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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May 05. 2023

도쿄 게이클럽 후기

  지난 주에 3박 4일로 도쿄를 여행다녀왔다. 처음으로 간 일본이었고, 처음으로 간 도쿄였다. 동행하는 친구(이성애자)와 함께 도쿄도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을 드나들며 모네, 마네, 로뎅, 폴 세잔, 앙리 마티스 등 미술계 거장들의 작품들을 섭렵할 예정이었다. (일본은 개항도 일찍하고 제국주의도 했어서 그런가 서양의 유명한 작품들을 사서 '서양미술관'도 만들었고, 그래서 그런가 사회전체적으로 건축, 패션, 미적감각이 굉장히 발달된 것 같아 보였다.)


  여행 첫날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문득... 생각지도 못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일본 남성이 진짜 꽤나 다들 잘생겼고 스타일이 좋다는 점이었다. 나는 좀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한국 남성이 굉장히 멋있는 것으로 유명한 상태라... 일본 남성은 멋있을 것이라 생각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일본 남성들이 다소 신기하기도 했다. 전체와 집단을 강조하고, 이지메 문화가 좀 있어서 그런가 다들 성격이 톡 튀는 느낌이 없었다. 스타일이 톡 튀어도 전체에 순응한 톡 튀는 느낌이었다. 다들 되게 규율을 잘 지키는 엄친아 같은 느낌도 좀 있었다.


  아무튼 일본 남성들의 스타일과 생김새에 놀라서 여행 2일차 밤에 바로 혼자서 도쿄 신주쿠에 있는 게이클럽 거리를 갔다.




  사실 솔직히 좀 긴장되긴 했다. 혼자이기도 했고... 나는 클럽파가 아니다. 나는 잔잔한 걸 좋아하고, 술 끊은지도 좀 오래된 상태였다. (술 마시면 몸이 절이는 등 이상이 온다. 술을 마신다면 그건 몸에 이상이 와서까지라도 재밌게 놀고 싶다는 뜻이다) 이태원 게이클럽을 마지막으로 간 게 2016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7년 동안 클럽을 안가보았는데 도쿄에 온 김에 슝 갔다...


  이성애자 헤테로 클럽은 한번도 안가봐서 모르겠으나, 버닝썬이나 이런저런 썰들 보면 위험한 요소들이 꽤나 많은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게이클럽은 마약이나 위험한 썰들을 잘 들어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성소수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다보니 퀴어클럽은 카페나 바bar 공간의 특성(모임, 친목) 또한 향유하며 이성애자들의 클럽과 살짝 성격이 다른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도쿄에 있는 게이클럽 거리를 구경하다가 어떤 제일 좋아보이는 한 클럽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K-POP이 노래로 60% 정도 나오길레 식겁했다. 한류가 진짜 장난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간 날은 쇼가 있는 날이었던 것 같았다. 일본 남성 두 분이 춤을 추었고...


모자이크 해놓으니까 무슨 범죄현장 같은데 그냥 춤추는 모습이다. 건전했다.


  클럽에서 어떤 캐나다 형님이 나에게 추근대셨다. 나는 다행히 캐나다 형님이 말을 걸어주셔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캐나다 형님도 엄청 재미있으셨다.


캐나다 : "너는 싱글이니?(Are you single?)"
나 : "네 싱글이에요(Yes I am single)"
캐나다 : "멋있는데 왜 싱글이야?(You are handsome, why are you single?)"
나 : "하하 저도 몰라요 감사합니다. 형도 싱글이세요?(haha I have no idea Thanks. Are you single?)"
캐나다 : "응 싱글이야(Yes I am single)"
나 : "엥 왜 싱글이세요?(Ah? Why are you single?)"
캐나다 : "아마 너를 위해 기다려왔나봐(I was waiting for you)"


  캐나다 형님이 입을 너무 잘터셔서 진심 너무 개웃겼다. "너를 위해 기다려왔어" 뿐만 아니라 되게 찰진 멘트 많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마음에 드셨는데 나에게 무척 다가오셨다.


캐나다 : "키스해도 돼? (Kiss?)"
나 : "봐서요^^(It depends^^)"


  나에게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데 자동적으로 "봐서요^^"라는 말이 나올 줄 몰랐다. 죄송하지만 캐나다 형님이 내 스타일이 아니셔서 적당히 놀다가 다른 곳으로 구경하러 갔다.


  보니까 도쿄 클럽에 오시는 분들이 정말 인종이 다양한 것으로 보였다. 일본인들은 얼마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태원도 이랬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7년 전 이태원 게이클럽은 미어캣들 밭이었다. 다들 즐기지는 않고 뒷켠에서 자기 스타일의 사람을 찾으려고 멀뚱멀뚱 선 분들이 정말 많았다. 근데 일본은 딱히 그런 편은 아닌 것 같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들 데이트어플로 사람을 잘 찾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첫번째 방문은 마티니 한잔을 마시며 적당히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가 다음 날의 미술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밤에 피곤한데... 또 갈까 고민을 하다가 도쿄 신주쿠 또 언제 오겠냐는 생각으로 바로 또 다시 게이클럽 거리를 갔다. 진짜 오늘만큼은 일본인과 만나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다른 클럽을 갔다.


  또 긴장하며 자리를 잡았는데 어떤 여성 분이 한국어로 말을 거셨다. 한국 분이셨다; 도쿄 게이클럽 한때는 자주 놀러왔는데 결혼하시고 이번에 오랜만에 오셨다고 하셨다. 누나 분은 일본인 게이친구 분(모델 일 하심;;)과 같이 오셨다고 한다. 누나 분께서 말 걸어주셔서 다행히 긴장이 풀렸고 데낄라 3잔 갈기며 취하고 노래에 몸을 맡기고... 다른 클럽으로 옮겨가며 함께 음악을 즐겼다. (여성 분들 중에 게이클럽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며 음악에 몸을 맡기시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그런 분 같아보이셨다)


  다함께 재밌게 놀고, 누나와 모델 분은 막차 타고 가야해서 나는 지하철역까지 배웅해드렸다. 모두 취기가 흥건해서... 지하철역까지 다같이 뛰어가며 노래부르며 갔다. 근데 일본.. 도쿄는... 이렇게 길거리에서 톡 튀는 경우가 정말 없는 편이다. 우리는 뛰어가고 노래부르며 "몰라 나 어쩌피 내일 출국이야~~" 하며 도망쳤다. 가시거리 내에 있는 일본인 모두가 쳐다보았다. 나는 다들 배웅해드리고 사람들이 쳐다보길레 급 정색하고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길거리를 걸어 다시 게이클럽으로 향했다.


  진짜 오늘만큼은 일본인과 만나보고 싶었다.


  장소를 바꿔 다른 클럽으로 갔는데, 일본인들이 꽤 있어보였다. 일본인 한 명에게 내가 영어로 같이 춤추자고 물었는데, 거절당했다. 들어가서 다른 일본인에게도 영어로 같이 춤추자고 물었는데, "고멘"이라고 말했다. 일본어 하나도 모르는데 표정과 말투만 봐도 바로 "죄송"이라는 뜻이라고 추론되었다. 씁쓸하면서 개웃기면서도 이렇게 언어를 배워간다는 것도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리고 일본의 미적 기준은 되게 다른 것 같아보였다. 키 크고 잘생긴 사람보다는 키 적당하고 적당히 잘생기고 스타일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느낌?)


  또다른 일본인을 탐색하다가, 혼자 뻘쭘히 서있는 흑인 형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같이 이야기나누는데 프랑스에서 오신 변호사였다. 나는 일본인 찾고 있다고 선 그었고, 흑인 형은 귀엽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보니 통하는게 많았다. 그 형은 정치학을 전공했고,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근데 나도 정치학(국제관계) 전공했으니 웃으면서 "이제 저도 로스쿨 가면 되나요? (Now, should I go to law school too?)"라고 말하며 함께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클럽에는 한국인들도 있었다. 나는 한국인들과 섞이고 싶지 않아서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런데 프랑스 형은 한국인들 중에 한 명이 마음에 드셔서 그쪽으로 가셨고 여러 번 까이셨다 ㅠㅠ 나는 일본인 탐색하고 있다가 어떤 대만인 형이 나에게 말을 거셨다. 근데 나에게 고멘 멘트 친 일본인이 계속 말을 걸었던 대만인 형이었다. 아... 나는 일본인에게 고멘 당하고, 일본인은 대만 형에게 고멘 당하고, 나는 대만 형에게 간택 받은 이 먹이사슬 구도를 보며 역시 인생이란, 호감이란, 참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대만 형님이랑 클럽에서 떼창도 부르고(클럽에서 내가 제일 열심히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쪽팔린다), 재밌게 놀다가 나는 다음 날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새벽에 나와 도망쳤다. (결론적으로 나도 대만 형에게 고멘 친 셈이다)




  여행을 다녀오고 한국에 돌아온 상태에서 도쿄 게이클럽 갔던 날들을 생각해보면, 진짜 꿈만 같다. 며칠 안지났지만 다른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다.


  어제 동네에서 런닝을 하다가 달이 예쁘게 떠있는 모습을 보았다. 달을 보며 문득 도쿄 게이클럽에서 만났던 형들이 떠올랐다. 나는 도쿄 게이클럽에서 시끄럽게 놀다가 조선반도로 귀국해 서울에서 조선살이를 하고 있고, 프랑스 형은 프랑스로 가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겠고, 일본인 분은 클럽에서 놀거나 도쿄에서 놀고 있겠고, 대만 형도 도쿄에서 놀거나 대만으로 돌아갔겠지... 캐나다 형님도 어디 놀러갔겠지... 도쿄 게이클럽에서 만났던 사람들 모두 각자 자기가 있던 곳으로 가서 자기가 하던 삶을 하겠지... 그게 바로 퍼렁별 지구인들의 삶이겠지... 생각들었다.


  일본은 G7 국가 중에 유일하게 동성혼이 합법화되지 않은 국가여서 지탄을 받곤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일본 지방자치단체들 중에는 동성 간 파트너십을 인정해주는 지역들이 많다.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리고 법적 사회적 제도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파트너십을 인정해주고, 파트너로서 서울주택도시공사 정책을 이용할 수 있는 느낌이랄까?


  비록 일본인을 꼬시진 못했지만, 그렇게 도쿄 게이클럽에서 인종적 다양성, 퀴어 포용적 사회 분위기를 느끼며 커다란 해방감을 느끼고 포스트 조선시대 한국으로 귀국했다. 미술관들도 너무 좋았지만, 해방감이 제일 좋았다. 무척 그리울 것 같다.




도쿄 신주쿠 니초메 게이클럽 관련 문헌

https://livejapan.com/ko/in-tokyo/in-pref-tokyo/in-shinjuku/article-a000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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