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즐 Sep 03. 2023

어떤 형이 나한테 자꾸 뭘 챙겨주셨는데...

오잉? 이건 이성애자 친구들에게 들었던 스토리인데?

  올해 봄부터 게이 커뮤니티를 통하여 게이 취미모임들에 가입하였다. 하나는 운동모임, 하나는 독서모임에 가입하였다.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으나, 나의 주 목적은 (1) 혼자서 취미생활은 재미가 없어서 사람들과 함께 하기, (2) 게이 지인들을 만들기 였다. 대학교 졸업 후 친구들이 하나 둘씩 점점 멀어져가는 기분이라 '아 이렇게 또 사람을 사귀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도 한 몫 하였다.


  독서모임에 나갔을 때 나 빼고 모두 형님들이었다. 소규모였고 나 혼자 20대였고 30대 40대 분들도 있었다. 좋은 사람들도 많았고, 동시에 꼰대도 많았고 차별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혼자서 책을 읽을 때보다는 다른 분들의 감상들을 들으며 책을 풍부히 이해하게 되었다. 모임을 마치고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다양한 일상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계절이 지나 여름이 되고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다가... 어떤 30대 형이 사람들에게 여행 때 샀다며 과자를 나누어주셨다. 나는 하나 살짝 큰걸 주셨다(?). 그리고 내가 모임 채팅방에서 어쩌다가 사람들을 대신해서 일정을 조율할 때, 그 형이 나에게 고생한다며 커피 기프티콘을 주셨다(?). 그리고 모임에서 만날 때 오늘 뭐하다 왔는지, 오늘 점심에는 뭐 먹었는지 (모임에서 서로서로 이런 질문 안하는 분위기 가운데에서) 나의 일상 질문을 물어보셨다(?). 오호라? 내가 역으로 "형은 오늘 뭐하시다가 오셨어요?"라고 물으니 살짝 당황하셨다(?).


  뭐지? 이 형 나에게 호감이 있으신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다가 문득... 대학생 때 스터디를 하던 이성애자 친구들 스토리들이 떠올랐다..?!! 대학 동기 여성 친구의 경우, 스터디에서 사람들을 만나 다같이 공부하고 정보를 공유하던 편이었는데 어떤 남성 분이 스터디원들에게 선물들을 주곤 했다고 한다. 여행을 다녀와서 사온 과자였고, 친구에게는 하나를 더 주었다고 했다(?). 이런 경우가 3~4번 정도 지속되었고 스터디가 마무리 될 때쯤 남성 분이 친구에게 고백을 했었다(?). 그리고 그 둘은 결국 결혼까지 갔다(?)...


  호모나 호모나... 지금 나도 그런 경우인 걸까? 어머나 이성애자들만이 겪던 일상 속 호감 표시 이야기를 나란 성소수자도 이렇게 일상 속에서 겪을 수 있는 얘기였어? 너무 신기하다 늘 데이트 어플리케이션으로 디지털로만 인연을 만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상 속에서 호감을 표현받는다고?


  지난 8년 간 연애를 향해 항해했던 여정을 살펴보고, 그동안 썸을 타거나 연애를 했던 사람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고찰해볼 때 그 형이 이상형은 아니라서 호감을 가질 확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성격적으로 매력적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있어서 다른 부분에서 호감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 오...


  그렇게 머리를 굴리다가 어느 날 독서모임은 방장의 헛발질과 부족한 운영 능력과 꼰대들의 힘으로 폭파되었다.


  모임 구성원들끼리 개인 연락처가 없었어서, 나는 먹튀를 한 사람이 되었다.


  아쉽지는 않은데 (ㅋㅋ) 삶이란 참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썼던 글, '일상 속에서 만남을 주선받는 경험'(https://brunch.co.kr/@kcljh5067/208)만큼 상당히 흥미로웠던 일화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