면, 32세의 나는 과거의 풋풋함과 치열함보다는 나를 돌아봐줄 수 있는 것, 내 삶에 잠깐 쉼표를 찍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찾는 게 내 취향으로 바뀌는 것 같다.


업에서 치열하게 일할 수록, 삶의 무게에 짓이겨 살 수록 나를 잃어버리기 쉽다.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총체적인 것을 뜻한다. 친구, 건강, 취미, 여유 등등... 특히 나같이 검색포털에서 얻는 인기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인기 있는 나를 지키며, 나의 자아가 숫자 / 인기 등에 매몰되지 않게 해야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 치열하게 일하는 나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지키되, 취향은 조금 여유로운 것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내 삶에 여유가 많을수록,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며 쉼표를 찍을수록, 롱런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끔씩 이런 것을 취향으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일주일 중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것, 끌림을 느끼는 것에 푹 빠지며 삶의 여유를 즐기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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