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해
터벅터벅. 자리를 찾아 헤맨 후, 카페에 앉아 이번주에 생산한 콘텐츠들을 다시 복기했다. 이번 주는 총 3개의 회사 콘텐츠를 생산했다. 한 번에 통과한 것은 하나, 11개의 초안을 작성한 후에야 통과된 것 하나, 발행 전 사진 퀄리티 때문에 나 스스로 편집을 접어버린 것 하나.
글쓰기라면 자신있던 내가 1승 1무 1패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네이버 때부터 지금까지 총 3000여 편의 글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글이란 놈은 정복할 듯 말 듯한 존재인 것 같다. 아, 대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 그동안 내 무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번주는 회사 신년 인사문, 블로그 콘텐츠를 쓰면서 강원국 작가님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많이 참고했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우리나라에서 명문장가로 알려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글에 대한 철학과 대중을 위한 글쓰기 기술들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따라서, 마케터나 방송구성작가라면 한번쯤은 봐야 하는, 아니, 성경처럼 받들어야 하는 책이다.
방송구성작가, 그리고 중소 광고대행사 홍보 총괄 이후 펼쳐보지 않았던 [대통령의 글쓰기], 다시 읽다 보니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해보자.
01. 무공을 쌓는 데에는 방향이 있다.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지를 기억하는 사람? 이방지는 선천적으로 유약했고,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하지만 이방지는 정인이 끔찍한 일을 겪는 것을 본 후, 장삼봉이라는 스승을 만나 비국사 승려 등 저렙부터 길태미, 길선미, 척사광 등 당대 최고수들과 겨루며 삼한제일검으로 성장했다.
그의 성장에 있어서 실전 경험은 큰 영향을 줬다. 글 또한 마찬가지다. 마음 속에 품기만 하고 어디에도 끄적이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는다. 개인 일기장이 아니라, 블로그나 브런치, 페이스북과 유튜브 대본 등 실전에서 글을 쓰면 더 성장한다. 글쓰기 3대 덕목 중 하나가 다작, 많이 쓰기이기 때문이다.
그간 나는 이방지처럼 많은 글을 썼다 자부했다.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고 자부했다. 광고 대행사에 다니며 홍보 글만 600여 편, 개인 블로그 6년 운영하며 3,000여 편의 글을 썼고, 유튜브를 하면서 11건의 대본을 썼으니, 못해도 3,611여 편의 글을 썼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 마케터가 되고 나서, 글 수준을 높이 치시는 대표님을 만나며 “과연 많이 쓰기만 한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일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들어 내 글을 복기했다. 아, 맙소사.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어느 정도 성장하면 일어나는 양질전환이 그렇게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고 이럴수가. 대행사 때는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네이버 상위노출 1페이지 1위 아니면 아무도 거들떠 안 보는 옥외광고 제안 포스팅을 썼기에, 글의 완성도보다는 수량이 매우 중요했다. 어법에 맞지 않아도 글이 윗선에서 통과되었으니, 말 안해도 알 것이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 여기도 1일 1글 내지 1일 3글 작성 아니면 네이버 포털 상위노출은 꿈도 못 꿀 상황이었으니, 자연스럽게 글 퀄리티는 어떠하였을지.
02. 글쓰기 3원칙은 다독, 다작, 다상량
다시 읽은 [대통령의 글쓰기](회사에 종이책을 두고 다니는 중, 아이패드로는 출퇴근 시간과 쉴 때 읽는다), 거기서 송나라 때 사람 구양수가 제시한 글쓰기 3원칙을 보았다. 다독과 다작, 다상량이 그것이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헤아릴 것,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는데......
아, 내가 그간 이 3원칙 중 다독과 다상량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대행사 시절,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쓰기라도 하면 바로 윗선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우리는 영업글 잘쓰는 사람, 많은 글을 하루에 쏟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글 잘 쓰는 사람은 필요없다. 글을 잘 쓸거면 작가가 될 것이지 뭐하러 마케터가 되었니?” 글에서는 까이지 않았으나 영업에서 까여서 내 존재를 입증받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아마 그게 지금은 독이 된 듯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놓친 것이 많았다. 다상량과 다독을 놓쳤다. 다독을 놓쳤다는 것은, 책을 많이 읽었을 뿐, 그 문장이 가진 의미를 오롯이 내것으로 새겼는가의 여부에서 그렇지 않았음을 뜻한다. 다상량을 놓쳤다는 것은 어떻게든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기 위해, 나의 존재감을 입증받기 위해 빨리 자극적인, 저격하는 글을 써야 했기에 놓쳤음을 의미한다.
내 글을 복기한 결과는 이랬다. 대도서관이나 도티 등이 말한 의미 있는 양질 전환이 일어나려면, 대표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하려면 글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03. 대통령기록연구실의 글들: 글의 정수란 이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는 대외홍보를 중요하게 여긴다. 대표님은 글에 대한 안목이 높은 분이다. 간결하게, 하고 싶은 말만 하되 유머러스가 섞인(어렵) 글을 최고로 치신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터라면 뭘 해야 할까. 자기 관행을 고집해야 할까? 아니다. 마케팅은 내부부터 먼저 설득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내부자들의 까다로운 기준부터 충족해야 할 것이다.
글에 대한 안목이 깊으신 대표님 덕분에, 업무 시간에 글을 연구하면서 대통령 기록연구실에 있는 자료들을 많이 열람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글의 안목이 가장 깊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때의 연설문들을 쭉 읽었다. 그리고 현타를 경험했다. 세상에. 11분 짜리 유튜브 대본보다, 파워블로거들의 글보다 분량이 더 긴데 지루하지 않았다. 책 1 챕터에 달하는 글 분량에서 주제에 어긋나는 말들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얼마나 다상량을 한 것일까.
그 때, 글에 대해서 다시 배웠다. 파워블로거들의 글은 간결하지만, 사진의 분량이 많아 글의 전체적인 분량은 적다. 쉽게 읽히지만 무릎을 탁 칠 만할 구절은 없다. 유튜버의 대본들은 분량이 길고, 블로그 글보다 유머러스하지만 정제된 문장은 잘 없다.
하지만 대통령들의 문장은 달랐다. 책 1챕터 분량의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메시지로 연결되었다. 다양한 사례들이 나왔지만, 서론부터 본론, 결론까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딱 하나였다. 야당에 협조를 구하는 것이든, 자기 정치 철학에 대한 회한 등등, 그 긴 글에서 메시지는 딱 하나였다.
아, 글이란 건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진짜, 컨텐츠의 품질이 중요하다고 하면, 글을 쓸 때는 무작정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각의 틀을, 하나의 메시지라는 기둥에 붙여나가며 “내가 전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눈에 읽히게, 귀에 들리게 전달할 수 있게 써야 한다는 것을.....깨달았다.
04.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깨달음 후, 나는 집에 있는 종이 책들과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중고로 내놨다. 임시 생활비가 필요했지만, 구양수가 말한 진정한 의미의 다독을 실천하고 싶어, 내가 가장 자주 쓰는 아이패드 리디북스 앱에 실을 전자책을 사기 위함이었다. 아마도 구양수가 말한 다독은, “많은 작품 읽기 + 가장 정수인 책은 반복해서 읽으며 내 것으로 만들기”가 아니었을까?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수인 책을 다 외울 정도로 읽는 것도 중요할 것이니 말이다.
이 생각에, 나는 강원국 작가님의 글쓰기 3종 시리즈를 전부 전자책으로 샀다. 출퇴근 길에, 혹은 어디 가서 쉬면서 전자책으로 계속 반복해서 읽다 보면, 구양수가 말한 진정한 의미의 다독을 깨우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혹시 아는가? 오늘, 글을 다시 배운 이 에피소드가, 올해 내 브런치 / 티스토리 / 유튜브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키고 회사 대외홍보글도 더 잘쓰게 도와줄 지 말이다.
참, 실전에서 격 높은 사람들을 만나며 글에 대해 다시 배울 수 있어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