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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Oct 03. 2022

100만 원 기부한 이야기

  몇 달 전의 이야기이다.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매달 차곡차곡 적금을 모았다. 한 달, 두 달, 세 달... 적금이 늘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늘 부족한 대학생으로 살다가 통장이 풍부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몇 달 전에 1000만 원이 넘었다.


  1000만 원이 넘으니 무언가 손이 떨렸다. 늘 학생으로 실아왔던 나로서는 처음 가져보는 돈이었다. 너무 신기하면서도 마음 한 켠 속에 두려운 감정이 들었다. '내가 이런 돈을 가지게 된다고?', '비록 세상 속 여러 자산가치들과 비교하면 대단히 작은 금액이지만, 내가 내 손으로 이런 돈을 만들었다니 신기하다' 등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000만 원이 결코 '내 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돈에는 다양한 역사가 새겨들어있는 기분이었다. 부모님의 나에의 꾸준한 투자부터 시작해서, 한국 사회의 인프라를 만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더 나아가 한국전쟁 이후 폭망했던 한국에의 국제사회의 원조 등이 쌓이고 모여서 내 적금을 만든 것으로 보였다.


  문득, 코로나와 우크이나 사태로 저발전국 국가들에 기아가 굉장히 심하고 국가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기사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어쩌면 이제 어엿한 어른, 노동자가 된 사람으로서 글로벌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기부를 해야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의무를 느꼈다.


  그래서 적금이 만기되자마자 세계식량계획에 100만 원 기부를 했다.


  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자,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엄마는 살짝 당황했고, 친구 A는 놀라다가 웃으며 "우리가 기부받아야 하는 상황 아니야?"라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외에도 반응들은 다양했다.



  기부한 이야기는 무슨 자랑도 아니다. 나보다 더 많이 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글을 쓰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튜브 알고리듬으로 끊임없이 올라는 투자, 코인, 부동산 이야기에 신물이 나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인터넷 세계에서 '돈을 좇아야 한다'라는 말은 부지기수인데, '나눔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증발해버린 기분이았다. 기부나 봉사활동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닌, 돈많고 착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기분이었다.


  우리나라와 한국 사회가 양극화가 심해진 상황이며 자산가치가 올라가서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 되어간다는 사실은 나 또한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나 또한 아파트는 살 수 없을 것 같고 내 집 마련보다는 렌트의 시대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산을 부풀리기 위해 다양한 투자 및 투기를 하려는 사회 성원들의 노력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나눈다'는 행위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잊혀져버린 것 같다.


  '기부', '봉사활동' 등 '나누는 행위'는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족감, 만족감을 가져다 준다. 그런 의미에서 나누는 행위는 남을 위한 행위이면서 동시에 나를 위한 행위이다.


  또한 '나'라고 하는 존재는 사실 '나' 한 명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닌 것 같다. 가까이에서는 부모님, 선생님, 주변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 나아가 세계 사람들로부터 이루어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만들어지기까지에는 많은 도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및 한국전쟁 이후 현대에 해외 원조를 무척 많이 받았던 한국 사람으로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타국가 사람들에게 기부를 해야한다는 도의적 책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살았던 지인 B의 말에 따르면, 지인은 한국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글로벌 금수저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에게 당연했던 것이 사실 다른 나라에서는 당연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다고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는데 좀 많이 놀랐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끼리만 서로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이런 사실을 항상 잊어버리는 것 같다.


  투자, 코인, 자산, 부동산... 양극화가 심해져서 투자에 집중하는 시대. 어쩌면 나는 부양해야할 사람도 없어서 내 삶이 각박하지 않기에 기부를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기부란 '선행'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리 돈에 눈이 충혈되고 각박해져가는 세상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기보다는 타인을 바라보고 다같이 나눔의 가치와 사랑의 가치를 실현하는 세상이 되면 어떨지 투자 유튜버들 마냥 나 또한 인터넷에 글을 남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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