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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Nov 24. 2024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있니"

  스파이/정치 드라마를 보던 중 여성 이중 스파이와 어린 남성 정보요원이 밤에 호텔에서 은밀히 대화하는 장면이 나왔다. 스파이는 요원에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있니?", "왜이리 보수적으로 생각하니. 인생 짧다. 거부하지 말고 본능에 몸을 맡기고 즐겨"라고 말했다. 20대 신참 풋내기 남성 (이성애자) 요원은 예전 연애를 이야기하다가 결국 본능에 맡겨 서로 몸의 대화를 나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대화들을 그냥 줄거리 요소 속 한 장면으로 생각했을 터이다. 그러나 나이가 30대에 접어들고 1020대를 이미 보낸 상황에서 저런 대화들이 다소 인상깊게 다가왔다. '나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는가?', '나는 보수적인 편인데 젊음을 낭비하고 있는가?', '젊을 때 성관계 많이 가지라는 말은 도대체 누가 했을까?' 등.


  뒤이어 과거 친구를 좋아했던 나의 감정을 억눌렀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 / 고등학생 때 / 군대 때 동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욕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감정이 생기면 나는 나의 감정을 억눌렀다.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억눌렀다. 일부로 친구와 싸우거나 멀어진 경우도 있었다.


  내가 이성애자였으면 달랐을까?

  다른 성소수자 친구들은 어렸을 때 이성애자를 좋아했을 때 어떻게 했을까?


  과거에 성소수자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들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퀴어들이 겪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하는 건 성적지향성과 관련없이 모두가 어려워 한다는 얘기도. 그러나 성소수자의 자기 검열이 이성애자보다 심하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다.


  과거 연애했던 경험도 뒤돌아보았다.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있는가... 대학생 때 경험한 연애 관계들은 대체로 호감에서 시작되었고 불타는 사랑은 없었다. 상대방이 나를 정말 좋아했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했던 경험이 아예 없진 않았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 후 차이거나, 1020대 때 학교/군대에서 감정을 억눌렀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사랑이란 감정은 축복같다. 연인에의 사랑, 가족에의 사랑 등 사랑은 사람을 더 인간적으로 만들고, 누군가에게 헌신하게 만든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성적인 부문에서 점점 개방적으로, 성자유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포르노, 원나잇 등이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개인은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으므로 범죄만 아니면 괜찮을 수 있겠지만, 타인이라는 한 인격적 존재를 성적인 수단으로만 간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 가운데 "누군가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있니"라는 대사가 인상깊게 다가왔다.

  가족, 친구, 연인 등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없는 인생은 로봇과 같은 삶일까?

  당신은 누군가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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