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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Apr 05. 2022

나의 [시발비용]

  직장인이 된 이후 무언가 심리적 허기를 느끼게 된다. 일이 재밌는 편이고 막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은 아니지만, 어쨌든 회사와 계약을 했고 노동을 제공하는 입장에서 나 자신이 구조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어도 간식을 먹게 되고, 아침에 커피를 마셨지만 점심이나 저녁에 또 커피를 마시게 되고, 빵집을 자나갈 때마다 항상 크루아상/소보루빵 하나를 사게 된다.


  직장인 스트레스인가 생각이 들었다. 이 심리적 허기가 나의 통장도 다이어트도 망치는 기분이었다. 불교 대학에서 배우고 수행한대로 나의 욕망을 관조하다가도 나는 심리적 허기에 복종하고 싶었다. 그렇게 카드를 긁고 입에 음식물이 들어갔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심리적 허기를 이야기했다. 지인은 그것이 [시발비용]이지 않냐고 말했다. [시발비용]의 뜻은 "스트레스를 받아 지출하게 된 비용"이었다. 나는 놀랐다. 커뮤니티도 안하고 유행 SNS도 안하니 이런 용어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시사상식사전에서는 [시발비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시발 비용은 비속어인 ‘시발’과 ‘비용’을 합친 단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이를 테면 스트레스를 받아 홧김에 고급 미용실에서 파머하거나 평소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던 길을 택시를 타고 이동하여 지출하게 된 비용이 해당된다.

  이렇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쓰인 시발 비용은 탕진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탕진잼은 다 써서 없애버리는 것을 뜻하는 ‘탕진’과 재미의 ‘잼’을 붙여 만든 신조어로 저가의 생활용품이나 화장품 구입, 디저트 카페에서 작은 사치 누리기 등 일상생활에서 돈을 낭비하듯 쓰며 소비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을 행태를 일컫는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4294478&cid=43667&categoryId=43667



  흥미로웠다. 나는 심리적 허기에 [시발비용]을 지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신조어는 꽤나 오래 전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였다..

  경향신문에서는 2017년 1월에 「스트레스 사회, '시발비용'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한 바 있고,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701290925001)

  중앙일보에서도 2017년 4월에 「멍청·쓸쓸·시발비용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429967)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이 트렌드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스펙 관리에 몰두한다. 자기계발, 관리가 중요한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와 시간과 생각을 모두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의미를 찾고 관리하려 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내가 한 선택이, 내가 쓴 돈이 바른 것이었느냐는 압박감을 느낀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돌아가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나 또한 매일매일 어플리케이션으로 가계부를 작성하고 확인하면서 항상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교수님 말과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시발비용] 소비를 통해 이 합리적 계획이 파괴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탈인 것 같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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