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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Jan 21. 2023

퀴어 수맥이 흐르는 집

  최근 직장 근처로 이사를 했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 전철로 40~50분 거리인 지역이었다. 정들었던 대학교, 정들었던 집,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정말로 현실-사회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보증금도 월세 관리비도 모두 내가 모은 돈으로 준비했고, 정말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나의 삶을 펼쳐나가는 기분이 들고 있다.


  직장 근처에 괜찮은 방 계약을 하고, 공실이어서 집주인 분께 허락을 맡고 미리 짐들을 조금씩 옮겨놓고 있었다. 어느 날, 또 짐을 옮기려 방에 방문했는데 집주인 사장님과 사모님이 방 청소 및 단장을 하고 계셨다. 현재 집이 사장님과 사모님이 공동소유하고 있는 주택이고, 두 분 다 성격이 무척 좋으시고 퇴직 후 건물 사서 노후 자금으로 하고 계시는 듯 해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대화를 나누며 함께 방 정리 + 짐 정리를 하게 되었다.


  숨 돌리며 또 사장님과 사모님과 대화나누다가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사모님 曰 "이 집에 살던 사람은, 들어올 때는 남자였는데 나갈 때는 여자가 되어 나갔어"


  나 ('응? 무슨 말이지? 내가 너무 섬세해보인다는 말인가?') "네? 저요?"


  사모님 曰 "아니!, 이전에 살던 사람!"


  나 曰 "엥? 무슨 말씀이세요?"


  사모님 曰 "아니, 이전에 살던 사람은 처음에 들어올 때 청년처럼 머리도 짧고 남자였어. 아니 근데 나갈 때는 머리 기르고 드레스 입고 나갔다니까? 집 계약해서 들어올 때는 남자였는데 나갈 때는 여자가 되었어!"


  나 ('어머; 사태파악 완료') "아! 그 요즘 TV에도 종종 나오는 트랜스젠더이신가보네요."...




  그러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마무리되었는데, 나는 귀갓길에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사모님 저도 퀴어에요. 게이에요. 성소수자에요.


  이전 세입자는 트랜스젠더였는데 예비 세입자는 게이네요.


  여긴 퀴어 수맥이 흐르는 방인가봐요.


  재밌고 즐겁네요. 깨끗하게 잘 쓸께요. 좋으면 오래오래 있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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