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친구 A군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친구 A군(남성)은 취업을 하지 않았지만 애인(여성)과 결혼을 했다. 집은 A군의 부모님께서 전세집을 마련해줬다. 결혼을 해서일까, A군은 취업을 급하게 하고 싶어했다. 옆에 있는 친구로서 이 모습이 좀 조급하게 느껴졌다. 시간을 가지고 원하는 기업들에 원서를 넣는 게 좋지 않겠냐고 여러 번 말했지만 기혼 남성이 갖는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내 분께서도 일을 하시지만 프리랜서로 파트타임의 느낌이 강해 안정적인 수입이 상당히 필요로 해 보였다.
이성애자 남성이 갖는 압박감을 본 사례는 A군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이성애자 남성 지인들 대부분 '안정적 직장'을 가지고 그다음 단계로 결혼을 원해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좋은 직장 갖는 것부터 힘들어서 막힌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특히 문과 출신 이성애자 남성들이 그렇게나 경찰, 소방관이 되고 싶어하는 줄 몰랐다. 월급도 괜찮을 뿐만 아니라 멋있고, 정직하고,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운동 열심히 하는 남성적 이미지를 갖춘 안정적 직업으로 선망되나 싶었다. 사촌 형 B도 경찰을 n년째 준비하다가 겨우 되었는데, 되자마자 바로 결혼을 했다.
직업뿐만이 아니다. 이성애자들이 결혼하면서 남성이 주거를 마련해오는 사례들을 종종 보았다.
과거에 비해 남자가 집을 장만해와야 한다는 문화는 많이 감소했으나, 여전히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남성이 주택을 살짝은 마련해줄 수 있길 바래하는 마음이 은연 중에 느껴진다.
결혼적령기인 30대 초반에 접어들면서 이성애자 친구들이 결혼하는 모습, 고민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참 퀴어인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록 사회가 옛날보다 더 유연해졌고 남성과 여성에게 부여되는 의무들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문화는 관성인지라 이성애자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요구되는 요소들이 관성적으로 남아있다고 느낀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10~15%만 대기업에 근무하고 85~90%가 중견/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고, 소득양극화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가고 있다. 유주택자-무주택자 간의 자산양극화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가운데 과거에 이성애자 남성에게 요구되던 요소들이 큰 압박감으로 느끼게 되는 것처럼 보였다.
종종 나도 내가 이성애자였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나는 정치학과 경제학 공부를 굉장히 좋아하면서 학부에서 금융분야 공부도 많이 했었다. 지금은 나의 소수자성을 따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NGO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성애자였으면 돈 많이 주는 금융 분야에서 일하고 나 또한 결혼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곤 한다.
이번 이재명 정부에서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고, 남성의 역차별을 살펴보는 '성형평성기획과'를 신설했다. 처음에는 이 얘기 들었을 때는 참... 여성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차별을 챙기는 게 더 급선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은 아직도 여전하긴 하다만, 이성애자 남성들이 겪는 압박감 또한 사회를 좀 먹는 요소처럼 느껴진다. 압박감 때문인지 이성애자 남성들은 여기저기에 '역차별'이라고 말하지만, 역차별이란 말이 적절하지는 않아보이고 부담감, 압박감이 아닐까 싶다.
대신 필요한 일은 좀 더 거시적인 일들같다. 누구나 직장에서 안정적이고 존엄하게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야 하고, 경제양극화를 줄여 대기업-중소기업 간 차이를 너무 크게 만들지 않으며, 결혼하려는 사람이 주택을 임대 및 분양받으려 할 때 기회가 많고 경제적 부담이 적어야 하는 등 한국 사회의 어려운 문제들부터 해결해야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된 이후 10년 간 더 악화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