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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Aug 05. 2023

2023년에 일본인 펜팔 퀴어 친구를 사귀었는데...

일본인 20대 친구와 미래고민, 노동, 과거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도쿄 여행 때


  지난번 도쿄여행 때 나는 데이트 어플리케이션 틴더(Tinder)를 통해 일본인들과 매칭(서로가 좋아요를 눌러서 서로 연결되는 것)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데이트 어플리케이션 관련 법률이 빡센지, 여권 같은 신분증으로 성인인증을 해야 대화가 가능했다. 나는 Republic of Korea가 당당히 박혀있는 Passport를 찍어서 틴더에 제출했는데 성인인증을 반려당했다. 오잉 뭐지 싶어서 다시 여권을 찍어서 제출했는데 반려당했다. 도쿄에서 일본인 남성들이 꽤나 괜찮다는 생각에 일본인 게이를 꼭 만나고 싶다는 굳은 일념 하나로 10번 넘게 시도해 보았으나, 성인인증에 계속 실패했다. 통신사 데이터 로밍이 무척 느리고 호텔 와이파이가 무척 느려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틴더에서 사람들을 탐색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매칭까지는 되는데, 대화가 불가능했다. 도쿄 게이 클럽 후기 글에서도 말했지만, 클럽에서도 일본인들에게 고멘(거절) 당해서 이번 도쿄 여행 때 일본인 남성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뼈에 사무치도록 서글펐다. 서글픈 마음을 간직한 채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한국 귀국 후


  한국에서는 매칭된 일본인 게이 분들과 대화가 가능했다. 한국 도착해서 보니까 일본인 몇 명이 나에게 쪽지를 주신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1,200km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메신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1,200km의 거리 때문인지, 몇 명은 더 이상이 연락이 되지 않았고, 몇 명은 대화보다는 대답만 하고 있길래 공주병 말기시네 싶어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르고 거름 당하고 나보다 2살 어린 일본인 친구와 함께 소통을 하게 되었다. 서로 한국어도 일본어도 못하므로 영어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펜팔 친구를 사귀다


  무언가 무척 웃겼다. 2023년에 펜팔 친구를 얻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일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뉴스, 사건사고 등을 메세지로 이야기 나누었다. 이야기 나누다가, 나는 이 펜팔 친구와의 관계를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서 틴더로 음성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도쿄 여행 때 도쿄 게이클럽이 있는 신주쿠 산초메에서 고멘(거절) 당한 이야기를 풀어줬다. 일본인 친구는 개 빵빵 터졌다. (외국인 친구들과 소통할 때마다 늘 느끼지만 내 허당끼와 똘끼는 만국적 유머인 것 같다) 그 외에도 서로의 이런저런 대화를 함께 나누었다.


  알고 보니까 일본인 친구는 한국에 관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문빈이 자살한 소식도 알고 있었고, 나보다 K-pop을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나는 K-pop에 관심이 적은 편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유튜버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틴더에서 내 사진이 K-pop 아이돌처럼 생겨서 대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나는 사진빨이라고 말하며 실물은 다르고, K-pop 스타들이 한국에 환상을 너무 심는 것 같다고 팩트폭격을 날렸다. 일본인 친구는 개빵터졌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발전하고 나는 라인(일본에서 카톡 같은 메신저)을 깔고 라인으로 일본인 친구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한국 20대의 고민, 일본 20대의 고민


  근데 소통하면 할수록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한국 20대든 일본 20대든 사람 사는 것 무척 비슷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현재 회사에서 노동을 하고 있지만, 어떤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가야 할지 고민이 다소 있는 편이다. 그런데 일본인 친구도 똑같았다. 현재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양극화를 심하게 느껴하고 있었다. 나는 일본 경제 관련 책 읽었을 때 일본보다 한국이 양극화가 심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일본인 친구가 양극화를 느껴하는 현실이 의아했다. 그래서 더 깊이 물어보니, 일본은 기본임금은 차이가 적더라도 보너스나 성과급에서 차이가 좀 있다고 한다. 신기했다. 그래서 친구는 IT 기업 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도 코딩과 IT 붐이 불었는데 (ㅋㅋ) 일본도 비슷하구나~ 싶었다.


  나는 진로고민을 하며 다양한 책을 읽었는데, 그중에 특히 일본 경영인 책들이 많았다. '왜 일하는가?'(by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전산 이야기'(by 나가모리 시게노부) 등을 읽고 일본인 친구에게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일본인 친구는 이름은 들어봤는데 잘 모른다고 말하며 나에게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달라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내가 책 소개해줬는데 살짝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었다. 마치 내가 러시아 교환학생 갔을 때, 독일 친구와 오스트리아 친구들과 대화할 때 엥겔스와 칸트 문헌을 내가 더 많이 읽고 애들은 몰라해서 설명해 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인 친구는 미래에 희망을 느껴하지 못하고, 출생률도 낮아지는 일본 현실을 말하기도 하고, 일본은 가난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좌절했다. 얘기 듣는 내내 한국 20대가 말하는 것과 너무 똑같아서 놀랐다. 그래서 내가 진로고민을 하며 읽었던 책들을 소개해주며, 비록 사회가 암울할지언정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노동 이야기, 내가 나로서 오롯이 설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한국과 일본의 노동환경


  나는 문득 예전에 회사에서 야근했던 일이 생각나서 일본인 친구에게 야근이 많은지, 회사에서 야근수당을 주는지 물어보았다. 친구는 야근 아주 가끔 일이 몰아있을 때 하며, 야근수당 준다고 말했다. 대체로 블랙기업이 아닌 이상 자기 친구들도 그렇고 모두 야근수당을 받는다고 말했다.


  나는 놀랐다... 한국은 공공기관이나 자본이 충분한 기업이 아닌 이상 야근수당 안주는 것 같은데... 포괄임금제 노동계약이면 모를까... 한국은 대체로 큰 기업 아닌 이상 야근수당 안 준다고 말했다. 일본인 친구는 놀랐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은 일본 기준에서 보면 대부분 블랙기업이네 하고 셀프디스하며 한국 노동환경을 개탄했다.


  그리고 궁금해서 일본인 친구에게 일본 노동자들은 대체로 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지도 물어보았다. 일본인 친구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체로 정년까지 일하고 정년을 못 채우면 기업 고문 역할로 계약을 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또 충격을 받았다... 한국은 이름난 대기업들도 50살쯤 나가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일본인 친구는 무척 놀랐다. 나는 그래서 차근차근 이름난 회사들 - 쌤ㅅ, 에스ㅋㅇ, 현ㄷ 등 - 을 언급하며, 어떤 기업이든 50살 전에 보통 나간다고 말해주었다. 일본인 친구는 무척 놀라 하며, 나가서 뭐하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이게 바로 한국의 노동환경이다! 말해주며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 식당 사장님이 50대처럼 보이면 한번 과거에 뭐하셨는지 물어보라고 말해주었다. 아마 자이니치(재일 코리안)일 수도 있을텐데 한국에서 오신 분이면 50살 즈음 기업에서 나와서 자영업을 하는 걸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일본인 친구는 충격받아하며 무척 신기해했다. 그렇게 나는 나라망신인지 사회비판인지 모를 일을 했다...


  개인적으로, 일본은 1) 종신고용이 있으며, 2) 야근수당을 주는 등 노동환경이 좋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 비록 버블경제 위기 이후여도 선진국은 선진국이구나 싶었다.



#과거사 이야기가 나오다


  일본인 친구와 일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슈로 대화를 나누다가 가끔씩 북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인 친구는 그때마다 갑자기 긴장했다. 어느 날, 일본인 친구는 자기가 북한 이슈나 한-일 과거 이슈가 나오면 아무래도 갈등들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다소 긴장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진짜 한국인들은 일본을 싫어하냐고 물어보았다....


  오... 뭔가 일본인 친구가 귀여웠다. 그러면서 그냥 나는 내가 아는 이야기들을 풀었다. 정치학에는 식민지 민족주의(colonial nationalism)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인도-영국, 남아공-영국 관계에서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영국에 빡쳐하듯이, 한국도 일본에 빡쳐하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도 사실 일본 여행을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갔던 이유가 아마 식민주의적 민족주의가 무의식에 깔려있었기 때문 같다고 말해주었다. 일본도 독일처럼 사과를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국과 일본이 같이 잘 사귀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일본인 친구는 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이가 어색해졌다.... (ㅋㅋ... tlqkf...)



#기타


  그 밖에도 일본인 친구와 소통하며 다양한 점들이 흥미로웠다.


- 일본 2030은 정치에 진짜 관심이 없고, 4050은 관심이 많다고 한다.

- 내가 유튜브로 우연히 일본 메이드카페 영상을 보고, '오이시쿠나레(맛있어져라라는 의미의 주문)'을 배웠다고 하니 일본인 친구는 당황했다.

- 도쿄 여행 후 나는 일본어 초급 공부를 시작했는데 한국어와 일본어와 비슷한 단어가 많았다. 신문-신분, 가수-카슈 등... 그리고 구루마가 일본에서는 자동차라니...? 이거 말해주니 일본인 친구도 흥미로워했다.




  과거사 대화 이후 일본인 친구와 관계가 요단강을 건넌 것 같지만, 관계가 개선될 여지도 있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소통도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일본 도쿄 여행을 갔다가 미국 기업이 만든 데이트 어플리케이션(틴더)으로 친구를 사귀고, 한국 출자 기업이 만든 메신저 어플리케이션(라인)으로 소통을 하였다. 그리고 일본인 친구와 한국-일본의 일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일 과거사 이슈로 관계가 터졌다.


  흥미롭다. 즐겁다. 일본인 친구 덕분에 식견이 더 늘어난 기분이다. 도쿄 여행을 다녀오며 한국이 천박하게 느꼈던 부분들이 잘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난 번에 건설사들이 시민들 대상으로 호구질 한다고 썼는데, 요즘 뉴스들 보니까 내 예상이 완벽히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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