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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카 May 27. 2020

후드티의 역설

난 서른이 되면 후드티를 못 입을 줄 알았다.



고등학생 때 난생 처음 내 손으로 내 옷을 사 보았다. 투애니원과 소녀시대가 보여주듯 형형색색이 유행이던 때에 나는 에메랄드빛 후드집업과 네이비색 후드티를 자주 입었었다. 


고3이던 나의 기준에서 어른인 20살이 되면 샤랄라한 대학생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1년 후면 청소년에서 어른이 된다는 생각에 대학생이 되서 화장도 하고 옷도 내가 좋아하는 옷을 골라 사서 입고 다니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정작 대학생이 되자, 치마와 원피스를 입는 것도 잠깐, 편안한 복장의 차림새와 더불어 다시금 후드티를 사서 입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과제 외에는 별로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심지어는 후드티에 시뻘건색 과잠을 입고 클럽에도 갔었다.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갔는데.. 그때는 입장거부를 안 당한게 의아했었다. 


결국 후드티로 복장이 돌아왔지만 앞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 나름 커리어우먼, 직장인이 되어야 하니 멋진 정장이나 캐주얼정장을 입고 다니니 않을까 상상했다. 그래서 면접 전에는 엄마와 백화점에서 군청색 치마형태의 정장세트를 구매하기도 했었다. 사실 그 정장은 딱 여섯 번 정도 입었 던 것 같다. 주로 면접 때 입고, 불편한 정장에 내 몸을 끼워 맞춘 듯한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도 불편해 보였는지 출근할 때는 정장을 입지 않아도 됐다. 사실 정장이 그렇게 편하진 않았지만 약간 헐렁했기에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았지만 주로 패션쪽과  IT기업에서 일을 하다보니 캐주얼하게 입어도 됐었다. 아직도 정장을 고집하는 회사가 많으니, 나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캐주얼 중에서도 회사원스러운 캐주얼 복장을 고수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만들어주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회사를 관두고 나만의 사업을 하고 있다. 아직은 프리랜서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 편하게 일할 때는 내가 만든 후드티를 입고 일을 한다. 


커리어우먼같은 복장을 입었던 그때와는 달리, 내 내면의 알맹이는 그때보다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대학생 초반 때, 후드티를입으면서 나는 서른이 되면 이런 편한 후드티를 더이상 입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서른이 넘어서도 후드티를 사랑하며 자주 입고 다닌다. 후드티의 주머니에는 울룩 불룩하게 지갑과 핸드폰을 넣어 다닌다. 겉으로는 대학생 때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공부하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인 것도 알게 됐다. 멋진 직장인 같았던 그 때는 더더욱이 꼬맹이였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불편한 정장에 나를 끼워 맞추던 그 때, 나를 회사에 끼워 맞추던 때와는 달리 나는 내 성격에 맞게 회사에서 나와서 편하게 나만의 하루를 시작한다. 후드티 끈이 잠깐 거슬릴 수 있듯이 가끔은 불편할 때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편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후드티를 입고 흔들의자에서 어린 아이처럼 앉아 있으니 갑자기 후드티를 못 입게 될 거라는 슬픈 상상을 하던 내 대학생 시절이 떠올라서 이 글을 썼다. 


누구든 자신의 옷은 자신이 고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장을 고를 수도 있고, 후드티를 고를 수도 있고, 캐주얼정장을 고를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은 서로 다를 것이다. 다만 그것을 깨닫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나는 그 대학생 때 왜 후드티를 버리고 정장을 입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슬퍼했을까. 결국은 서른이 넘어서도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후드티를 입고 다닌다. 심지어 내가 만들고 내가 입고 다닌다. 이것이 결국 내 성격이고,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약간의 한량같은 모습의 나를 사랑한다. 다들 어떤 모습의 자신을 좋아할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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