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임종

by 배즐

심장의 혈관이 막혀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 시술을 하러

병원을 찾았던 62세의 우리 아빠가

시술 실패 후 회복실에서 3시간 정도 누워있다가

뇌출혈이 발생해

의식도 자가호흡도 없이

병상에 누워있다가

한 달 후 하늘나라로 떠났다.


1월 17일 토요일 오전 7시 8분

의사는 아빠의 사망진단을 내렸고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장례식을 치뤘다.

이튿날 오후에 입관을 했고

셋째날 아침에 발인을 하고

천주교 성모묘지에 아빠를 묻었다.


친구들•직장동료들•지인들이 장례식장을 다녀갔다

절친들이 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친구에게 가서 와락 안기고 울었다

친구들도 따라서 함께 울었다

입관 날에는 엄마랑 이모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발인 날에는 천주교 성모묘지에서 다함께 기도하며 아빠가 하늘나라에 잘 가기를 기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통장에 부의금이라며 적지 않은 돈을 보내주셨다

일정상 오지 못한 사람들은 미안하다며 카톡으로 긴 내용을 보내주었다

8년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까지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감동적인 말과 글을 보내주기까지 했다

내가 인싸가 아니라서 아빠가 가는 길이 외로울 것 같았는데 회사 동료 분들과 위원님들이 화환을 보내주셨고 절친한 친구들도 많이 와 주었다


아빠가 뇌출혈을 겪고 누워있을 때

나는 처음에 매일 머리가 어지러워서 타이레놀을 먹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빠의 뇌가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아빠가 그냥 누워 잠들어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금방 괜찮아지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아빠가 나와 누나와 엄마 앞에서 임종한 후

이제 내가 어떻게 될지 나조차도 감이 오지 않는다

아직은 실감도 나지 않고 그저 눈물이 살짝씩 나고 머리가 멍하고 아프고 드라마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장례식에 오셨던 동네이웃 아주머니께서는 실감이 나지 않다가 1년 뒤에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났다고 했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가 임종을 하니

문득 게이 주인공의 삶을 그린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주인공 고영이 암투병 하던 어머니를 잃은 장면이 떠올랐다

고영은 장례식을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살던 텅 빈 집에 들어간다

어둑어둑하고, 쓸쓸하고, 텅 빈 집에서

고영은 잠시 누워 잠을 청한 뒤

어느 정도의 적적함과 쓸쓸함을 보인 뒤

친구들과 함께 게이클럽에 간다

고영은 어머니를 여의고 장례식을 겪으며 정신이 없어 상주 완장을 차고 양복을 입은 채 클럽에 간다

그리고 우연히 규호라는 인물을 만나 썸씽을 갖게 된다(심지어 우리 아빠 이름도 규호이다...)


<대도시의 사랑법>를 봤을 때

위 장면에 슬픔을 느끼고 눈물이 흐르긴 했지만

이제 보니 공감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저 적적함, 쓸쓸함, 텅 빈 느낌, 정신없는 모습이 모두 와닿는다

고영의 어머니는 철없고 이상한 아버지와 이혼했었고, 다른 자녀를 낳지는 않았던 걸로 나온다

나는 누나와 엄마라는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도 이렇게나 힘든데,

누나와 엄마가 병원•장례의 절차들을 모두 맡았고, 아빠 임종 후 행정•금융 관련 처리들도 다함께 분담해서 처리하고 있는데도 이렇게나 힘든데,

고영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했고, 해당 소설은 게이이신 박상영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 알고 있다.

박상영 작가가 형제자매가 없고 어머니 혼자 있었는데 어머니도 돌아가셨다면

박상영 작가도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아무리 인간은 모두 생로병사 하고

부모님의 임종도 다 겪어야할 일이라 하지만

형제자매도 없고, 아버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가정 구성권도 없어서 동거가족 이상으로 정식 가정도 꾸리지 못하는 성소수자로서

박상영 작가님의 삶은, 그리고 비슷한 성소수자의 삶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아빠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니

박상영 작가님의 삶을 살짝 더 이해하고

대도시의 사랑법 드라마 내용을 더 이해하고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삶을 다져나가는 건가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 아빠는 참 다정다감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초등학생 때 아빠 차를 타고 뒷좌석에 앉아있으면 아빠는 룸미러로 날 보며 방긋 웃곤 했다

아빠는 늘 가족들에게 여러모로 더 챙겨주고 싶지만 더 못 챙겨줬다며 미안해했다

늘 항상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양보하고, 이해해주고, 늘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고 지지해줬다

아빠가 쓰던 일기장에는 지난 5년 동안 아빠가 가족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빼곡히 적혀있었다

비록 아빠는 옛날 사람이라서 내가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해도 못받아들이는 편이었지만, 아빠는 내가 행복하면 이해는 못해도 인정해줄 사람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참 많은 걸 물려받았다

지적호기심, 탐구력, 시사•역사 호기심 등 많은 것을 아빠에게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아빠에게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아빠는 내게 더 물려주고 싶지만 경제적으로 물려줄게 적다며 아쉬워 했지만,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일구고 싶고 이미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걸 물려받았다고 생각했고 아빠에게 말했던 찰나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아빠가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아빠에게

청소년 때, 성인 이후 늘 항상 말 안듣고 속상하게 해서 미안했고,

아빠와 함께 했던 32년의 삶이 언제나 즐거웠고,

항상 날 지지하고 믿고 든든하게 뒤에서 지켜봐주고 내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어서 고마웠고,

사랑했다고

말했다

면회갈 때마다 말했다

면회갈 때마다 아빠 눈가에 눈물이 맺혀 흘렀는데

이게 정말로 엄마•누나•나의 얘기를 듣고 운 건지, 중환자실 빛에 안구가 반사작용으로 눈물이 맺힌 건지... 후자면 늘 맺혀있어야 할텐데 그럼 정말 전자인 걸까...


나를 애지중지 낳고 기르던 아빠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다

삶이 무한해 보이다가도 이렇게 유한성을 깨닫는다

아빠는 지금 내가 현 NGO 단체에서 활동하는 걸 상당히 많이 자랑스러워했는데,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서도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해야겠다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고 머리가 아프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드라마 속에 있는 느낌이다

단지 <대도시의 사랑법>의 고영을 더욱 이해했고

박상영 작가의 삶도 살짝 더 이해했고

가족이 없는 비슷한 차지의 사람들이 더 걱정되었고

60대 이상 어른들이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더 많이 보내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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