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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Jun 04. 2023

쓰레기봉투, 재활용 봉투를 뒤지는 어르신들

  이사 온 동네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산다. 이전에 살던 대학가도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였지만, 이사 온 동네는 좀 더 많이 살고 어르신들께서 형편이 어려운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사 온 동네에서는 어르신들이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장면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수거차량이 수거할 수 있게끔 거리에 놓여있는 종량제 봉투들, 재활용품을 모은 봉투들... 어르신들 및 행색이 초라한 중년 사람들이 종량제 봉투를 뒤지고, 재활용품 봉투를 뒤진다. 인도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진다. 어떤 아저씨는 남들이 버린 옷을 가지고 돌아가셨던 적도 있고, 어떤 아저씨는 치약을 발견하며 빙긋 웃고 지나가신 적도 있다.


  이사 처음 왔을 때는 적지 않게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여러 번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 복지시스템이 개판이었고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이사 온 동네에서 충격적인 모습 때문에 도시사회학자 분이 쓰신 『가난의 문법』이라는 책을 찾아 읽었다. 『가난의 문법』은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고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분석한 책이다. 예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책이어서 후다닥 빌려서 읽어보았다.


  책을 읽으며 눈물이 간간이 나왔다. 『가난의 문법』에 나오는 어르신들은 주로 아현동 일대 일제강점기-한국전쟁 당시 태어난 어르신들의 이야기였다. 4050대 화려하게 잘 살고 돈도 적지 않게 모았던 어른들도 IMF나 자녀의 사업실패 등으로 인해 돈을 주다가 다 같이 망해서 현재 폐지를 줍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주로 나왔다. 이런 맥락을 모르는 일부 203040 세대는 '젊었을 때 고생하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말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어르신들이 복지 시스템에 편입되려고 동사무소/구청에 가도... 부양가족(자녀(망함), 남편(망함))이 있어서 번번이 거절당하고, 개인연금도 없고 국민연금도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신청하지 못해서 편입되지 못했고, 질병 때문에 병원비는 나가고... 그래서 어르신들이 폐지라도 줍고 쓰레기라도 뒤져야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한다.


  모든 노인들, 어르신들이 폐지를 줍고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가지는 않겠지만,

  『가난의 문법』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은 대체로 (1) 자녀가 망하거나 (2) IMF 때 망했거나 (3) 집을 팔아서 무언가를 시도하다가 망해서 그렇게 되어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복지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했다. 되더라도 기초연금 정도만 나오고, 입에 풀칠하고자 열심히 폐지를 줍고 이 또한 '경쟁'이라고 한다.


  참... 읽으면서 이사 온 지역의 어르신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인자살률, 노인빈곤율도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힘든 삶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에 도쿄여행 글에서 썼듯이, 도쿄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두 멋있게 차려입고 카페에서 신문 읽고 있었다. 한국 귀국 후 알아보니 연금수령액이 일본이 한국보다 2배라고 한다. 일본 상황은 자세히는 모르겠고, 거기도 노인 빈곤 문제가 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복지시스템을 생각하다가 좀 아주 세게 말하면 '이게 과연 독립운동하고 잘살고자 만든 나라가 맞을까? 오히려 독립 안 했다면 노인들 중에 삶에 실패를 겪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힘겹게 살아가지는 않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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