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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msoo Kim Jan 21. 2020

[취향을 찾아서 8화]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3년차 디지털 맥심 구독자가 2019년에 아날로그 매거진 구독자가 되다

맥심이라는 잡지, 누군가에게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잡지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섹시함, 힙함, 남자를 잘 저격한 잡지이다. 나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한다. 내가 공익근무요원 훈련소 군사훈련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동네 서점에서 가장 먼저 접했던 잡지인 맥심. 나는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예쁘고 섹시한 화보 뿐만 아니라, 진짜 남자 인터뷰와 함께 남자에게 필요한 지식이 총망라되어 있었으니까.





그로부터 3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내 취준 역사상 가장 짜릿한 경험을 했다. 남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고, 섹시한 미스 맥심 및 화보 콘텐츠를 만드는 맥심에디터가 되기로. 실제 시험에 도전했고, 2차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 1달이 참 짜릿했다. AV 역사를 한달만에 다 외웠으며, 배우가 누군지 알았을 뿐만 아니라, 생각보가 콘텐츠에는 특정 층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섹시함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경험했으니까.


그래서 그때, 맥심에디터 시험에는 실패했지만, 내 인생 역사상 가장 유쾌한 실패로 기억에 남았다. 그날 이후, 맥심이라는 잡지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물론, 3년차 구독자의 시작도 그때였고. 시험에 떨어진 사람도 팬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잡지의 마성, 맥심 특유의 힙한 시선(과할 때는 구독자 시선도 찌푸릴 정도였지만)과 쿨내나는 B급 감성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집안은 독실하신 불교 집안이시다. 그리고 집 안에 여자가 나오는 물건들을 잘 둘 수 없을 정도로 보수적인 집안이시다. 최근에 들어서야 집 안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인 트와이스 앨범을 둬도 뭐라 안 그러시는 경지(?)까지 도달했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뭔가에 끌리면 꼭 그것을 읽고 즐겨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집 안에 맥심 잡지를 뒀다가 고난의 행군을 당할 것 같았다. 나의 대안은 당시 가지고 있던 아이패드. ios로 디지털구독을 한 것이다. 아이패드는 오롯이 내 사물이었기 때문에 집안에서 나만 건드릴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ios 디지털구독을 신청했고, 맥심 디지털 앱이 발간되는 매월 1일을 기다리며 예쁘고 섹시한 화보, 힙함과 맥심 감성을 유지한 B급 콘텐츠, 에디터들이 심혈을 기울여 쓴 칼럼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랬던 내가 맥심을 종이로 구독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19년 10월, 내가 사랑하던 맥심은 편집 구조를 바꿨다. 기존 과월호(2019년 10월호 기준)들이 "나쁜 남자들의 바이블"이라는 슬로건 아래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판타지를 종합적으로 다뤘다면, 2019년 10월호부터는 "1달 1주제 심층 잡지"로 특정 장르를 깊게 파고 드는 잡지로 바뀐 것이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뭔가 싶었다. 하지만... 디지털로 공개되었던 2019년 10월호를 본 내 생각은 바뀌었다. 남사친 여사친 이야기, 그리고 친구 사이가 썸에서 연인으로 발전할 때 필요한 잇템들, 남사친 여사친 경험담이 담긴 에디터들의 기사는 "단일 주제 가지고도 이렇게 깊고 시끌벅적하게 몰입감 있게 다룰 수 있는 건가?" 싶은 재밌는 콘텐츠를 향한 내 욕구를 정말 잘 찔렀기 때문이다.


이 변화, 나에게 있어서 정말 자극적이고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리고 이제 떳떳하게 맥심을 즐기고 싶었다. 집에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과월호들이 모델들에 따라 집에 두는 것, 내용에 따라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호불호가 좀 강했는데, 이번 개편으로 인해서 "1달 1주제만 파는 남성전문매거진"으로서 집에 두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주제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11월호는 사내연애라는 가장 핫한 이야기를 다뤘고, 12월은 크리스마스를 다뤘다(연인 발전 이야기 등등...). 압권은 올해 1월호였다. 1월호 주제는 선정적인 잡지라고 욕을 먹지만, 그만큼 충성 애독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맥심 사람들 이야기였다. 그 사람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직장인이었다는 것, 미스맥심들도 화보에서나 강하고 섹시하게 보이지, 그들도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자,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는 여자들이었다는 게 인상깊었다. 그래서 콘텐츠만 놓고 사람을 평가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잡지로 배웠다.






2019년 10월을 기점으로, 내 맥심 취향도 바뀌기 시작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오롯이 즐기는 쪽으로, 그리고 디지털 매거진에서 아날로그 종이 매거진 구독으로 바뀌었다. 맥심이 현재 1개 주제만 심층적으로 파고 드는 잡지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팬이지만 소장하기 좀 부끄러웠던 잡지가 지금은 소장하고 싶은 잡지로 바뀌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취향도 맥심의 변화와 비슷하게 바뀐 것 같다.


디지털구독에서 종이 아날로그 구독으로 바꾸며, 나는 나의 취향 중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뭔가에 꽂히면 반드시 가져보고, 즐겨보는 것"이다. 이 취향 덕분에 다시금 종이 잡지를 읽는 맛을 느꼈다. 그리고 맥심 중에서, 내가 반드시 가져보고 싶은 과월호까지 소장하게 되었다. 역시, 나라는 사람은 뭔가에 꽂히고 즐길 때, 그것을 취향으로 삼을 때 채워지는 것 같다. 앞으로 내 책장에는 어떤 맥심의 스토리가 채워질까. 나라는 사람은 현재 꽂히는 취향인 1잡지 1주제로 편집되는 맥심을 얼마나 더 사랑하게 될까. 기대되는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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