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째주에 대만을 다녀왔다. 회사에서 9월부터 바빠지니 8월까지 2주 휴가 다녀오라고 해서 재빨리 더욱 더워지기 전에 대만을 다녀왔다. 이번 대만 여행의 목표는 처음부터 '퀴어'였다. 대만은 2019년에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LGBTQ+, 성소수자 인권이 한국보다 훨씬 훨씬 훨씬 좋아보였다. 아니 공자는 중국 사람이고 유교도 중국에서 만들어졌고 대만은 중화권인데 왜 한국이 더 보수적인 걸까? 의문을 품고 타이페이로 쓩 갔다.
매일매일 게이바와 게이클럽 순회관광을 갔다. 솔직히 평일 게이바/게이클럽은 모두 노잼이었고, 금요일 밤 게이클럽이 최고였다. 최고인 동시에 너무 놀랐다. 이번 글은 그냥 일기 같은 글... 내가 간 타이페이 게이클럽은 G-star였다. 대만 5박 6일 다니면서 게이바/게이클럽 5곳 넘게 갔지만 여기가 제일 최고였다.
밤 12시쯤부터 고고보이즈(게이 스트립쇼?) 공연이 기획되어있었고, 나는 일찍 11시쯤 와서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중국어를 하나도 못해서 대만 사람들과의 교류는 어려웠고, 말 걸면 (모든 게이클럽에서 그렇듯) 관심있는 걸로 보니깐... 옆에 백인 여성 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말을 걸었다.
두 분은 대만 대학교에 여름학교로 온 미국인들이었다. 대화나누다가... 옆 미국인 여성 분이 자기 동료를 'he'라고 불렀다.
응??????
오잉? 미국인 분 가슴 나와있고 여성 같은데 he라고? 궁금해서 "너 he야?"라고 물어보고, 문득 이거 미국 문화에서 정말 불쾌하고 부적절한 질문같아서 바로 Sorry라고 말하고... 취기에 그만 '미국 문화 너무 어려워'라고 말하고 또 이것도 부적절한 말 같아서 바로 Sorry라고 말하고... 대화하면서 그 자리에서 Sorry를 한 20번 말한 것 같았다.
아 미친... 하남자 찐따 남성 느낌 너무 많이 내서 도망치고 싶었는데, 갑자기 트랜스젠더 남성 분이 나보고 "너 존나 귀엽다(You are seriously cute)"라고 말했다. 오잉? 그래서 "나 존나 귀여우면 남자 좀 줘(Show me sb if I am seriously cute)"라고 말하니 갑자기 "일루와(Come on)"라며 키스하려고 하셨다.
트랜스젠더여도 내 스타일이면 모를까, 키 작고 남성성 적은 느낌이신지라 나는 당황하며 바로 거절했다. 트젠 분은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나 존나 유교주의 개쩔고 매우 보수적인 사회에서 자라서 이렇게 갑자기 키스하려는 거 좀 어색해 미안'이라고 말했다. (물론 개뻥이다...)
그러고 나는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노래에 몸을 맡겨 춤을 추다가 중간에 홀연히 사라졌다.
공연이 시작될 찰나,
갑자기 탕 탕 후루후루 탕 탕 후루루루룹 노래가 나왔다.
그리고 대만인들이 스테이지에서 다함께 탕후루 챌린지 춤을 췄다.
너무 충격이었다.
아니 왜 대만 게이들이 이걸 알어?
(동영상을 찍었지만 초상권 문제로 아쉽지만 업로드 하지 않겠다..)
내가 중국어를 못하니까, 가는 곳마다 짧은 영어를 했는데, 그때마다 종업원 분들이 나보고 바로 "한국인이냐?(Korean?)"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자,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 궁금해서 여기 한국인들 많이 오냐고 물어보니 종업원 분들이 그렇다고 하셨다.
??? 근데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는 이유가 뭘까??? 한 명이면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세 명 가까이 그러셨다. 종종 SNS로 대만 게이 분들이 한국 게이들 재수없다는 말을 하는 걸 밈으로 보긴 했었는데... 한국 게이들이 이미지 다 망치고 다니는 건가???
근데 대만인들의 반응이 이해가긴 했다. 한국 게이들 중에 성격 터지고 공주님들 같은 애들을 너무 많이 보긴 했다... 나도 이태원 게이클럽은 8년 전에 마지막으로 갔고 해외 여행갈 때마다 이렇게 클럽 오는 거지 뭐...
공연이 진짜 재밌었다.
아니 공연에서 2ne1부터 시작해서 K-POP 노래가 자주 나와서 한류를 실감했다.
그리고 중화권 노래를 곁들인 드랙쇼(?)도 있어서 재밌었다.
중화권 노래 공연이라니... 너무 재밌고 뜻깊은 공연이었다. 다들 댄서 분에게 현금 주는 것도 있어서 나도 500원(한화 약 22000원)을 드렸다. (한국에서 택시도 안타는 편이고 돈 잘 안쓰는 편인데 이렇게 대만 경제 활성화에 혁혁한 공로를...)
신기했던게 대만은 게이클럽/게이바에 여성들이 와서 노는 게 문화로 정착된 느낌이었다. 그만큼 여성들이 상당히 많았다. 물론 나도 한국 게이클럽을 가 본 적이 너무 오래되어서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이태원이나 종로 게이바/게이클럽에서 여성 분들이 많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이게 동성혼 허용 국가의 퀴어 포용성인걸까??
타이페이로 여행 오기 전에 대만 콘텐츠 - 상견니 등 - 을 보았다. 그래서 대만도 남성들이 잘 생겼으리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허광환, 주걸륜... 그런데 길거리에 있던 대만 남성들은 정말 잘 생기신 분이 한명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길거리 남성 10명 중 약 5명에게 눈길이 가는 편인데, 대만에서는 100명 중 1명에게 눈길이 갈까말까 했다. 그 1명 마저도 약간 한국인이었던 것 같았다. (대만 분들 얼평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대만 게이클럽 남성들은 정말 모두 꾸미신 것 같았다. 운동도 하고, 외모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쓰는 것 같았다. 대만에서 잘생긴 남성들은 게이클럽에 몰려있었다.
이쯤되면 잘생긴 대만 남성들은 모두 게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만 분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문화차이도 너무 신기했다. 대만은 여성들도 외모 꾸미신 분들 적지 않았는데, 남성들은 정말 외모 압박이 없어보였다. 반면 한국은 남성들에게도 외모 압박이 존재하는 사회적 분위기처럼 느껴졌다. 그 결과, 한국에는 멋진 남성들이 많고, 대만에서는 (내 기준으로 볼 때) 멋진 남성이 적었다.
한국처럼 외모를 신경쓰는 문화가 좋은 걸까, 아니면 대만처럼 외모를 덜 신경쓰는 문화가 좋은 걸까???
클럽에서 대만 게이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쪽 일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 찐따인데 해외여행 갈 때마다 내가 이렇게 붙임성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닫는다) 함께 클럽 공연을 보고, 옆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클럽 공연들에서 너무 인상깊었던 것들이 많아 이것저것 물어봤다.
나 : 대만 사람들이 탕후루 챌린지가 어떻게 알아??
그 : 한국에서 유행하는 거 아냐?
나 : 맞긴한데 어떻게 다들 알게 된 거지?
그 : 한국에서 유행이면 다들 알지
나 : (당황... 이젠 드라마/영화 뿐만 아니라 한국 밈 조차 세계적으로 통용되는구나..)
그 : 한국도 게이클럽 있잖아. 음식 즐기로 온 것 같지도 않고, 대만에는 왜 여행온거야?
나 : 니네는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잖아. 한번 뭐가 다른지, 어떻게 대만은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퀴어 관련 장소들 다 다니고 있어.
그 : 어디 갔었는데?
나 : 퀴어 서점 Gin gin bookstore도 가봤고, 셔먼 근처 게이바들도 가봤고...
그 : 서점 처음 듣네 (동공지진)
나 : 너희는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국가라서 부럽다. 한국은 성소수자 없는 사람 취급하고, 혐오발언이 너무 쎄
그 : (동공지진...)
편의점에서 대만 게이 분과 대화를 나누고 그의 집에 놀러가보았다. 공용 거실, 공용 주방, 그리고 3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셰어하우스였다. 월세가 얼마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약 50만원이었다.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대만도 그렇고 동아시아 2030 청년들은 다들 비슷하게 사는 구나... 깨닫는 순간들이었다.
작년 5월에 도쿄 게이클럽을 다녀오고 쓴 글(https://brunch.co.kr/@kcljh5067/221)을 사람들이 매일 30명 이상씩 보고있다. 나는 그냥 나의 감상을 쓴 글인데, 조회수도 11,000명을 넘기고 이렇게까지 도쿄 게이클럽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감회를 말하자면, 대만 게이클럽은 도쿄 게이클럽보다 수십배 재밌었다. 도쿄 일본 니혼진들 모두 대만와서 노는 법 좀 배웠으면 할 정도로 대만이 더 재밌었다. 도쿄에서 사람들은 떼창도 안했지만, 대만에서는 떼창도 많았고, 공연도 무척 재밌었고...
도쿄 게이클럽에서도 대만 형이랑 놀았었는데 내가 대만 분들과 잘 맞는 타입인 걸까. 무척 재밌었던 여행이었다.
게이클럽과 게이바들을 다니며 종종 대만이 부러웠다. 대만은 약간 중국과의 대결 구도 속에서 '민주주의'를 국가적으로 상당히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그 결과, LGBTQ+ 권리도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대만은 '중화민국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공산당 1당 집권 체제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국가적 정체성으로 내세운 느낌이었고, 그 결과 성소수자 인권도 올라간 느낌이었다. (그냥 문헌들과 타이페이에서 느꼈던 개인적인 느낌이다.)
대한민국도 부디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공화국 국가로서 포용적인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 한국 이태원 클럽들도 이렇게 공연이 재밌었나?? 한국 게이들도 엄청 잘 놀텐데 문득 가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